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말없이 살라고 합니다.

내 스스로 생각해 보면 이미 오래전, 어미로 탈바꿈을 하던 날부터 성냄도 벗어놨고, 탐욕도 벗어 놨는데, 무엇을 어떻게 더 벗어 놓아야 한다는 것인지 통 모를 일입니다.

평소에도 조금은 건방진 것 같아 보였던 친구가, 나이 든 부모가 지켜야 할 10계명이라는 문자를 보내 줬습니다.

모두를 다 기억하기는 싫어서 그냥 덤벼보고 싶은 내용하고 청문회를 해 봅니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이게 무슨 멍멍이 철학이란 말입니까?

깊은 잠 못 들고 밤새워 기저귀 갈아주고 젖 먹여 애지중지 키워 주었고, 책가방이 무거울 새라 안쓰러운 마음으로, 문 기대여 기다려 주었고, 공부시켜 번듯한 모습으로 세상에 내 세워 주고 나니, 세월은 어미, 아비 허리를 잡고  해당화 꽃을 닮은, 곱디고은 얼굴에는 고속도로, 지방 도로, 샛길까지 생겨났기에 허 한 가슴엔, 빈 지갑뿐이라서, 존재를 알리려는 듯 입을 열어 본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대도 말없이 살라 하고, 성냄 이랑 탐욕을 벗어놓으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지갑 속에 있는 것은 이미 이뿐 도둑에게 행복한 얼굴로 강탈 당했지 않나요?

,  “아~ 물론  달라고 해서 준 것은 아니었지만요.

어떤 막장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대사 중에 ,”내가 언제 낳아달라고 했어?

제대로 키우지 못할 거 면 서 왜 났어요?

이런,,, 백일 장마에 먼지가 나도록 매질을 당해도 모자랄 ?,,,

내가 이런 생각을 말하면 10계명 문자를 보내 준 친구는 나를 보고 답답한 사람이라며 가슴을 칠 것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정답이 된지 오래됐지만, 자식이 부모를 이겨 넘겨 버리면 그게 잘하는 짓일까요? 아니면 부모를 이기면 행복할까?

부모를 이겼다고 막장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주나요?

물론 지금 내가 억지소리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모에게 져 주는 자식이'금메달 깜'이라는 생각입니다. .

부모가 입을 열고 싶어 하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해서 아니겠습니까?

출근하는 자식에게 “애야, 어젯밤 꿈이 시끄러우니까 운전 조심해라

엄마의 이런 걱정, 물론 하나마나 한 걱정이겠지요.

그렇지만 “네 조심할게요, 하는 대답과, “엄마는 재수 없게 맨날 저런 소리 하신다니까”

어떤 대답이 백 점 자리일까요?

또 요즘 아파트 이름이 외래어로 어렵게 만들어진 이유가 부모가 찾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자식들의 마음이라는 뼈 있는 농담도 있지요?

자식이 겉절이, 쪽파김치 좋아한다며 손톱 밑이 아리도록 손질해 만들어, 맛나게 먹어줄 자식 얼굴 연상하며 팔이 떨어질듯한 통증도 잊고 갔는데,

“아이~ 엄마는 연락도 없이 오신 거야? 누가 김치 먹는다고, 거기 경비실에 두고 가시던지..”꼭 이래야 하는 건지요?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주 어쩌다 그런 아들 며느님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고요,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진 것은 요즘 세상이 시골스러운 것보다는 뉴욕스러운 걸 좋아해서 어렵게 만들었을 겁니다.

우리 아파트도 외국 이름이지만 워낙 오래되고 알려진 이름이라서 나는 잘 찾아다니고 있어서 그건 걱정도 불만은 없습니다.

나의 불평불만은 과묵해도 너무 과묵한 내 하나뿐인 딸 때문입니다.

내 딸의 평가 점수는 백 점 만점에 90점은 될 겁니다

학교 졸업하고 입사한 직장에서 17년을 근무하고 알아줄만한 위치에서 착실하고 성실하게 근무 잘 하고, 17년 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모자라지 않을 금액을 생활비로 내놓고, 제 앞가림 잘 하고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직장인과 사회인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엄마인 나는 딸을 잘 키워 호강하는 훌륭한 어머니라는 칭찬과 부러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라는 진리 같지 않은 사실이 있듯 나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입은 닫고 지갑은 여는 편입니다.

딸 점수에서 10점을 떼야 한 것은, 딸은 집에 들어오면 강아지하고 말할 때 말고는 입을 닫습니다.

방문도 닫고, 밥도 같이 먹지 않고, 큰맘 먹고 구입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서 곁에 가서 앉으면 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렇다고 딸 하고 다퉈서가 아니고 내가 말을 하면 피곤하답니다.

회사일 묻는 것도 싫고 자기가 알아서 먹을 텐데 뭐 먹겠냐고 묻는 것도 피곤하고 드라마 이야기하고 세상 이야기하는 것도 싫답니다..

내가 거실에 티브이 하나 놓고, 유튜브에서 노래, 코미디, 영화를 딸과 함께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는데 딸은 무 자르듯이 거부했습니다.

물론 내가 말이 좀 많은 것이 문제가 되긴 하지만, 딸  해바라기하는 엄마다 보니까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딸 앞에 서면 입이 저절로 열리곤 합니다.

