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명절을 싫어하는 이유

가을 하늘이 보석을 닮은 것 같다. 어느 집에서 흘러나오는 기름 냄새가 정겹고 사람의 왕래가 끊어진 골목마저 설렌다. 지난해에도 오늘이 있었는데 오늘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많이 아프다. 가을을 뽐내며 넉넉히 불어 주는 신선한 바람이 내 가슴속을 파고들어, 나는 혹시라도 눈물 한 방울을 가슴에 떨굴까 봐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 조각의 꽃구름이 작은 호수에 걸쳐 앉은 것마저도 흐릿해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서러운 가슴으로 하늘을 보기 시작한 것은 그날,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겪고 나서부터 인 것 같다.

나는 3대 독자이신 아버지의 무남독녀였다.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는 3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셋 모두 첫돌을 넘기지 못하고 떠났다. 내 동생이 떠났을 때도 엄마 나이는 30살밖에 되지 않았었다는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 아기를 갖지 못했단다. 아버지가 3대 독자여서 아들은 꼭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속인을 찾아가 물었더니 동생의 시신을 메밀밭에 묻어서 그렇게 됐다는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때 미아리 공동묘지는 메밀밭이 많았었다고 하는데 시신을 메밀밭에 묻었다고 임신을 막는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밭의 저주 때문인지 내 동생은 영영 태어나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여름방학 어느 날에 생각하기도 끔찍한 사건이 우리 집을 덮쳤다.

엄마 아버지는 오빠에게 줄 양계 장터를 보러 말죽거리로 가셨고 나는 집에 혼자 남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형사 아저씨 두 분이 찾아왔다.

휴대 전화도 없던 시대라서 엄마 아버지가 언제 오실지 모르겠다고 하니.

형사들은 무엇이라 주고받더니 메모 한 장을 남기고 돌아갔다.

메모를 펴 보니 “신 ㅇ ㅇ 인천 ㅇ ㅇ 병원 영안실”이라는 간단한 글과 무엇인가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끔찍한 메모를 읽고도 대소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영안실에 있다는 “신 ㅇ ㅇ은 엄마가 다른 내 오빠였다. 내가 14살이 될 때까지 두 어 번 밖에 보지 못했는데 작은 키에 새카만 얼굴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나는 왜 그랬는지 오빠라고 불러보지도 않았고, 오빠를 대하는 엄마의 모습은 차갑고 무서웠다.

아마 우리 엄마는 따뜻한 밥상 한번 오빠에게 차려 주시지 않았던 것 같다.

오빠에 대해서는 엄마 아버지는 내게 말해주지 않았으니 우리 가족은 아니었던가 보다. 다만 형사 아저씨가 남기고 간 메모 한 장이 그를 내 오빠, 내 가족으로 말해 준 것 같았으니 죽어서 가족이 된 오빠는 그 후 우리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혼외 아들을 인정치 못하고 죽게 만들었다는 죄로 하여 평생 동안 마음과 몸의 고통을 겪어야 하였다. 아들의 자살로 하여 영원한 3대 독자로 남겨진 아버지는 좌절하고 분노했다. 술이 취하면 엄마가 실신할 때까지 폭력을 휘두르셨다. 엄마는 신음소리조차도 내지 않고 견디셨다.

아버지는 명절 차례상에 오빠의 밥을 올려놓고 괴물 소리를 내며 통곡하셨고 엄마는 부엌 구석에서 그릇만 닦고 또 닦으셨다. 명절 내내 우리 가족 세 사람은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가까운 친척도 없는 우리는 흥겨운 도심의 무인도에서 명절을 아프게 겪어내야 했다. 14살 이후에 만들어진 명절의 아픔을 두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겪어야 했고 지금은 나 혼자 남아 아픈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추석 차례상에 엄마 아버지의 밥을 올리고 눈물이 흐를 것 같으면 보이지 않는 창밖을 본다. 그러나 내 오빠의 밥은 떠 놓지 않는다. 오빠 때문에 내 부모님이 불행한 삶을 보내 셨다는 원망의 앙가품은 아니고 그냥 이유 없이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이다.

가끔 키 작고 새까만 얼굴이 떠올라 가슴속이 뻐근하다. 오빠라고 불러주고 떨고 있던 손이라도 잡아 주었다면 스스로 떠나는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내 엄마는 아버지의 아들이 그렇게 싫으셨을까?

오빠는 그 선택밖에는 길이 없었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나 아프지 않은 명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