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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선생님과 반지- 신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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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21  11: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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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쨍할 것 같은 날씨에 나이 69세의 중늙은이는 몸을 끌고 밖으로 나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아, 푸르렀던 여고 시절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식탁에 앉았다.

나의 여고 시절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그러니 자연이 성적은 좋을 수가 없었는데도, 고3 때는 규율 부장으로 경찰서장님의 공로상을 받고 졸업을 하였으니 좀 미안 한 일이다.

선생님들께도 예쁨을 받는 편이였고, 친구들과도 모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다른 과목은 걸음마 수준이었고 국어와 가정 시간에는 두각을 보였었다

그때는 글짓기 숙제가 많았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나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글짓기 한편에 청소 당번 대신하기, 만두, 라면, 단팥죽, 사주기,,,등등으로 나에게 로비를 펼쳤었다.

겨울방학이 되기 전엔 어김없이,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써야 했는데 아이들은 기절할 듯이 싫어했다

나는 공부는 못했지만 글쓰기는 좋아해서, 조금 과장을 한다면 우리 반 65명 중에 30명분은 내가 대필한 편지였을 것만 같다.

국군 장병 아저씨께,,

아저씨 추운데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저는 서울 뭐 여고 1학년 아무개입니다

아저씨들이 지켜주셔서 우리는 잘 지내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별 필요 없는 이야기로 편지지를 채워서 보냈었고, 그때만 해도 군인 아저씨들이 즐길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시절이라

여학생 편지를 남학생 편지 10장하고 바꿔 읽었다는 말도 있었다.

자매부대 방문도 했었는데 군인 아저씨가 끓여 주신 내장탕 이란 것을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

옆에서 시중 들어주는 어려 보이는 아저씨에게,  “아저씨들은 이렇게 맛있는 것을 매일 먹어요?

하는 내 질문에 그냥 미소로 답하던 아저씨의 대답의 뜻을 그땐 몰랐다.

지금은 웬만한 집 식탁보 다도 더 푸짐해졌다고들 하는데 그때의 군인 아저씨들의 먹거리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아마도 자매부대 손님들이 왔다니까 특식이었을 것이다.

군인 아저씨와 여고생들의 나이로 보면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그때의 느낌으로는 군복 입은 군인 아저씨는

큰 어른 같아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내 주머니에는 군인 아저씨가 몰래몰래 넣어준 이름과 주소가 적힌 메모가 일 곱 장이 있었다.

편지 주고받자는 간절한 마음인데 아마도 그 사실이 들통나면 군인 아저씨는 기합이란 것을 받을 것인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그렇게 힘든 결정이었겠지만 우리들은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함께 가셨던 교장선생님이 눈치를 체고 모두 압수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메모를 내놓지 않고 있다가 걸리면 정학을 시킨다는 엄포에 모두자수해야만 했다.

그때 우리는 순진했었나 보다. 안 받았고 하면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요즘 아이들은 대학 입학에 목숨 걸고 살기에 낭만도 없고 놀 줄도 모르는 것 같아 측은 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우리 때는 공부 좀 한다 하는 아이들이나 시험 때 코피를 쏟았다던 가, 어쩌니 했는데 지금은 유치원을 보낼 때도 대학 보낼 때 도움이 되는가를 따진다고 해서 씁쓸했다.

그래도 우리들의 학창 시절에는  선생님과의 관계도 끈끈한 스승과 제자로 지냈고 공부 시간에 땡땡이도 쳤고, 숙제 안 했다고 손바닥을 맞으면 눈물 찔끔 과 함께 키득 거리기도 하였다

막대기로 맞은 손바닥이 빨갛게 달아올라, 호호 불며 우는 시늉을 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글을 쓰고 있자니 그 친구가

갑자기 보고파 졌다.

그렇듯 푸르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봄날, 수학 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영화배우 신성일을 닮은 대단한 꽃미남이었다

훤칠한 키에 균형 잡힌 체격은 걸음걸이에서도 꽃이 피는 것 같았다

그런데다가 선생님은 약간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아도 살짝살짝 손등으로 치면서 걸으셨다.

그 모습이 너무 멋져서 나는 그 선생님이 수업 들어가신 교실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우연을 가장하고 스치면서 인사하고 바라보며, 한마디라도 나에게 말을 건 내주시기를 기대하였다

선생님은 나와 스칠 때마다 나에게 함박꽃 같은 웃음을 내 가슴속에 던져 주고 가셨다

나는 선생님의 화살에 꽂혀서 정신을 못 차리고 지냈지만 선생님행동에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수학 점수는 빵점에 가까웠지만 나를 꽤나 예뻐해 주시는 것 같았다.

내가 좀 많이 예쁘게는 생겼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고 수 십 년 이 지나버린 지금까지도 명확한 답은 모르겠다.

나이 60살을 넘기고 나니까, 주책 이란 병이 절정에 올라 망령을 떨고 있나 보다.

어느 날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재미없이 놀고 있는데 퇴근하시던 선생님이 내 곁으로 오시더니 나에게 농구 시합을

하자고 하셨다.

선생님은 규정 거리에서 열 번을 넣으시고 나는 아무 곳에서나 다섯 번을 넣는 것으로 내기를 하였다.

