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호 칼럼

北‧美 협상, 시간표보다 실행이 중요하다.

태 종 호 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북‧미의 6.12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이 나온 지 50여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를 실행하기 위한 후속 실무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국제사회도 북한의 비핵화가 뚜렷한 진전이 없음을 우려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제 한국이 나서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론 까지 거론되고 있다. 북‧미가 겉으론 애써 상대방을 향해 덕담을 주고받으며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고 북핵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트럼프 대통령의 빠른 비핵화에 대한 카드는 접은 것처럼 보인다. 연일 비핵화 협상에 대해 “시간제한도 속도제한도 없다”며 속도조절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말속에 자신의 신념보다는 뜻대로 되지 않는데 대한 곤혹스러움이 더 커 보인다. 한손에는 북한을 달래기 위한 속도조절이라는 당근을 들고 다른 손에는 인권과 대북제재라는 채찍을 휘둘러보지만 둘 다 효과는 신통치 않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정상회담 이후 계속 뒷걸음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판문점이나 싱가포르에서 보여주었던 적극성도 화끈함도 많이 퇴색되어 비핵화 의지를 의심케 한다. 북미정상회담 일주일 만에 가졌던 시진핑 주석과의 세 번째 독대 이후 북핵문제에 대한 태도변화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 조속한 비핵화 시간표를 요구했을 때도 면담불가는 물론 조속한 “종전선언”을 내세우며 거칠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 한다. 잦은 현지지도 등 국내문제에 몰두하는 것조차 시간 끌기 전략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북미의 양보 없는 치열한 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방증이다. 북‧미 양국이 국내외의 비판여론을 의식해 가까스로 ‘미군유해송환’이라는 돌파구를 만들어 봉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이는 국제사회의 비핵화에 대한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실제로 북미정상회담 당시와 비교해 보면 북‧미간에 엇박자와 함께 균형이 깨진 것을 알 수 있다. 두 정상 간의 소통은 겉돌고 있고 미국의 조급함과 북한의 협상전술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부딪치고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실행하기 위한 실무협의 팀도 구성만 했을 뿐 개점휴업상태다. 유해송환을 위한 장성급 회담만 가까스로 성사되었을 뿐이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고차방정식보다 어려운 북핵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그 자체만 해도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을 만큼 큰 사건이었다. 더구나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은 켜켜이 묵은 중대사인데 그 사전준비가 미흡했음을 뜻한다. 70년 적대관계에 있던 양정상이 만난다는 사실에 치우쳐 준비는 소홀히 한 채 기대치만 높여왔기에 빚어진 현상이다. 처음부터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체제보장이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지난한 과정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철저한 준비가 수반됐어야 했다.

2005년에 나온 9.19공동성명만 하더라도 성명이 나오기까지 준비기간만 3개월이 걸렸고 후속협상만도 3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더구나 그때는 핵사찰이나 폐기, 평화체제 같은 난제는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그러나 이번 북미공동성명은 그때와는 성격도 형식도 완전히 다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완전한 체제보장을 전제로 만났고 양국정상은 호언장담했다. 예전처럼 실무협상 후에 양국정상이 만난 것이 아니라 두 정상이 먼저 만나 이 사실을 만천하에 서명하고 공표했다. 이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다. 그러기에 북‧미는 어떠한 경우라도 이를 되돌릴 수는 없다. 반드시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여기에 어떠한 변명도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북‧미는 이미 공동운명체임을 전제로 이 난제를 풀어가야 한다. 실무회담도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실행과 성사를 위한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주문한다.

첫째,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정략적 접근을 원천 봉쇄하고 합의 이행을 위해 정치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21세기 요동치는 역사의 중심에 서 있음을 명심하고 매 사안마다 통 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정략적 접근으로는 어느 쪽도 성공할 수 없다. 실패한 외교는 더 큰 참화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둘째, 협상에 대한 시간표나 속도를 배제하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실무 팀을 상시 운용해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한다 해도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져 양국이 원하는 바가 성사될 때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셋째, 단계적 동시적 시행원칙에 따라 이미 양국이 제시하고 있는 ‘미군유해송환’이나 한반도‘종전 선언’같은 비교적 쉬운 문제부터 조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시간 끌기나 머뭇거림 속에는 악마가 꿈틀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행이 지연되면 국제사회도 외면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대장정의 알찬 결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