몇 일 전, 드디어 내 참을 성에 한계가 와서 폭발하고야 말았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딸의 퇴근을 강아지들의 꼬리 흔드는 환영과 세 살 때 못 만난 것을 아쉬워하려는 듯한, 딸의 꿀 떨어지는 만남이 벌어졌고 나는 멀리 떨어져서 존재감 없는 엑스트라였습니다.

그래도 항상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체념을 하였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였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라게 한 내 죄가 있고, 그런 딸이 가엽고 미안 해서 이해하고 용서하며 가슴을 다독이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각자 밥 먹고 딸과 멍멍이 두 녀석이 소파에 앉아서 놀고 있기에 나도 소파 끝에 가서 자리를 잡고 뭔가 한마디 건넸습니다

그리고는 딸과 대화를 시작해 보려고,“이렇게 앉아 벽만 쳐다볼 거야? 티브이던지 스크린이던지 뭔가 보이는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냐?

"티브이 보려면 엄마 방에 들어가 보면 되잖아?

나는 집집마다 거실에 티브이 놓고 모여 앉는 게 너무 싫더라.

“딸의 그 말에 참았던 불 화산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티브이 못 봐서 그러는 줄 아니?  내 방에서 혼자 보는 티브이가 좋기만 한 줄 아니?  식구라야 개들 빼고 너하고 나뿐인데 너는 네 방에서 문 닫고 있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티브이 소리라도 들어야 했던 거 아니야?

엄마가 투명 인간이니? 엄마가 먹이만 주면 만족하는 돼지야?

저 유기견들 만도 못한 거야? 꽃과 풀 들도 예쁘다고 말해주면 싱싱하고 예쁘게 자란다는데, 하나뿐인 엄마 한태 무슨 불만이 있다고 말을 섞지 않는 거냐?

엄마가 너한테 잘못한 게 뭐 있니? 나는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만큼 너를 위해 해 줬다는 생각인데 뭐가 부족해서 엄마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야

 6년 동안 등록금 날짜 한번 넘겨보지 않았었는데, 공치사하려는 게 아니고 네가 엄마를 이렇게 대우해?  아버지 있는 집 딸보다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혀서 키우겠다는 생각뿐으로 살았는데, 엄마가 뭘 잘못했니? 엄마가 무엇을 못해 줬니? 네 수준에 맞추려고 서울 곳곳 학습장마다 쫓아다녔고 좋은 강의가 있다면 차를 3번 4번 갈아타고 훌륭한 사람들을 닮으려고 뛰어다녔잖니?

네 주위 사람들 중, 방송국 유명한 프로에 초대되고, 방송국 구내식당 밥 대접받은 사람 있더냐?

유명 진행자 사진이 찍혀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CD 받아 봤다는 사람 있냐?

모르긴 몰라도 너 내 병원 유명하다는 박사님도 못 받으셨을 거다

세상 사람들은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엄마를 꼭 한 사람 너만 무시하고 모른 척하는 이유가 뭐야?

그동안 싸였던 말들을 쏟아 내다보니 나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게 되고 그 후부터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는지 나 자신도 모르게 되였습니다.

가슴속의 한 맺힌듯한 뚝 이 무너지자 엄청나게 거친 외침과 통곡 속에서 몸부림쳤던 것은 기억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색이 되여 울고 있는 딸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딸은 어렸을 때 도 회초리를 맞아도 아프다는 말은커녕 잘못했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는데,  40살이 넘은 딸이 잘못했다며 울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게 된 상황에 내가 무슨 짓을 했던가를 되집어 기억해 봐야 했습니다.

누워있는 내 몸에는 실오라기만큼의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딸의 눈물을 본  내 가슴속은 새털처럼 보드랍고 포근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찻잔을 들고 베란다 의자로 가면, 딸도 강아지와 함께 와서 마주 앉습니다.

잠잘 때 외에는 방문도 닫지 않습니다.

내 휴대폰에 동영상도 올려주고, 밥도 함께 먹고, 오늘은 기생충 영화에 나오는 “짜빠구리 를 만들어 준다며 먹을 거냐고 물어 왔습니다.

나는 아침에 보름날 먹다 남은 나물이 아까워서, 부침가루를 넣고 전을 부친 것을 많이 먹고 배가 불렀지만 “응~ 그래 맛있겠다. 외국 사람들도 기생충이 떠서인지 짜빠구리도 인기 짱 이래"

딸은 부엌에서 짜빠구리를 만들고 나는 미리 소화제를 찾아 놨습니다.

예전에는 딸의 잘못을 야단하고 잔소리를 했었는데, 기가 넘어 기절하고 난 사건 이후로, 마음 약한 딸이 얼마나 놀랐으면 비단결 같은 딸이 된 것을 보고, 조금 미안하기도 합니다.

의도했던 기절 요법은 아니었지만 두 번 사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 딸이 잘 할 때, 시도 때도 없이 말하려고 하는, 내 입단속을 적절하게 잘해야겠습니다.

예전에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하는 글귀가 정말 싫었는데 이제는 다른 면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실천할까 합니다.

70살이 되여서야 철이 들어가는지, 아니면 몸에 기운이 빠져 가니 현실과 타협하려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딸이 만들어 준다는 짜빠구리를 맛있게 먹고 소화제를 복용하는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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