나는 무조건 이유 따위는 없이 선생님과 하는 놀이인데 싫다고 할 리가 있었겠는가?

운동이라면 자다가도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싫어하는 나였지만 교복 치마가 허리까지 날려도 아랑곳 않고 물 만난 고기처럼

뛰고 날고 하였다.

시합의 결과야 말할 것 없이 나의 완승이었다.

선생님은 백 원에 7개 하는 고기만두도 사주셨고, 단팥죽도 내 친구들에게까지 사주시는 황홀한 사건을 만드셨다.

달콤한 단팥죽을 혀끝에 느끼며 선생님도 나를 좋아하신다고

단정 짓고, 무지개 꿈을 키워갈 무렵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던

날이다

커닝을 막는다고 책걸상을 따로따로 띠어놓고 시험을 보고 있는데 시험감독관으로 수학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모범생처럼 단정하게 허리를 세우고 손바닥으로 깻잎 머리를 쓸어내리고 엷은 미소까지 얼굴에 흘리며 시험문제를 풀고 있었다.

선생님은 꽃향기를 뿜어내며 왔다 갔다 하다가 발을 멈추고 내 곁으로 오셨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 손을 덥석 잡으시는 것이었다.

,”어머머, 교실에서 어쩌자는 거야?

선생님의 뜨거운 손에 잡힌 채로 온갖 무지개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선생님도 나를 좋아했구나에 코드가 맞춰지니까 일어서서 만세 3창이라도 부르고 싶었다.

가슴속에 있던 짝사랑의 조각들이 조용한 교실을 쓰나미처럼 쓸며 다녔다.

결코 길지도 않았던 시간 동안 온갖 꿈속을 헤매 다가 선생님의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반지 빼, 내 손가락에는 엄마가 생일날 선물해 주신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선생님은 나의 손을 사랑으로 잡으셨던 게 아니고 학생 신분에 어긋나는 금반지 낀 손을 체포하신 것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참으로 많았다.

머리가 길어도 안됐고, 교복 치마를 짧게 말아 입어도 안됐으며 깻잎 머리는 정학 깜 이였다.   귀 밑. 2.5센티의 규정에 맟쳐

가위 세레를 받아야 했는데 내 머리는 곱슬이라서 잡아당겨 잘리면 영락없는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 같은 형상이 되어서

서럽게 울었을 때도 있었다.

엄격한 규율에 반지, 목걸이, 귀걸이는 꿈도 꾸지 못하던 학교에서 과감하게도 금반지를 끼고 있으니 엄청나게 용감했었나 보다.

,”반 지 빼,,,,라는 선생님의 짧은 지시에 나는 떨 더 름 한 얼굴로 반지를 빼서 선생님께 넘겨 드렸다.

그때 선생님의 얼굴에서는 고기만두와 단팥죽을 사주셨던 부드러운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잔뜩 주눅 들어있는 내 몸 가득히 앞으로의 선생님과 나의 앞날에 얼음 눈이 내릴 것만 같았었는데, 오히려 그 일로 하여 선생님과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선생님은 나에게서 압수한 금반지를 선생님의 새끼손가락에 끼고 다녔다.

나는 반지 돌려 달라는 핑계로 시간 날 때마다 선생님 뒤를 쫄쫄 따라다니며, “반지 주세요,,, 선생님  반지요,,,, 오,,, 하며

어리광이 아니고 교태까지 부리면서 말이다.

나는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워졌다.

공부에는 관심 없었지만 학교에는 내 사랑 수학선생님이 계시니까 꼬박꼬박 등교했다.

한동안 핑크빛 꿈을 꾸며 지내고, 고 1을 마감하는 어느 추운 날 그는 떠나가 버렸다.

어느 시인처럼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가신 것이 아니고교직을 그만두고 은행으로 가셨다.

꽃 소식과 함께 오셨던 총각 선생님은 어린 가슴에 첫사랑의 배반의 꽃을 남겨놓고 사라져 갔다.

가면서도 잘 있으란 인사 한마디 없었으니 구멍 뚫린 가슴을 매울 길이 없기에 선생님이 가셨다는 남산 아래 무슨 은행까지

찾아 나섰지만 선생님은 만나지도 못하고, 시작도 못한 나의 사랑은 끝났다.

선생님도 나를 제자가 아닌 여자로 보신 적이 있으셨을까?

왜? 농구 시합을 하시고 만두도 사주셨을까?

왜? 반지를 빼앗아서 선생님의 손가락에 끼고 다니셨을까?

, 나도 참 주책이다,,

고 1이면 17살인데 무슨 여자였겠는가?

그런데, 말이에요,,

그 선생님은 정말 멋진 분이셨는데, 수 십 년이 지나버린 지금까지도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되고 있다.

,정인호, 선생님 “

“열 일 곱 살 키 크고 예쁜 아이 기억나세요?.

선생님께서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계신다 해도 열일곱 살의 내 가슴속에는 첫사랑으로 기억되어 선생님은

언제나 나의 왕자님이십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추억과 함께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어린 왕자를 만나러 떠나야겠다.

60년을 살고도 알 수 없고, 아니 60년을 더 산다 해도 어린 왕자의 대답은 들을 수 없듯이,삶의 모습이  참 애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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