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성치는 보따리

어느 초등학교에서 노인의 특징에 대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갖게 되였는데 아이들은 “ 노인이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지금은 핵가족 시대라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도 않고, 가끔씩 무슨 날에나 만날 수 있는 현실인데도, 아이들 눈에는 소리 나 지르고 화만 내는 괴팍스러운 존재로 보였던가 보다. 그런 것을 아이들의 철없는 생각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의 부모와 사회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부모라는 이름만 남아 있는 노인들은 경제,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잊혀지고 있으니, 보이는 그대로만 볼 줄 아는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한다. 자식 사랑은 넘쳐나고 부모 귀한 것은 몰라라 하기에 검불 같은 노인들은 차가운 공원 벤치에서 시간 죽이기를 하고들 있다. 자기 자식들의 급식이 엉망이라며 눈물 짖는 부모는 있어도, 찬밥에 물 말아 넘기는 부모님의 밥상을 살피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 되였다. 어느 날 종로에 나갔다가 넓은 공원을 먹구름처럼 몰려다니는 노인들과 마주하고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는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저곳을 저런 모양으로 서성이는 노인들도 지난날에는 자식들을 키우시던 부모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의 자녀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가,  늦가을 찬 서리에 찢겨진 낙엽처럼, 이리 쓸리고 저리 뒤뚱거리며, 헤매고 있는 것을 알아보려고 나 할까?  

우리 이웃에 90도 넘은 할머니가 홀로 살고 계시는데, 할머니는 40대에 홀로돼, 8남매를 키우고 결혼까지 시키셨다고 하였다.  8남매를 먹이고 입히느라고 도둑질만 빼고는 하지 않은 일이 없다는 말을 주문처럼 달고 사셨다. 딱히 당신의 푸념을 들어 줄 만한 사람이 없어도 앉으나 서나 뭐라 말하는데, 매번 들어봐도 그 예기고 재미도 흥미도 나지 않아 나는 할머니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는데, 그날엔 할머니의 푸념 상대로 잡히고 말았다. 할머니의 남편은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 선생님 이였고,  19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 시부모, 시 아우들을 모셔야 하는 시집살이를 하셨단다. 막네 시동생은 할머니의 첫딸과 함께 젖을 먹여 키웠다고 하니, 할머니의 힘든 삶이 느껴지는 것 같다. 가족사 소개에만 두 시간이 걸렸으니 지루하기도 하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에선 쥐가 날 것도 같아 어느 시점에서 할머니 사연을 끊어야 할까 하며,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때다 싶어 치고 들어가면 할머니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중앙선을 넘어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참을성에 바닥이 났을 때 적당히 포기하며 들어보니 할머니의 청각과 기억의 엉킴이 보여졌다. 언제나 말 많고 시끄럽던 할머니의 목소리에 질려 했었는데 그것은 당신의 들리지 않는 소리를 잡으려는 안간임 이였던 것이다. 말하고 싶은 것은 가슴속에 불 화산을 만든 체 말을 들어줄 누구도 없는 현실에, 노인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던 것 같다. 전문가는 말하기를 화가 나거나 말하고 싶은 것을 10초만 참으라고 했다. 10초만 참으라고 말하지만 할머니는 10년, 20년, 30년도 더 많은 시간을 참아야 했다. 8남매를 결혼까지 시켰으니 자식이 16명이나 되는데 그중 어느 누구도 90 넘은 할머니를 모시려고 하지 않는단다.

“ 고 3 수험생이 있어서,,,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집이 좁아서,,, 또는 시 부모 눈치가 보여 서라며, 이유 아닌 핑계로 자식들 모두가 한 분 어머니를 외면하였다. 그런 현실에서도 할머니는 10초 동안만 참은 것이 아니고 수 십 년을 참고 살았던 것이다. 90살 넘은 나이에 언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혼자 잠들고, 혼자 아침을 맞이하면 그날이 허락된 것이라며 무덤 속처럼 조용한 공간에서, 며느리나, 딸이 만들어다 냉장고에 넣고 간 반찬으로 아침인지 점심인지를 때운다고 하였다. 냉장고 안에서 나온 반찬들에게서는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들이 그러하니 손자 손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냄새나는 불쾌한 보따리 취급을 하게 된 것만 같다.

어느 날 딸네 집을 봐주고 있었는데 대학생인 손자가 들어와 이방 저 방 문을 열어 어미 아비를 찾더니, 강아지까지 부르면서도, 거실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스쳐 지나며,

“아무도 없네, 다들 어디 간 거야,? 하면서 휭 하니 나가 버렸다 했다. 이런 실정에 비록 “보따리 일망정 화를 내며 소리 지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강아지만 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노인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소리 지르고, 화내고하였던 것이리라. 사람의 입은 말을 할 때라야,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눈은 바라다 봐주는 시선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석에 던져 논 보따리가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고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밥만 먹는 입은 이미 죽어버린 입일 것이다.? 노인에게 화나는 것을 10초만 참으라고 할 것이 아니고 노인을, 부모를, “누군가” 그리고 “아무도에 끼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 들어 청각이 둔해 저도 가족으로 대접받는다면 귀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행복한 보따리가 된다면 무릎에 손자 손녀를 눕히고, 배를 쓸어주며 “할머니 손은 약손, 하는 정겨운 흥얼거림이 창문을 넘어 하늘의 별을 반짝이게 할 것이다.

잠든 손자의 쌔근거림과, 할머니의 부채 바람에 쫓겨 날아가는 모기의 날갯짓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