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으로

“안녕하세요? 센터장입니다.

27일부터 출근해 주실 수 있으시죠?

백일을 가슴 조이며 기다렸던 반가운 연락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의 광풍은 우리들의 삶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처음 코로나가 등장하였을 때는 그저 그런 순간의 바람쯤이라고 생각했는데

서 너 달 동안 그가 남기고 간 흔적은 너무도 처참했다.

수 십 년을 살아왔던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제일 걱정됐던 것은

내가 보람을 느끼며 6년씩이나 일했던 일터를 잃게 될까 봐 하는 걱정이었다.

이사 한 집에서 센터까지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6시간 정도였다.

70나이에 출퇴근 6시간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센터를 그만두라고 말하는 딸이 얄밉고 속상했다.

나는 6시간이 아니고 60시간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센터의 눈치가 보였다.

아무 스펙도 없는 나를 오랜 시간 근무하게 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서울을 떠나 멀고 먼 곳에서 출퇴근하는 나를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고 우울했다.

서울 떠난 후유증으로 소화도 되지 않고 얼굴 피부까지 나무껍질을 닮아갔다.

병원을 싫어하던 내가 하루가 멀다 않고 병원을 드나들던 어느 날,

모든 것을 날려 보낼 희소식이 찾아왔다.

“안녕하셨어요? 센터장예요, 이사는 잘 하셨어요?

처음 센터장님 전화를 받고,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구나 하였다.

“이사를 멀리 가셨다고 해서 힘은 드시겠지만, 그래도 출근해 주셨으면 해서 전화드렸어요..

“ 아~내~ 물론 출근할 수 있어요 막상 와 보니까 별로 멀지도 않아요.

교통이 좋아서요.

“그럼 담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그리고요 이번 달부터 강의료를 조금 인상했어요.

“ 강의료를 요?

나는 보잘것없는 나를 잡아 준 것만 해도 과분한 일인데 돈까지 더 주겠다는 소리에 고맙고도 미안 했다.

센터에 나가면 나도 누구에겐가는 필요 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다.

가끔은 힘들기도 하고 속상한 일도 벌어지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은 날이 많아서 센터에 출근하는 내 발걸음은 언제나 꽃길이었다.

센터장님의 전화는 답답했던 내 속을 박하사탕 먹은 듯 화끈하게 뚫어 놓고 기분은 하늘을 날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6시간의 출퇴근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예고도 없이 침범한 “코로나 19 그 것 때문이다.

출근해서 입으려고 큰 맘먹고 구입한 오리털 조끼는 필요 없게 되었고 코로나의 횡포는 꼬리를 보일 듯 말 듯 ,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을 무력화 시키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힘은 그 끝을 짐작할 수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 이번 코로라 에게 당하면서 생각이 바뀌였다

인간의 힘이 무한대로 강하고 대단할지는 모르지만 때로는 아주 많이 나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코로나 때문에 출근하지 못하게 됐을 때, 일주일 후면, 보름 후면, 다음 달이면,,, 하며 희망을 갖고 기다렸었는데

일주일이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나 자신의 변화에 놀라게 되였다.

꽃 피는 봄날도 꽁무니를 보이던 어제,“27일부터 출근하라는 센터의 연락을 받고 반가워하였지만 사실 무작정 반가운 것은 아니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센터에 출근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는데, 몇 달 동안 강제 방콕을 하며 딸에게 무슨 저녁 밥상을 차려 줄까?,

하는 엄마로 살다 보니 습관인지 중독 인지가 되어 버렸다.

몇 달 전에는 열정 넘치는 직장인 이었는데

딸 밥상 차리는 재미가 있어서는 아니고 직장인으로서의 의지와 이유가 없어진 것 같았다.

내가 수 십 명의 참여자들 앞에 서 있었던 것이 거짓말 같게 느껴져 자신이 없어졌다.

그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했었던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시간을? 6년 동안을 해 왔던 일인데, 겨우 백일 정도의 공백에게 빼앗기다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사람은 앉을 때 설 때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열정과 보람이 사라져 버린 텅 빈 가슴과 머리로 출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힘은 때때로 미약하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강한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믿음을 부여잡고. 다시 한번 힘을 모아 볼 생각이다.

열정이 사라진 빈 몸뚱이의 출근이 두렵고 미안하기는 하지만,,, .

비록 오늘의 결정이 6년간의 보람을 악몽으로 만들지 모르겠지만 도전해 보고 후회를 해도 해야겠다.

꽁지 빠진 닭처럼 머릿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검은 머리카락 보다 더 많아진 백발을 염색약으로 감추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코로나에게 강탈당한, 나의 찬란한 출근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