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프다

깡마른 아내 몸에서 쏟아내는 통곡 소리가 천장을 뚫고 허공을 헤매다가 종래는 내 심장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아내의 고통을 몰라서도 아니고 아내의 아픔을 나누기 싫어서도 아닙니다.

나는 공기업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정년퇴임한지 14년째인 70대입니다.

작은딸은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고, 나는 장애 1등급을 받은 39살 된 딸과 고통에 빠진듯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공무원이었던 아내와 열심히 저축해서, 사는데 불편하지 않는 집도 마련했고 퇴직 후에는 밥 먹을 만큼의 연금으로 살고 있지만, 큰 딸 때문으로 하여 가정이 파괴된 지 오래됐습니다.

딸은 정신적으로 조금 늦는다고 생각할 정도라서 커 가면서 좋아질 줄 알았습니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해 봤지만 별다른 병명도 알지 못했고 다만 지능 미달이라고는 했지만 혼자 힘으로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수능까지 보고 낮게 나온 점수대로 전문대 의상학과에 입학할 수 있어서 우리 부부는 감사하는 맘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대 대학 공부가 힘들었는지 딸은 자주 머리가 아프고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학교에도 혼자 찾아가지 못하는 실정이 되었고, 병원 치료를 받게 되였습니다. 몇 일 동안을 잠을 자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던 딸이 병원에 입원해서 3일 만에 깨어난 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말을 잃고 감당하기 어렵게 난폭해졌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부부의 삶은 최악으로 곤두박질하였고, 거기다가 나는 정년퇴임 후의 바뀌어 버린 시간을 감당치 못하고 방황하게 되였습니다.

나는 내 아픔의 무게를 아내가 알아봐 주기를 바랐지만 아내 역시 엄마의 힘겨운 짐에 깔려 허덕이며, 남편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아내를 외면했는데 사실은 아내를 외면한 것이 아니고 나는 비겁하게도 그 현실에서 도망쳤던 것입니다.

10년도 넘는 시간을 보내며, 남편과 아내는 없어졌고 장애가 있어 보살펴야 하는 딸의 보호자만 남게 되였습니다.

장애 1등급을 받고 나니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아침 9시까지 복지관에 딸을 데려다주는 것은 내가 맞고 3시에 데리러 가는 것은 나와 아내가 형편에 맞춰 합니다.

딸은 비교적 복지관에 가는 것은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 아침에는 차려놓은 밥상을 뒤엎고 서서 소변을 보는 둥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나는 오늘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는 결혼식 주례 신청이 있어서 딸을 복지관에 태워다 주고 서둘러 가야 했기에, 급한 마음이 딸의 이상행동을 참지 못하고 손찌검을 하고 말았습니다.

울며불며 뒹구는 딸을 보고 있던 아내가 딸보다도 더 격하게 달려들었습니다.

주례 서고 받는 4만 원이 자식 보다 중요하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로 따지고 들기에 아내마저 밀쳐 버렸습니다.

아니 사실은 나 자신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를 학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70 넘은 나이에 알지도 못하는 신랑신부의 결혼 주례를 서 주고 4만 원을 받는 일이 돈이 좋아서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이 섭섭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복지관에 나가서 아이들 공부 봐주고 약간의 보수를 받는 것이나. 이모작 센터를 기웃거리고 새로운 일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내 심정을 아내가 이해해 주었으면 했던 것이 내 욕심이고 아내를 더욱 화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내와 나는 하루에 한두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게 됐습니다,

집에 있을 때 밥솥에 밥이 있으면 내 스스로 꺼내 먹고 없으면 라면이라도 사다 먹던지 아는 사람을 불러내서 외식을 일삼고 거의 집에는 있지 않게 되였습니다.

그런 생활도 10여 년 넘게 하다 보니까 별로 불편하지는 않은데 때때로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내 나이 이미 70 중반인데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삶을 낭비한다는 말 인가? 물론 나도 알고는 있습니다. 아내가 나보다 힘든 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견딜 수 없이 아주 많이 아파서 아내의 눈물을 닦아 줄 여력이 없어서 내 나름대로는 살아보려는 안 깐 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양복을 걸치고 넥타이를 메고 사람들 앞에 서면 내가 살아있는 느낌도 받지만, 만 원짜리 넉 장을 받고 돌아서는 등줄기에 알 수 없는 찬 바람을 지고 옵니다. 아우성치는 아내와 딸을 집에 남겨두고, 나는 주례를 서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합니다.

딸아, 그리고 여보, 정말 미안합니다,

그런데요,

나도 아주 많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