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시 먹어봐 따끈따끈 혀,

지하철에 탈 때마다 고민됐던 일은, 이제 막 환갑을 넘긴 나이에 경로석에 앉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일반석 앞에 서 있으면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 편치 않았다. 그래서 빈자리가 없을 때는 경로석 쪽으로 가서 앉거나 서 있는다. 그런데 노인들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잊었던 고향을 가끔씩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나는 언제나처럼 신이문역에서 전철에 올랐다. 그날도 경로석 쪽으로 갔는데 마침 한자리가 남아있기에 엉덩이를 밀어 넣고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마주 보는 자리에는 세 명의 젊은 할머니들이 있었는데 끌고 다니는 가방 하나씩을 앞에 두고 있었고, 인천으로 새우젓을 사러 가는 중이라는데 가방 속에서는 별의별 먹을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떡, 고구마, 옥수수는 물론이고 보온 도시락에 죽까지 넣고 와 이야기 마당을 펼치며 반찬 삼아서 들고 있었다. 나는 마주 보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시선이 꽂혀 있었을 뿐인데 내 눈이 먹고 싶어 보였는지 꽃바지를 추켜 입은 할머니 한 분이 내게로 와 고구마랑 옥수수를 손에 쥐여주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두 손 가득 받고 보니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당황스러워하고 있는데 “색시 왜 안 먹어? 아직 따끈 혀, 어서 먹어봐.” 하는 것이었다. 환갑 넘은 나를 ‘색시’라고 부르는 소리에 기쁜 나머지 고구마 한 입을 크게 물고 마주 보며 웃었다. 아침을 먹지 않은 것이 습관이 되어 아이 손만 한 고구마를 다 먹어 치우면 틀림없이 약국에 가야 할 텐데 참 난감했다. 또한 학교 때 친구들 하고 차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음식을 먹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우적우적 먹기가 좀 그랬다. 아무리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얼굴에 철판 깔고 산다며 여자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육십 넘은 나도 여자이고 싶다. 아마 세 명의 할머니들도 혼자였으면 수저로 죽까지 떠먹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새우젓 사러 간다는 것은 핑계이고 일상 탈출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40여 년 전이 생각난다. 그때는 인천에 한번 다녀오려면 벼르고 별러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주 먼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남자 친구하고 인천 송도에 놀러 갔었다. 송도에서 배 타고 재미있게 놀다가 남자친구 장난인지 의도적 이였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물에 빠졌었다. 젖은 옷을 말려 입고 가자는 엉큼스런 제안을 뿌리치고 기차에 올랐는데 흘낏거리는 많은 시선에 가슴속으로 울면서 왔다.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왔는데 아마도 그날의 인천은 미국 보다 도 멀게 느껴졌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직장 출퇴근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자가용보다 편하면서도 빠른 것에 고마울 때가 참 많다. 약속시간 지킬 수 있고 교통비는 미안할 정도로 저렴하며 집 보다 시원해서 지하철 안에서 휴가를 보내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이제 세상을 반 백 년 넘게 살다 보니 고마운 것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지하철의 고마움은 가슴으로 느끼며 사는데, 지하철을 만들자고 누가 제안을 하였는지 궁금해 하지만 아직도 모른다. 오늘 출근길에는 할머니들 덕분에, 40여 년 전 인천 데이트의 추억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여 아주 많이 행복했다. 고향 외갓집 대청마루처럼 편안한 오늘이다. 내일도 나는 외갓집 같은 지하철에 타고 있을 것이다. 그곳엔 또 다른 사람들이 살아 있음을 행복해하면서 달려가고 달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