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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님의 글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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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16  22: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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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님의 글 펌 합니다.

ㅡㅡㅡㅡㅡㅡ

2003년의 겨울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도쿄 도립 대학원에서의 수업이 끝난 날이었고, 학생들끼리 모여서 같이 술을 마셨다.(그러니까 일종의 책거리다)

나를 지도하고 있는 지도 교수인 미야다이 신지 선생은 본업인 사회학 연구 이외에도 많은 미디어 활동으로 유명한 분이다. 여기서 이분의 발언은 사뭇 진보적이고, 일본에서 입신양명 출세와는 거리를 둔 그런 과격한 발언도 많다. 젊은층에 그래서 인기가 많았다. 언론인이나, 시민단체에서 활동 중인 일반 사회인들도 수업에 많이 참석한다. 그날, 술자리에 낀 양반 중에 '고미'씨라는 양반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다. 당시 나이가 40대 후반에 들어선 이분은 일본의 교육관련 NPO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미야다이 교수의 소개다. (이분 이름은 잊혀지지가 않는데, 일본에서 고미라는 단어는 쓰레기를 뜻하는 단어와 같은 발음이다. 한자음으로 쓰면 다섯가지 맛등을 뜻하는 한자어가 된다, 처음듣고 무슨 자학개그 인가? 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까지 마시고 먹고하던 이 양반은 내가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라는 말을 듣자, 반색을 하면서 내곁으로 왔다. 그리고는 술을 권하면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상, 저는 한국사람들을 존경합니다"

"?"

그러면서 고개까지 꾸벅 숙이신다. 나이도 많은 양반이 별안간 이러니 난 내심 당황했다.

왜 그러시느냐? 라는 나의 질문에 그가 들려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사실, 전 1980년 까지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대단히 무시했습니다"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내 당혹감은 더 커져갔다.

"쿠데타로 나라를 차지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친듯이 열광하는 그때 한국 국민들.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에게 열광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더군요. 그 왕조 국가와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좀 심한 표현을 하자면 미친 나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경멸했었죠"

아, 그런 이야기인가. 나는 순간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좀 설명하려는 나의 말을 막듯이, 이 투박하게 생긴 일본인 중년 아저씨의 말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제 시각을 완전히 바꾼건 제가 갓 20살때 지켜본 한국의 광주사건(일본에서는 흔히 이런 표현을 쓴다)이었습니다."

아... 이분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이때부터 감이 왔다. 내 얼굴은 조금 상기됐다.

"...시민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정권을 쥔, 총 든 군인들을 겁내지 않고 신념을 위해서 싸우는 광경을 봤죠. 이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를, 한국사람들을 다시 보게 됐어요. 그에 반해 일본인들은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단 한번도 윗사람들의 불의에 항거하는 시민 혁명이나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이 어울릴지 어떨지 부끄럽지요. 어떤 사람들은 현실의 이상적인 공산국가라는 말을 막 합니다. 부끄럽지도 않나봐요.

그런 우리들에게 광주 사건과 같이,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것이 아무리 무서운 권력이라도 분연히 맞서 싸우는 광경은... 참 일본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

이 아저씨는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그러니 한국 사람들이 나라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결국 일본 사람들은 나라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그건 목숨 걸고 싸워서 쟁취한 게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요,,,저같이 시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한국이 부럽습니다..."

...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조금은 쓴 웃음을 띄고는...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날 사람들 눈을 피해서, 술집 화장실에서 울었었다.

내 머리 속에 스친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난 모르고 있었지만... 몇 십 년 전 그날 광주에서 피를 뿌린 시민군 분들이나 그 시민군들에게 밥을 해서 날라주던 많은 누이들, 그리고 그날 자식과 가족을 잃은 많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그 분들이 싸워준 덕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주변의 나라사람들이 다시 보아주고, 그게 오늘날 '나'라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지나간 일이이라고, 남의 일이라고 묻어두고 쉬쉬하려고 한다고 하여도, 그 지나간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오늘을 낳은 어머니다.

나는 가슴 한구석에 광주라는 어머니가 낳은 오늘을 살고 있다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묻고 또 살아간다.

부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다시 미래의 누군가의 오늘을 규정할 것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마지막에

타국에서 공부하는 한 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오늘을 소중히 살아가야 함을, 역사가 소중함을 가르쳐 준 많은 분들.

그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바로 그분들에게 거듭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이 만들어 준 소중한 가르침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이들에게 그것을 또 가르치겠습니다.

부디 편히 들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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