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떠나던 날'

그날 나는 세 곳의 병원에서 외면당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약간의 미심 쩍인 상태가 보여 집 근처 병원을 시작으로 멀고 먼 여행이 시작되었다.

길지 않은 진찰을 끝낸 의사선생님의 굳은 얼굴이 낯설고 의아해 하는 나에게 큰 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내 몸에서는 별다른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데, 의사선생님 말씀은 내 몸속에서 9개월을 함께했던 아기가 숨을 멈췄다고 하였다.

“아이가?

그때 나는 아이가 떠났다고 하는 말을 듣고도 하나도 걱정되거나 슬프지도 않았고, “뭐 그렇다면 수술하면 되겠네, 했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아기가 유산됐다면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가 울고불고 하지만, 그날 나는 너무도 담담했고 오히려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나에게 위로의 선물 같았다.

9개월을 함께하였던 아이가 떠났다는 게 선물이고 위로라는 생각을 하였다면 정신이상을 의심하며 손가락질을 면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그날 진심으로 그 상황이 고마웠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큰 병원으로 혼자서 갔다.

두 번째 병원에서도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는 수술을 결정하였다.

아침 일찍 나서서 첫 번째 병원을 거쳐 두 번째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나니 오후가 되였지만 그때도 두렵거나 슬프거나 외롭지도 않았고

간단한 수술이 끝나면 집에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주 편했다.

어둠이 밀려오던 시간쯤, 수술하겠다면 담당 의사가 들어와 하는 소리가 수술하기가 위험해서 자신의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가 없다며

대학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수술비까지 환불하면서 위험해서 수술 못하겠다고 하는 의사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다..

“왜요? 선생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수술이 안된다는 거예요?

의사는 내 상태가 매우 위험하다고 하지만 정말 나는 정신도 몸도 정상 같아서 따져 물었지만 의사는 빨리 가라고 떠밀었다.

두 번째 병원에 갈 때도 나 혼자서 택시 타고 혼자서 갔다

대학 병원에 도착해서 첫 번째 두 번째 병원에서의 진단서를 첨부하고 입원 수속을 하려니까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내 보호자라는 남편은 바람피우느라고 집을 비운 지 오래되였기에 가까이 살고 있던 남편의 누님에게 보호자를 청했다.

남편과 어머니가 다른 시누님이 와서 보호자가 되어 입원을 한 후 어떻게 연락이 됐는지 남편도 손님처럼 왔다.

세 번째 병원에서도 내 몸 상태가 수술도 못하고 위험해서 하다며 온갖 검사만 할 뿐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무엇이 위험한 건지 나는 의학 상식이 없어서 몰랐지만 이상한 것은 나는 아무런 통증도 없기에 의사들의 걱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누님은 아침밥해야 한다며 가셨고 내 남편은 통행금지에 걸리면 안된다며 직장으로 야근하러 간다고 갔다.

그때는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장이 밤에 일하는 것이라는 말을 믿었기에 밤마다 출근하는 줄 알았지, 여자하고

동거하는 집으로 갔다는 것은 그 후에 알았다.

그때는 그런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그 후 헤어지고 난 후 많은 시간이 지나서 생각이 날 때는 용서할만한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여자에게 미쳐 있다고 해도 자기 아이와 아내가 사경을 헤 메고 있는데 병실을 지키는 게 아니고 여자에게 가서 잠을 자고 아침 10시쯤인가 새 양복에 새 넥타이 매고 웃으며 병원에 왔었다는 게 뒤늦게 분노가 폭발한다.

세 번째 병원에 입원을 하고부터는 내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정신이 들락 날락 하더니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였다.

어느 때쯤 시간 인지는 모르겠는데 의사선생님의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저 환자. 보호자에게 빨리 연락해 빨리”,,

내 몸이 어떤 상태인 줄은 알 수 없었지만 의사선생님이. 내가 곧 떠난다고 하는 사형 선고는 똑똑하게 들렸다.

나는 너무도 편안했다,

이제는 남편과의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편안해졌다.

그런데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행복함에 빠져들 때 남에 집에 잠시 맡겨두고 병원에 온 두 살짜리 딸이 보이지 않는 내 눈앞에 울고 서 있었다

금방 병원에 다녀와서 딸을 데려가겠다고 했는데, 내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나 편한 세상으로 가 버린다면 내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 때 우유는 누가 주고 자장가는 누가 있어 불러 줄까?.

그날 나는 아내로서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에 두 살짜리 어미였음을 잊었었다.

종교가 없었던 나는 하늘과 땅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어린 딸 곁에 조금만 더 머물 수 있게 해 달라며 신께 매달렸다.,

어느 때쯤인지 시간은 알 수 없는데 바쁘게 뛰여 다니는 신발 소리 침대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러고는 또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난 후, 내 두 눈에 천정 형광등 불빛이 보였다.

의사선생님은 산후 처리를 하고 있었고 그 뒤에 신기한 듯 무표정한 간호사가 축 늘어진 아이를 보고 있었다

나는 누운 채로 별 감정 없이 .”저 아이가 나하고 아홉 달을 함께했던 그 아이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고는 다신 쳐다보지 않았다.

병실로 옮겨진 후 듣게 된 사실은 혈압이 떨어지고 열이 높고 혼수상태라서 수술을 할 수 없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려는 그때 아이가 혼자서 나왔다고 했다.

분만한 나는 혼수상태여서 몰랐지만 죽은 아이가 혼자 나오는 광경에 의사 간호사들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고 괴담처럼 들려줬다.

하루 이상 고열의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아이 몸은 흠집 하나 없이 뽀얀 얼굴로 잠들어 있는 듯하다고 했다

첫아이 낳았을 때는 산후가 좋지 않아서 한두 달 움직이지도 못했었는데 의사 세 분이 가망 없다며 사망을 예언했던 사산을 하고 났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이 너무 건강했다.

그래도 걱정 많은 의사선생님 때문에 멀쩡한 몸으로 1주일을 병원에 잡혀 있다가 의사 간호사님들의 의아해 하는 인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그날 남의 집에 맡겨 뒀던 딸 은 낼 모래면 중년의 나이가 된다.

아내로 살았을 때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이 많았지만 어린 딸의 어미로 살아온 시간들은 힘들어도 꽃밭이었다.

지금은 내 삶의 꽃밭에서 늙어가는 내가 추억 뒤지기를 큰 고통 없이 야금야금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