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종로 나드리에 나섰다.

종로는 서울의 중심부 이면서도 빠르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아 때때로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종로3가역에는 환승객들이 많아서 복잡하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날것만 같아 그다지 싫은 것은 아니다.

 이쪽저쪽으로 문어발을 늘여져 있는 것 같은데, 아니 문어의 다리 숫자보다도 더 많은 길이 생겨나 있었다.

11번 출구라는 곳이 보여 의아해했는데 15번 출구라고 가리키는 팻말 이 보였다. 

멀지도 않은 서울에 살면서도 그것도 집 앞에서 1호선 전철에 오르면 20여 분 만에 도착하고도 남을 거리인데도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찾아가야 할 사무실에 전화해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가를 물었더니 1번 출구라고 하였다.

밖으로 나와 보니 그곳 거리가 눈에 익숙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단성사와 할리우드 극장 자리에는 다른 모습으로 단장된 영화관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옛날 고향 마을에 들어선 것 같은 작은 설렘이 느껴졌다.

약속했던 사람을 만나 점심으로 뚝배기 갈비탕을 먹고 헤어져 돌아오려는데, 이왕 나선 김에 고궁 산책이나 하려는 생각에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TV에서 자주 보았던 탑골공원 앞이었다.

차 타고 지나가며 보았던 공원을 직접 마주하기는 오랫 만이다.

  여기가 바로  tv에서 말하던 노인들의 쉼터였구나 하면서 공원 안으로 발을 돌렸다.

 바닥에 앉아 바둑과 장기를 두는 사람들이 많았고, 맨땅에 신문지 한 장을 깔고 잠을 자는 사람, 또는 알 수 없는 여성들과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거나. 뭔지 모를 단체에서 나온 분 들 이, 아버님 어머님 하며 무슨 연설을 목이 터져라 하고 있었다.

그 연설에 공감을 해서인지 무료해서인지, 손뼉을 치며 호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분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자들이 있어 한 끼 식사 때문에 그곳에 모여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많은 무리의 사람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왠지 모를 서늘함이 몰려왔다.

나이는 조금 많을지 몰라도 그 장소까지 나올 수 있는 건강한 어르신들에게는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드릴 수는 없었을까 하는 주재 넘는 생각을 해봤다.

그 어르신들이 하루하루 시간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생각은 지나치게 건방 질지도 모르겠다.

어르신들 중에는 단순히 그냥 쉬면서 놀고 싶으신 분도 있겠지만, 그냥 노는 것이 아니고 단돈 얼마라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하실 것만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나이 때문에 일자리에서 밀려난 어른들이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면 일을 하고 싶어 하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는 나 역시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닌 것 같지만, 죽는 날까지 일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자들은 나이가 많아도 현실 적응이 빨라서 공원에 가지 않고도 가족들에게 눈치 보이지 않고 지낼 수 있지만,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현실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운 것과 상관없이 나이 든 어린아이가 되어 현실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틀에 빠져서 고집과 노여움에 괴로워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공원에서 소일하는 노인들을 보고 난 후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해 저서 천 원짜리 입장권을 사 들고 종묘에 들어갔다.

종묘의 안과 밖은 너무도 달랐다.

왕과 왕비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정원은 조용하면서도 경건했다.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듯한 높고 높은 기와지붕은 거만을 떨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넓은 정원 앞마당에서는 왕비님의 비단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개량 한복을 입은 젊은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담장 너머 노인들의 모습이 떠올라, 보이지 않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책 속에서만 알아왔던 왕과 왕비님의 흔적을 느끼고 있는 나 역시, 나를 낳고 기르신 내 부모를 과연 얼마만큼이나 품고 살고 있을까?

저기 저  밖의 공원에서 낙엽처럼 몰려다니는 우리 부모들을 그들의 자식들은 찾아 본 일이 있었을까?

부모들은 자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지만, 자식들은 부모를 냄새나는 보따리 취급을 할 때가 있지는 않았었을까?

내 아버지가 공원을 서성이는 모습을 우리 자식들은 한 번이라도 살펴 드렸어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 자식 노릇 해 본적도 없으면서 주제넘은 소리를 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슴속에 밀어 넣고, 종묘에서 나오는데 “잔술 1000원 하고 쓰인 작은 가게 앞에서 또다시 서글퍼졌다.

잔술 1000원이 처음에는 뭔지 몰랐었다.

초라한 포장을 둘러쓴 가게 앞에 두세 명의 어르신이 소주잔을 앞에 놓고 끝 모를 수다를 펼치고 계셨다.

소주 한 병 살 수 있는 여유가 없기에 한 잔씩 사서 드시는 것이었다.

안주가 있을 리 없는 가난한 탁자 위에는 통곡과 좌절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방인 같은 나는 뚜렷한 이유조차도 찾지 못하고  우울한 마음을 앞세워 한참을 걸었다.

늙는다는 것은 슬픈 것이 아니라는 어느 글쟁이의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아 오랫동안 되새김 질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듯한 내 생각에는 늙는다는 것은 분명코 기운 빠지는 삶이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일하고 싶어 하는  건강한 어른들에게는,  공원을 서성이게 하지 않고 일터로 출근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주는 우리의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서 잿빛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무심한  하늘은 커다란 입을 닫고 아무 말도 있다.  

그날이 다 지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