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문밖으로 흰 목련꽃 무더기가 보였다.

아직 4월인데 목련이?

목련은 5월의 여왕이 아니었던가? 하는 필요 없는 생각을 고집하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 베란다는 고층이라서 목련꽃 향이 올라올 수 없겠지만

멍멍이 코도 아닌 나는 온몸으로 목련 향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전화 왔쇼, 전화 왔쇼,

잠깐의 멍 때리기를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재촉이 심하다.

“네 여보세요?

”저~어 신춘몽 선생님 되시나요?

모르는 번호에 모르는 목소리였다.

선생은 뭔 선생?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소리가 좋았지만

미안스러워서 스스로 겸손을 떨어 본 것이다.

“어디세요?

”네 선생님 저는 수원대학교 미디어학과 학생 아무개입니다.

전화 통화 가능할까요?

“대학교 학생이? 네~에 괜찮은데 어떻게 나를 알고 전화 줬어요?

요즘은 이상한 전화나 문자에 엮이면 큰일 난다는 사건을 많이 봐 온 터라

아는 사람이 아니면 통화를 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조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젊은 여대생이라는 사람의 전화 방문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더구나 내 전화번호는 물론 이름까지 알고 있으니 정신을 똑바로 챙기고

수화기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네 선생님 0“땡 방송국 박 피디님께 선생님을 소개 받았습니다.

아 ”박 피디님? 잘 알지요. 그랬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네 지난번 인천에서 열린 1인 미디어 행사에서 선생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많이 받고 선생님의 성공담을 제 졸업논문 주제로 담고 싶어서

박 피디님께 부탁을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영화 만들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시는 훌륭하신 어르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렷 한 음성에는 넘치는 존경과 예의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두 다리를 모으고 학생의 과찬을

어른스럽게 경청하였다.

학생의 말을 요약하자면 나이 든 내가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인생 이모작에 성공 한 어른 다운 어른이라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훌륭하거나 어른다운 어른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단 하나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내 인생 이모작에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나는 이름 없는 동내 아줌마였다.

내 스스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평범 이하인 사람이었기에

별로 불편한 것도 못 느끼고, 원하는 것도 불만도 없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 ”8월 13일 여성시대 사회자님의

“옥구슬 같은 음성에 실려 내 이름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날 나는 기쁨에 눈물을 한 바가지쯤은 흘렸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한 천상의 선물 팡파르였으니까.

어느 시인의 글처럼 ”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지만 불러주고 나서는 꽃이 되었노라고

한 것처럼 나는 그날부터 내 이름에 주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부모님께 우등상 한 번 보여드리지 못한 내가

학습장마다 얼굴을 내밀었다.

자격증, 수료증, 상장 등이 한 장 두 장 싸여갔고 내 몸은

하루를 48시간으로 만들어 뛰고 날았다.

나는 내가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었단 사실에 혼자 놀라고 행복했다.

아마도 내 이름을 불러 주었던 “옥구슬님은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하느님도 어려워하실 크고 큰 ”행복한 인생 이모작을

선물하였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세상에 나와 배우고, 듣고, 만나고, 공감하며 활동하다 보니

세상은 온통 행복 들판이었다.

손을 내밀어 주고 우산을 받쳐 주고 어깨를 내어 주기도 하는

그들과 나란히 걷고 뛰다 보니까 많고 많은 혜택이 넘치도록 찾아와 줬다

“ 실버 영화를 만들며 감독님이라는 발가락까지 간지러운

과분한 이름도 생겼다.

여성 시대에서 내 이름을 전국 방방곡곡에 소문내 주고,

그 기운으로 영화를 찍어 영화제 단상에 올라 상장을 가슴에 안고

다시 또 감동의 눈물 한 바가지를 보탰으니.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며 어깨를 올려본다,

대학 입시에 낙방하고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으로 청강생이 되었지만

여대생 노릇을 해 보지 못한 나를,

성공한 어른다운 어른이라며 진짜 여대생이

존경스러운 어른이라고 말해주기에 양심은 찔리지만 힘이 난다.

내 나이가 되고 보니 젊었을 때 노다지 꿈인지 소원인지

그런 것은 없어졌고, 세상 떠날 때까지 그저 내 몸과 내 마음으로 움직이다가

내 이름처럼 내 삶이 봄날 꿈같았으면 한다.

나의 ”인생 이모작은 목련처럼 화려하고 탐스럽지는 않아도

봄마다 찾아주는 우리 집 모퉁이에 핀 작은 겹 벗 꽃잎 같아서

더 좋다

다음 날에도 나는 꽃잎이 휘날리는 벚꽃 나무 아래에

카메라를 드리 밀고

”레 디 고 ,,, 엑 션,,,,

하며 소리를 높이면, 여대생은 졸업논문 작품에 나를 담으며

“감독님 최고예요?

하고 엄지를 높이 올려 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인생 이모작에 대 성공한 멋지고 행복한

할머니 감독님 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