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결과 호남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지지를 보냈던 야당에 대하여 단순한 견제에 그치지 않고 판을 바꾸는 정도의 반대표를 던졌다. 야권의 핵심적 지지기반이기 때문에 광주에서 다시 표를 얻기 위해 새정치연합의 지도부는 사활을 거는 선거운동을 해왔다. 그럼에도 결과는 참패였다. 홀홀단신 무소속으로 출마한 천정배 후보(52.4%)가 새정치연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출마한 조영택 후보(29.8%)를 큰 차이로 누르고 승리한 것이다. 흔히 승리의 요인으로 인물론을 내세운다. 천정배 후보가 참여정부 법무부장관, 당의 원내대표, 4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한 것은 맞지만 조영택 후보도 그에 크게 뒤지지 않는 경력을 갖고 있다. 행정자치부 차관, 국무조정실장,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니 말이다. 지역에서 조영택 후보에 버금가는 정도의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천정배의 당선을 조영택 후보에 비하여 단순히 인물론으로 앞섰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승리의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친노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호남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대변해 주는 정당으로 인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보여준 대북송금 특검 등의 문제, 호남사람들이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이 이끄는 청와대 비서진에서 자신들을 소외시켰다는 서운함,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음에도 당선되지 못한 무기력함 등 여러 가지 요인을 찾을 수 있다. 더욱이 새정치민주연합에 호남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강력한 호남정치인이 없다는 점도 위기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동안 박지원 대표가 그나마 목소리를 내왔으나 당대표 선거에서 실패한 후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천정배 후보가 ‘호남정치 복원’을 외치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호남이 극도로 소외되고 있다는 박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지지해준 새정치연합이 호남의 목소리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불만감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이때 천정배 후보가 차별받는 호남을 위하여 강력한 목소리를 내도록 호남정치를 복원해야 된다고 외치면서 불을 지핀 것이다.

새정치연합에서는 전체 선거 중에서 광주 선거가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되었고, 화력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심장부가 빼앗긴 다면 앞으로의 정치행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력지원을 다한 것이다. 그럴수록 호남사람들은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친노세력이 호남의 정치거목인 천정배를 제기하기 위해서 혈안이 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더욱더 강력한 지지를 보낸 것이다. 사실 새정치로써는 천정배 후보를 공격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데 주력해야 하는 선거였다. 소외받는 호남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안을 제시했어야 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전에는 호남이 차별을 받더라도 ‘호남 몫’, ‘호남배려’라는 것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맹목적이고 노골적인 차별이 있었고, 그에 대해서 새정치연합이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천정배 후보가 내세운 호남정치 복원이 주민들의 가슴속을 파고들어 앞도적인 승리를 하게 된 것이다.

천정배가 내세운 호남정치의 복원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아직은 단기필마다. 정치세력화 하는 것도 쉬워 보이지는 않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다. 그러나 천정배가 말했듯이 필요한 사람은 정치에 거리를 두고, 하려는 사람들은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확고한 신념이 있으며, 그동안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온 사람이 필요하다. 단순히 법조인, 교수, 언론인 등 그럴싸하게 보이는 직업군이 아니더라도 자질을 갖춘 사람을 발굴하고 길러내는데 힘써야 한다. 지금의 새정치연합이 120석 넘는 거대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제대로 된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계파에 줄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거나, 단지 학생운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편승하여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기계발에 게으르면서도 당선횟수만 늘리면서 월급(세비)만 받아가는 ‘생계형’ 국회의원으로 보여지는 까닭이다. 따라서 정치재목으로 성장할 제대로 된 사람들, 특히 노장청의 균형을 이룬 인재들을 발굴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방법으로 호남정치를 복원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서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권이 분열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또 다른 정당이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호남정치 복원을 명분으로 전국 정당화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당이 만들어져도 호남의 자민련 수준에 그친다면 별다른 영향력 없이 소멸할 위험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천정배의 브랜드를 가지고 선거에 출마시켜 당선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만큼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고민되는 대목이다. 지금 상태에서는 다른 세력들과 연대해서 호남벨트를 만들어 가고, 그 범위를 수도권까지 진격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호남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하나의 밀알이 되어 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호남정치의 복원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소외받고 차별받은 호남사람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스스로 지켜나가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러한 모습들이 지역감정으로 보여 전국정당을 지향하는 자신들의 입지를 좁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다보니 극도로 망국적인 호남차별 앞에서 어떠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던 것이다. 천정배가 주창하는 호남정치 복원이 어떤 방법으로 실현될지, 그러한 정치세력이 호남차별을 얼마나 막아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