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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나드리 - 신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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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5  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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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나드리

 

 잠 못 들어 하는 내 방 창가를 기웃대던 가로등이 어둠과 함께 찾아 든 밤비에 젖어 떨고 있었다.. 나이가 더하기를 거듭하면서 날 굿이를 하는 것 인지, 뚜렷이 아픈 곳도 없으면서 기운이 떨어지고 기분이 우울해진다. 어느 날처럼. ,아침 드라마를 보면서 출근 준비를 해야만 하는데 오늘은 왠지 나가기가 싫었다 .. 언제나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로 제자리걸음 하는 실망스러운 드라마 내용 때문 이였을까? 아니면 나이 들어가는 몸뚱이의 반란 때문 이였을까?

아침이 되면 습관처럼 나는 일터로 간다. 그곳에는 또 다른 이웃이 있고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예쁜 옷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없으면 궁금해하고 작은 걱정을 나눠주는 이들이 있지만 오늘은 가고 싶지가 않았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도 가게로 나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천성이 게으른 탓인지 나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나마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얼굴 피부가 거칠어져서 기름기 많은 로션 한 가지 바르고 립스틱 정도가 화장의 전부이다. 육 십 넘은 몸매에 화장기 없는 내 얼굴을 보고 여고 동창생이 어디서 나온 똥 뱃장 이냐며 비아냥거렸다. 나는 그냥 실실거리며 웃어넘겼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돌보지 않아도 움직이고 생각하는데 불편하지 않으니 내 몸과 마음은 참으로 우수한 유전자인 것 같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지만 그렇다. 외출할 양으로 딸의 화장대 앞에 앉아 서툰 솜씨로 화장을 했다. 손톱에 반짝 이가 들어있는 매니큐어를 바르고, 립스틱도 커피색이 아닌 분홍색으로 마무리했다.

거울 속의 내가 조금은 낯설기는 했지만 그런 데로 공을 들인 만큼 괜찮아 보여 피식하며 미소를 흘렸다. 평소에는 편하다는 효 신발을 신었지만 오늘은 나의 정신의 반란으로 하여 파란 리본이 달린 구두를 꺼내 신었다  .반짝 이 구술이 쏟아진 듯한 황금색의 재킷을 입고 리본 달린 구두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볼만했다.

짙은 화장에 요란스러운 옷을 걸치고 그것도 모자라 리본 달린 구두라니., ,나이 든 아줌마가 정신 줄을 놓았다고 웃어 댈 것만 같다. 따라 나오고 싶어 하는 강아지들에게 간식 하나씩을 입에 물려주고 집을 나섰다.

하늘에는 양털 구름이 떠가고 있었다. 밤새 내리던 비에 촉촉이 젖은 보도 불럭을 밟아가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간밤 내내 칙칙했던 마음이 높고 넓은 가을 하늘처럼 개운하다.

“어디로 갈까?  어디가 좋을까?  내 마음의 허전함을 어떻게 충전할 수 있을까? “   창경궁? ,,

,스치듯 지나는 버스 옆구리에 “ 창경궁 앞이라는 글이 보였다. 나는 제기동 출신이라서 창경궁은 이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지금은 창경원이 창경궁으로 제 이름을 찾았다.

.벚꽃이 만발하는 4월이 되면 새 옷 입은 사람들이 김밥과 풍선을 들고 그곳을 찾았었다. 내 생각이 창경원의 추억에 이르자,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다. 어린 추억이 있는 창경원에 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흥분되고 기뿐 마음이 용솟음친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버스는 나를 내려 주고 제 갈 길로 달려갔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받아 들어가는데 80킬로 되는 내 몸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기쁨도 잠시, 그 많고 많았던 동물들과 놀이 기구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사람들 또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한적했다. 가슴까지 두근거리며 들어선 그곳에서 옛날 추억을 잃어버린 듯하여 무인도에 버려진 것 같았다.  세월이 멈춰진 것 같은 기와지붕은 푸른 하늘 아래에서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못한 여인들의 한숨 소리가  하늘가를 맴돌고,  600 년을 떠돌아도 다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그 말들이 내 귓가로 몰려들었다. 까마득한 세월 뒤편 여고 친구들과 놀러 왔을 때

“ 나는 여기서 공주로 살았다,  하고 말하니까 “ 너는 공주가 아니고 “무수리 였 던 것 아니냐?

하며 우리 들은 하늘을 찌를 듯 웃어댔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눈물 나게 그리운 시절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보석 같은 시절이었다.

문득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 들고 연못 가에 앉았다. 한두 명 보이던 사람들 마저도 어디론가 숨어 버렸고, 넓고 텅 빈 대궐 연못을 나 혼자서 차지하고 있다. 내 외로움 곁으로 나뭇잎 지나가는 소리가 바쁘다.  연못에 바람이 지나가고 물결이 춤을 춘다. 뭔가가 꿈틀거렸다. “ 뭐지?,,,

아!   잠자던 물고기 등 이였다.” 그래 너 거기 있었구나, 난 혼자가 아니었구나, 얼룩 물고기의 등장으로 나는 혼자가 아닌 것에 기뻤다. 내가 그 옛날 공주였던, 무수리였던 추억 속 여행을 할 수 있게 하여준 창경궁에게 감사한다. 잘 다듬어진 노란 국화꽃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사이 말끔해진 하늘 구름도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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