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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일 동안 나를 키운 것은 ' - 신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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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01  12: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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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일 동안 나를 키운 것은 '

 

어느 시인은 글로 말하길, “자신을 키운 것, 8활은 바다”라고 했다. 아니, 그렇게 썼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난 4백여 일 동안 나를 살게 한 것은 바다가 아니고 방송이었다.

코로나에 빼앗기기 전 6년 동안, 나는 참여자들에게 집에 앉아 티브이나 유튜브를 보며 시간 죽이기를 하지 말고 할 일이 없어도 밖으로 나가라고 떠들어댔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짜로 주어주는데 그 시간을 집에서 타인들이 노는 걸 보며 허비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배신하는 것이라며 과할 정도로 떠들어 댔었는데 지금 나는, 방송이 고맙고 다행스럽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다.

나는 아흔아홉 가지에 재능이 없는데 그중에서도 노래와 춤 은 두 눈 뜨고 귀를 열어 보고 듣지 못할 정도이다.

그런 나를, 춤과 노래가 코로나라는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하여 주었으니 세상 떠날 때까지는 장담하지 말라고 한 말이 실감되었다.

드라마에 빠져 웃다가, 화내다가 하던 나는 트롯멘 들의 왕 팬이 되어 본 방송은 물론 재 방송을 가리지 않고 보며 웃고, 울고, 황소만 한

몸뚱이로 박자까지 맞춘다.

춤을 출 때는 우리 집이 제일 꼭대기라서 누가 볼 걱정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지나가던 비둘기라도 볼까 봐 문은 닫고 춘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자살 가족의 사연에 멈추게 됐다.

부모, 형제 자녀가 어떤 이유에서든 스스로 떠나버렸을 때 떠난 사람은 고통에서 헤어났을지 모르겠지만 남겨진 사람의 삶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며 죽은 자에게 위로의 말을 하겠지만나는 죽은 이보다 살아야 할. 남겨진 그들이 더 걱정이 되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백 년도 못 살면서 때론 죽음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모든 삶에 희망이 없다며 손을 놓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크고 거대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남겨질 가족 때문에 마음을 진정

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내가 부모님과 함께 하던 때에는 나에게 형제자매가 없어서 외롭다거나 아쉽지가 않았다.

오히려 무남독녀 외동딸이 귀했던 시절에 좀 있는 집 외동딸 노릇 하기는 주위에 많은 부러움을 받을 수 있어서 스스로 공주처럼 느껴졌기에 좋았다.

그런데, 내 나이가 어느덧 가을을 지나더니 겨울도 막바지 꼬리에 들면서부터 아무것도 없는 앙상한 나무 같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

외롭다 못해 삶이 무서워질 때면 이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엄마가 다른 오빠가 원망스러워진다

그때가, 중학생이 되고 첫 여름 방학 때였는데 새엄마 노릇하기가 죽도록 싫어하셨던 내 엄마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집 밖으로 떠돌던

오빠의 부고를 받았다..

내 오빠였던 오빠는, 그리워 찾아 헤매던 친엄마를 만난 후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는 비보를 형사님의 방문으로 듣게 되였다..

찾아 헤맸던 오빠의 친엄마는 이미 새 가정이 있었기에 오빠를 외면하였고.친엄마, 새엄마에게서 버림받은 오빠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는가 보다.

나는 철이 없어서였는지 구박덩이 오빠의 죽음이 우리 엄마 아버지의 삶을 고통 속에 밀어 놓을 것을 그날에는 몰랐었다

오히려 간간이 찾아와서 엄마 아버지가 부부 싸움을 하게 만들었던 오빠가 사라졌으니 다행스럽다고 생각까지 했다.

그랬는데 그 일이 있고 10여 년 만에 내 엄마 아버지는 50대 나이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젊은 나이의 부모님이 왜 그렇게 되셨는지를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몰랐었다.

새엄마였던 내 엄마는 남편의 자식을 받아주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는 자책으로 가슴속에 후회와 고통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아버지 역시 하나뿐인 아들을 품어 주지 않은 것에 슬프고 안타깝고 아내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평소에는 그런 마음을 내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는 어쩌다 술에 취하면 아무 이유 없이 엄마를 폭행하셨고 엄마는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그 폭행을 당하셨다.

전쟁 같은 밤이 새고 술에서 깨신 아버지 눈앞에는 만신창이 되여 쓰러져있는 엄마가 있었는데, 그런 참혹한 광경에 아버지는 짐승 울음을

내며 통곡하셨다.

손수 약을 달여 엄마에게 내밀면 엄마는 아무 소리 않고 받아 마셨는데 나는 때릴 땐 언제고 약을 지어 먹게 하는 아버지나 그걸 받아 마시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짐작하게 되였다.

두 분은 두 분 나름대로 벌받고 계셨던 것이었다.

내 엄마가, 새엄마가 되어주지 않은 게 잘못이고, 친엄마가 외면한 것이 잘못이겠지만, 그렇다고 죽음으로 응징한 것은, 오빠가 정말 원망스럽다

보란 듯이 잘 살면 안됐느냐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을 오빠를 이해하기가 사실 나는 싫다

그런 오빠만 아니었으면 나도 아버지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갔을 테고 ,내 딸에게도 외갓집이 있고, 남편이 속 썩인다며 쪼르르 달려가서 하소연할 친정이 있을 텐데 난 지금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나는 떠난 사람이 원망스럽고 이해하기가 싫다.

오래전에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부모님 산소를 찾았을 때 산소를 쓸어안고 통곡하던 어느 어머니에게 사연을 물어봤던 일이

있었는데 그 어머니 말씀이 총각 아들이 아이가 둘이나 있는 여자하고 결혼한다기에 말렸더니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었다.

남겨진 그 어머니는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나도 그때까지는 그 어머니의 고통이나, 나의 고통을 몰랐었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불쌍하지 산 사람은 잘 먹고 잘 산다고 말을 하는데 내 생각은 떠난 사람은 고통에서 헤어 날수 있을지 모르지만

남겨진 가족은 그날부터가 고통과 눈물의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날 때면 결혼을 반대해서 자살했다는 그 아들의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한다.

아마도 내 부모님의 가슴속처럼 멍들고 구멍이 깊게 파였으리라는 생각을 필요 없이 하고는 한다.

부자나 잘난 사람이나 일생을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 세상 뜨고 싶다는 생각을 손가락 발가락 수만큼만 한 사람도 있고 머리카락 숫자만큼 한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우리가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은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으며, 지켜야 할 내일이 있기에 삶의 일기장을 덮지 않는 것 이리다.

나는 오늘도 14살의 어른 같은 아이의 '여백'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시원하게 울었다.

울다가 웃으면 어쩐다는 말을 무시하고 사위 삼았으면 좋을 것 같은 통통한 남자가 온몸으로 부르는 '태클을 걸지 마'에 발장단을 맞추기도

하다가, 어느새 인간미가 넘쳐나는 꽃 미남의 '내 이름을 아시나요'에 한강물을 넘치게 하고 말았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면 산다는 게 뭐 별거냐고 하던 말이 정 답 같다는 생각이다

이젠 코로나 란 녀석을 원망할 만큼 하고 나니 용서가 되는 게 아니고 그냥 삶의 시간 중에 하나였구나 해진다.

청춘이 붉은색도 아니고 사랑이 핑크빛도 아니라고 하였듯 우리의 삶이 언제나 검은색이 아닌 것처럼, 흰색도 아닐 것 같은

생각으로 오늘과 내일을 살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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