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흔적은 내 스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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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울려대던 휴대폰 소리와 카톡이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코로나19의 감옥살이로 지내다 보니 전화벨 소리마저 반갑고 기다려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광고나 물품 구매 요청 전화조차 반가운 것은 무인도에 갇혀 버린 듯한 현실에서 탈피하려는 아우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언젠가부터는, 오늘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할까 하는 계획은 없이 아침을 맞이하고 습관처럼 찾는 이 없는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티브이 리모컨을 찾으며 또 하루가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석 달 전에 화단에 심어놓은 '무와 배추'가 겨우 자신의 종류를 알리고 있었지만 김장철이 지나버린 지금도 애지중지하며 아침마다 물 선물을 하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내 화단의 무와 배추는 식탁 위에 올라서 내 입을 감격 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혹시라도 하는 그런 희망을 갖지 않으면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그들과 대화라도 해야만 하다.

'배추와 무'를 닮은 녀석들과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휴대폰 소리가 적막을 깼다.

“으~응 민이 엄마가 웬일이야?

“네 형님 별일 없으시죠? 허리 아프신 건 좀 괜찮으세요?

“응 그래, 나는 별일 없는데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한 거야?

“저 지금 신내동 아버님 댁에 왔는데요?

“거긴 왜?

“아버님 집 물건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너무 많고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형님이 와 주시면 안될까요"?

4촌 동생 댁의 전화였는데 동생 댁의 시아버지는 한 달 전에 “92년의 소풍을 끝내시고 떠나신 내 고모부 시다.

고모가 떠나시고 아들딸들이 모셔 가려고 하였지만 10여 년을 홀로 사셨다.

동생 댁의 부름을 받고 도착해 보니 나 역시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고모부는 고모가 살아 계실 때도 물건을 쓰지 않고 저장하는

습관이 있었다.

심지어는 남이 버린 물건들도 좋아 보이는 것이 있으면 주워와서 옥탑 방에 모셔 뒀기에 고모하고 싸움도 많이 했었다

자식들이 옷을 사 드려도 입지 않고 아꼈는데 오죽하면 용돈이 모이면 은행은 못 믿겠다며 검은 비닐봉지에 나눠서 감춰 뒀다가 쓰레기로

버려졌던 일까지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고모부의 정신 상태는 완전 정상이었으니까 병 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가난한 시절을 겪었기에 아끼고 버리지 못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가족들은 이해하고 지냈는데 고모부가 떠나고 난 공간은 엄청났다.

우선 재활용 물건 수집하는 곳에 전화를 하였더니 달려왔다.

옥탑 방에 있는 박스, 가방 들 속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업체의 트럭에 옮겨졌다.

가구는 가구 트럭에, 실렸는데 고모부 칠순 때 큰 아들이 선물한 비싸 보이는 돌침대도 옮겨졌다.

고모부는 처음에는 비싼 걸 샀다고 아들을 나무라더니, 뜨끈한 돌침대가 좋아서 허리 통증이 나아졌다며 싱글벙글하셨다

고모가 시집올 때 맨몸으로 와서 장롱 하나 갖기가 소원이라며 12달 곗돈을 타서 장만했던 사군자 그림이 새겨진 세 짝짜리 장롱도 나갔고

부엌 그릇까지 나갔다.

중고 업자 사장님과 미리 약속한 것은 돈은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쓸 때가 있건 없건 모든 것을 가져가 달라고 했다.

며느리도 딸도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말에 내 속마음은 많이 속상하고 서운했다.

며느리는 사람의 도리인지 법이 두려웠던지 사진은 모두 챙겨 갔는데 그나마 위로가 됐다.

어둑해질 때쯤에서야 옥상 방이나, 30평 되지 않는 고모 내외가 수 십 년을 함께했던 공간이 휭 하게 벽 만 남았다.

며느리는 속 시원한 표정이었는데 “한치 건너 두치 인지 나는 마음이 편치 않고 고모 내외의 흔적이 영영 사라진 것 같아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색 바랜 벽지만 남겨진 고모부의 텅 빈 공간을 생각하면서 내 방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내가 이 방의 주인이지만 내가 떠나고 나면 내 책상, 내 컴퓨터, 내 볼펜, 책상 서랍에 든 물건들이 내 딸의 한마디로 중고 트럭에 실려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두려워졌다.

나는 명예가 없는 사람이라서 한동안 자격증, 수료증, 상장, 받는 일에 올인한 결과 꽤 많은 증거들이 있는데, 나 스스로는 열심히 잘 살았다는 보상의 증거라는 자부심을 만끽하지만 아마도 내 딸 눈에는 별 볼일 없다고 할 것 같기는 하다.

시장님 초청 때 목에 걸었던 명찰, M 방송국 때 명찰, 영화제 최고 상장을 받고 눈물 흘렸던 상장, 호스피스 수료증까지 참으로 많고 많은 흔적이 내 재산인데 물론 나만의 감격이고 자랑이겠지만,나는 우울하거나 괴로울 때 방송국에서 보내 준 CD를 틀어 들으며 상장 ,수료증 표창장들은 쓰다듬으며 위로를 받고 지내고 있다.

그것 들은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흔적'이다.

내 나이 70이면 많은 나이는 아닐지 몰라도 그렇다고 적은 나이도 아니라는 생각인데 내 소풍이 끝났을 때 내 딸이 정리를 하게 하는 것보다 여유를 갖고 시간 날 때마다 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밍크코트나 명품 가방은 없으니까 나 떠나고 났을 때 살펴보지 않고 그냥 버려도 될 것 같은데 문제는 내 자존심이고 자랑인 CD. 상장, 명찰,내 얼굴이 박힌 신문 잡지 ,그런 것들은 어떻게 해야 될지 망막하다.

며칠을 궁리하다가 나의 떠날 날을 알 수 없으니 우선 부피를 줄여서 정리하기로 하였다.

상장 수료증 자격증을 모아보니 서른 장이 넘었다.

30장도 넘었지만 우선 케이스에서 모두 빼어 한곳에 모아 봤더니 노트 한 권 분량도 되지 않았고 CD도 케이스에서 모두 뺏다.

명찰이나 신문 잡지도 정리하는데 가슴이 자꾸만 서러웠다.

그래도 내가 좀 서운한 것이, 훗날 딸이 정리하면서 이런저런 힘들어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위안을 스스로 했다.

나는 내 부모님이 떠났을 때 철이 얼마나 없었는지 부모님의 유품을 챙겨놓지 않아서 수 십 년을 살면서 때때로 가슴을 치며 살아가는데

내 딸도 그렇게 후회하는 삶을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의 물건들을 간직해 주었으면 한다.

그 바램은 나를 위함이 아니고, 내 부모의 유품 하나 간직하지 않고 살아온엄마의 고통과 후회를 대물림하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지막 사랑이다

끔찍한 상처를 남긴, 2020년을 보내는 오늘 첫눈이 내렸다.

새 달력의 날들 속에도 내 삶이 있으리라는 바램과 함께 정리를 하고 또 뭔가는 모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