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며 살까?

영화동아리 회원이 노인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예선 통과를 했다며 시사회 초대장을 보냈기에 종로에 나갔다.

나에게는 환갑을 넘겼어도 고치지 못한 불치병이 있는데 그것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간다는 것이다.

처음 가는 곳이면 한두 시간  넉넉히 잡고 아는 곳이면, 3~40분 정도 여유를 갖는데 종로이기는 했지만 시사회 장소가 처음이라 넉넉하게 나섰더니 너무 일찍 도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1시간하고도 50분이나 일찍 도착하고 보니 참으로 난감했다.

근처 고궁 산책이라도 할까 했지만 신고 나선 구두가 산책을 허락할 것 같지 않아 분위기 좋은 찻집? 맛난 음식점? 을 찾다가 포기하고 극장 카운터로 향했다.

“저~어  4시 40분쯤에 끝나는 것 없나요?

4시 40분요? “ 00 이 4시 30분에 끝나는데 그것으로 드릴까요?

“ㅇㅇ 요? 외국영화 말고 한국 영화는 없어요?

“네  우리나라 영화는 4시 40분에 끝나는 건 없고요, 5시 40분에 끝나는데 15분 후에 시작합니다.

명랑 이라면 티브이를 통해 질리도록 알게 된 문제의 영화라는 생각을 하며 어차피 시간 죽이기를 할 거라서 늦게 끝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드라마에는 빠져 살고 있지만 영화를 보러 일부러 나오지는 않기에 무엇이던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9천 원을 내고 표 한 장을 받아 들었다.

우연히 보인 안내판에 65세 이상은 4000원이라고 해서 활인 폭이 엄청 나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렇다고 활인 받지 못한 내 나이가 싫지는 않았다. 5천 원은 아까웠지만,,,

“12관 손님은 입장하세요, 나이 든 안내인의 지시에 따라 올라가면서 보니 나만 9000원짜리인 것 같아 속으로 웃었다.

사람이 많을 줄 알고 좌석을 찾아 앉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서도 좌석은 3분의 1도 차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4시 40분쯤까지만 버틸 것이니까 상관없었는데 나이 든 커플들의 팝콘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속삭이는 소리가 거슬렸다.

내가 혼자라서 질투가 나서 하는 소리는 아니고 의자 몇 개를 건너 띠였는 대도 대화 내용을 알 수 있었다. 휴대폰도 끄지 않아서, 사랑은 아무나 하나 “라는 노래를 몇 번이고 들어야 했다. 공공장소에서는 휴대폰을 꺼야 한다는 것이 나이가 들면 잘 안되는가 보다, 지난번 주일에는 미사 도중에 전화를 받는 할머니 때문에 과묵하신 신부님도 화를 내셨던 일이 있기는 했다.

조용한 티브이 소리만 듣다가 사방에서 꽝꽝 터지는 소리에 정신이 외출하려고 했지만 왠지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영화가 시작하였지만 나는 그저 그런 생각으로 시간 죽이기를 할 뿐 이였는데 휴대폰 시간을 보니 아직 4시도 안됐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담그고 의미 없는 시선을 화면에 보내고 있는데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내가 영화에 빠지고 있었으니 황당했다. 우리 국민이라면 이순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태고 이순신 님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였는지를 알고 있을 텐데 처음으로 알게 된 것처럼 긴장하며 몰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부터는 시간에 강력 모터를 단 듯 빠르게 달렸다.

“아~  물결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는데,  어쩌지?  

작은 상영관 안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화살 날아가는 소리가 평정심을 잃지 않는 장군님의 얼굴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이미 5시가 넘어갔다.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내 자존심 이였는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영화 한 편이 무너트리고 있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초청해 준 사람에게 가야 했기에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의자와 분리 시켰다.

시사회장은 6층 10관이라고 해서 서두르는데 소용돌이치는 물결이 내 목덜미를 잡고 늘어졌다.

시사회장에 들어서니 이미 시작되었는데 마침 친구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다.

반년 동안을 땀과 시간을 바쳐 탄생시킨 작품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2% 부족해 보였다. 팔이 아무리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친구 작품 말고도 다섯 작품이 상영되는데 그중 눈이 띄는 작품이 있었다.

뭐라는 설명이 없어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좋은 작품이었다.

친구 작품은 수상하지 못했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내가 감동한 작품이 어떤 결과였는지는 묻지 못했다.

또 다른 하나는 잘되고 못 되고에는 상관없는 문제의 작품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아직도 우울하다.

그것은 요양 병원에 부모를 모셔 논 가족의 이야기였는데 어머니는 아래층에 아버지는 위층 병실에 6년 동안이나 입원 중이라는데 부부는 6년 동안이나 한 지붕 아래서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어린 손녀딸이 어째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로 있게 하느냐고 물으니 아버지 대답은 함께 방을 쓰면 비용이 많아서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생일 케이크를 자르며 신앙생활 열심히 하자며 손뼉 치고 환하게 웃었다.

손녀딸은 병원을 다시 찾아 위층에 계신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 아래층 할머니에게로 모시고 갔다. 부부가 6년 만에 만나는 것이라는데 아내를 본 남편의 첫 마디는” 밥 먹었소” 였고 아내가 남편에게 처음으로 한 말은” 조그만 방이라도 얻어서 함께 있어야 했어요”였다. 노부부의 깊게 팬 주름살 사이로 서러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가슴에도 형체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 저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라는 말이 쓰여있는 성경 책이 떠올랐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우리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고려장을 연상케하는 요양원에 모셔 놓고 우리들은 효도를 한다고 하는데 어린 손녀의 맑은 얼굴에서 그래도 작은 희망을 읽었다.

뻔뻔하게도 이런 글을 적고 있는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