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곧바로 병원에서 위경련과 인두염 등으로 1, 2일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면서, 대변인을 통해 "절대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안정을 취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성완종 사건과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한 상태에서 출국하는 것도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었는데 돌아오자마자 건강을 이유로 무거운 주제들을 회피하려는 인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이완구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고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마도 국민들의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서 사태수습을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런데 형식과 내용이 모두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우선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시점인데도 자신은 장막 뒤로 숨고 홍보수석이 나타나서 남의 집 이야기하는 식으로 메시지를 통해서 대통령의 뜻을 전달한다. 대통령은 별다른 잘못이 없기 때문에 굳이 나서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최소한 성완종 회장의 돈이 대통령의 선거과정에 흘러들어갔다는 주장이 있는 상태이므로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은 직접 했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안하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사과의 표현이 아니라 유감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사용한다. 분명 총리의 사퇴가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총리를 임명한 대통령으로써는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더 가관인 것은 메시지의 내용이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 척결을 해서 새로운 정치 개혁을 이뤄나갈 것", "그동안 만연돼 왔던 지연, 학연, 인맥 등의 우리 정치문화 풍토를 새로운 정치문화로 바꾸고 켜켜이 쌓여온 부패구조를 청산하기 위해 금품 의혹 등이 과거부터 어떻게 만연해 오고 있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서 새로운 정치개혁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결국 오늘날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됐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정치인이 부정한 돈을 수령한 것 보다는 잘못된 특별사면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나의 문제가 아니라 너희들의 문제이므로 잘 해봐라는 생각으로 읽혀질 뿐이다. 박대통령이 평소 자주 쓰는 전매특허인 유체이탈 화법의 전형이다. 한마디로 박대통령의 ‘강건너 불구경’식 상황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자신이나 그 측근들이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도 책임을 회피하고 물타기식 방법으로 슬그머니 그 책임을 상대세력에게 떠넘기려는 후안무치다. 

박대통령은 콜롬비아 방문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콜롬비아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면서 그 나라 대문호 가브리엘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의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Olvidar es dificil para el que tiene corazon)”는 말을 인용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수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도 극구 외면하더니 외국에 나가서는 기억력을 되살리겠다니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대통령은 우선적으로 국내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제대로 챙긴 다음 외국에서 그 같은 말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 ‘兼聽則明 偏信則暗(겸청칙명 편신칙암)’이라는 말이 나온다. 두루 남의 말을 잘 들으면 눈이 밝아지고, 한 쪽 말만 믿으면 어두워진다는 뜻으로 당태종이 위징(魏徵)에게 군주는 어떻게 하면 현명해지고 어떻게 하면 어리석어지는 지를 묻자, 위징은 진나라의 2세 황제, 수양제를 예로 들며 간신의 말에 휘둘리면 망국의 군주가 된다고 한 순자(荀子)의 말을 인용하여 왕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위징은 처음에는 당태종의 반대세력으로 태종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위징의 인품이 반듯하여 태종은 그를 등용하였고, 결국 시중의 벼슬에까지 올라갔다. 반대파를 포용하는 태종의 인품이나 그러한 태종 앞에서 끝까지 자신의 올곧은 목소리를 냈던 위징이나 모두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치지도자의 모습이다.

정치가 무엇인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지도자는 항상 국민들의 삶속에서 함께 생활해야 하며 그과의 애환을 함께 해야 한다. 불편하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면서 살려 해서도 안된다. 국가나 국민이 위기에 처하면 제일 먼저 앞서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최근 박대통령이 보여준 일련의 모습들은 이러한 정치지도자의 태도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세월호 사건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내팽개지고 외유에 나서는가 하면 중요한 정치적 현안 앞에서도 팔을 걷어 부치고 해결하려는 모습이 아니라 남의 일로 치부해버리는 비겁한 모습들 뿐이다.

이제 3년 가량의 임기를 남겨둔 박대통령이 국정을 잘 수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마디 하고자 한다. 나와는 관련이 없다는 유체이탈식 화법이나 태도를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은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이다. 측근들을 내세우지 말고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야 한다. 사과를 하더라도 직접 해야 하고 성난 군중들을 만나는 것도 직접 마주쳐야 한다. 자꾸 상황을 회피하다보니 여러 비판들이 가해지고 소문이 무성한 것이다. 불편한 이야기들은 피하려 하다 보니 측근들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파도 적극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박대통령은 사기에 나오는 “忠言逆耳利於行(충언역이리어행) 良藥苦口利於病(양약고구이어병)”, 충고는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이롭고,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을 고치는데 좋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