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實踐)이 실종된 전략적 만남은 허구(虛構)다.
          
태 종 호 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북미의 교착국면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 같다.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미국 대선이 끝나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다시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비관적 견해도 있다. 억측이 아니다. 그 같은 예측을 하게 만든 것은 바로 북미 정상들이다. 두 정상은 그 같은 사실을 이미 앞 다투어 분명하게 확인해 주었다. 김정은은 일찍이 지난 연말 미국에 대한 요구사항과 시한을 정해놓고 답이 없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바 있다. 당시 북한은 탄핵과 대선에 몰린 트럼프에게 고삐를 죄며 압박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거부했다. 북한의 야심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김정은은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을 통한 대북 제재 정면 돌파를 천명했다. 제재완화와 핵시설을 바꾸지 않겠다며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회귀했다.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은은 나의 좋은 친구요, 자신이 한반도를 전쟁의 위협에서 구했노라고 자랑하던 그도 11월 대선 전에는 김정은과의 3차 정상회담은 없다고 못 박았다. 대북라인을 대폭 교체하고 신년 국정연설에서도 북한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북한도 미국도 협상의 재개에 대한 기대를 일단 접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은 내부결속에 집중하고 있고 탄핵의 굴레를 벗어난 트럼프는 대선에 몰입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트럼프 두 정상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트럼프는 과거 미국 대통령들과는 결이 다른 행보를 보여 왔다. 톱다운 방식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합의에는 실패했다. 오는 11월에 치러질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 북미관계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낙선을 하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될 것이다. 또 민주당 대통령이 누가 되든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승계할 확률은 매우 낮다. 설령 트럼프가 재선을 한다 해도 북미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지금보다 더 강화될 것이고 북한은 더 거세게 반발할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이 협상에 임하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또 다른 평행선의 연장일 뿐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70년 넘게 고착화된 한반도 냉전의 틀을 깨는 것은 대혁명에 버금가는 일이다. 20세기의 낡은 유물인 이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는 영웅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과 트럼프는 이 같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지난 1년여 동안 그들이 보여준 협상태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북한이 과연 핵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지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진정으로 원하는지 의구심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벌제위명(伐齊爲名)이란 고사가 있다.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 짓을 하는 것을 이름이다. 즉 명분만 내세우고 실속이 없는 것을 말한다. 북미정상은 세 차례 만났다. 만날 때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세계 유일의 냉전지역인 한반도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 때문이었다. 북미 두 정상이 한반도 분단 종식과 평화체제를 실현시킬지 모른다는 가슴 벅찬 기대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속빈 강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허탈감만 안겨주었다. 비생산적인 기 싸움만 하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실천적 전략이 아닌 정략적 허구(虛構)였음이 드러났다. 새 역사 창출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북미관계가 파국에 이르자 덩달아 남북관계마저 직격탄을 맞았다. 북미협상 남북협력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가운데 마치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북한 발 3월 위기설과 이에 따른 미국의 인내심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비핵화 시한 종료시점에서 ‘충격적인 실제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이미 예고한바 있고 미국도 대규모 무력시위로 대응하고 있다. 3월 중순 예정되어 있는 한미연합훈련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이 계속되는 대북제재에다 코로나 바이러스 파동으로 중국의 지원마저 끊기게 되면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방편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지 모른다. 정부의 대책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미국대선이 끝날 때까지 손 놓고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외교력을 총동원해서 북미는 물론 주변국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한다. 외교는 과정보다 시점이 중요하다. 적절한 시기를 방치한 외교의 방임(放任)은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다. 톱다운 방식이나 중재자 외교는 북미의 하노이회담에서 그 빛을 잃었다. 지금은 다자외교를 펼쳐야 할 때다. 초강대국 틈에 끼어 있는 한반도로서는 처음부터 다자외교만이 살길이었다. 어느 한나라에 올인하거나 종속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계사의 무수한 사례는 차치하고라도 최근 북한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돌변이나 미국의 상식에서 벗어난 방위비 폭증요구와 미군철수 협박만 보더라도 그 답은 명확히 나와 있다. 정부의 이성적이고 냉철한 결단과 적극적인 외교력 발휘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