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당에 나가고 있으니 영혼의 존재가 있다, 없다 말하기가 좀 그럽니다만, 내가 겪은 일이라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할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기도 하는 것은 내 마음이 갈대를 닮았나 봅니다.

벌써 40여 년이 지났습니다.

심장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다가 목련 꽃이 땅에 뒹굴던 날 엄마는 소풍을 끝내고 떠나셨습니다.

엄마가 떠나신 그때는 슬프다거나 그립다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엄마가 처음 본 곳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한쪽은 계곡이 보였고 반대쪽은 돌담을 길게 쌓은 자갈길 길가에 앉아있었습니다. 길 양쪽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엄마에게 가서,

“엄마, 왜 여기 있어?”

하고 물으니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로 타다 남은 하얀 고무신을 무릎에 탁탁 치면서,

“내가 이 고무신은 발이 아프다고 말했었는데 이걸 주면 어떡해?”

엄마는 생전에도 언제나 한복 차림에 고무신을 신으셨는데 흰색 고무신은 발이 아프다며 옥색 고무신만 신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삼우제를 치르고 난 뒤 이모할머니가 엄마 옷하고 신발을 태우셨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풍습을 몰랐기에 할머니가 옷과 신발을 태운 사실 역시 몰랐습니다. 그랬는데, 내 꿈속에 엄마가 나타나서 하얀 고무신은 발이 아파서 신지도 못하는 것을 태웠다고 화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고 놀라서 잠을 깼습니다.

할머니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까 깜짝 놀라시며,

“에구머니나! 어미가 흰색 신발을 신었던 게 아니니? 그것도 모르고 그 신발이 새것이기에 태워 보내줬지.”

할머니는 당황하셨지만 나는 그냥 내 몸이 피곤해서 개꿈 꾼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날 밤 또 꿈을 꾸었습니다.

먼젓번 장소에 그대로 앉아있는 엄마에게,

“엄마 왜 여기 있어?”

라고 물으니 어디를 가는데 차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불에 탄 자국이 있는 옥색 고무신을 무릎에 탁탁 치며

“이게 아까워서 안 준 거니?” 하며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엄마의 심통스럽고 거친 말에 놀라서 잠이 깼습니다.

“할머니, 엄마가 또 꿈에 나타나서 파랑 고무신이 아까워서 이제 줬다고 화를 냈어.”

하는 내 말을 듣고

"어미가 많이 기다렸구나, 어젯밤에 태워 보냈단다.”

나는 할머니의 그 말에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흰 고무신을 태운 것을 몰랐듯이 파랑 고무신을 태운 것도 당연히 몰랐습니다. 그랬는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꿈에 나타났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고무신 사건을 끝으로 내 꿈에 나타나지 않더니, 임신해서 출산 때였는데 뱃속에 아이가 위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진통 중에 꿈을 꾸었는데 엄마가 커다란 칼을 들고 내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엄마 그 칼로 뭐 하게?”

묻는 내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벽장문을 열더니 소반에 있던 참외를 꺼내 칼로 깎으려고 했습니다.

“엄마 그냥 둬. 왜 그걸 먹어.”

나는 참외를 깎아 먹겠다는 엄마를 말렸습니다.

내가 말리니까 엄마는 한참을 쳐다보더니 참외를 그 자리에 놔두고는 칼을 들고나갔습니다.

그런 꿈에서 깨고 나자 뱃속에서 아이가 움직이면서 진통이 시작하고 얼마 뒤, 건강한 아이를 순산했습니다.

그 참외 꿈도 신기한 것이 다락에 넣어두었던 참외는 태몽이었던 것입니다.

엄마가 참외를 깎아 드시게 놔뒀으면 아이가 세상 구경을 못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와 아이 낳을 때 꿈이 너무도 선명하고 딱딱 맞아서 나는 내 몸에 신기가 있는 것 아닌가 하며 몸서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그런 비슷한 꿈도 꾸지 않아서 다행스럽습니다.

귀신이나 영혼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으니 그냥 한여름 밤의 꿈으로 생각하고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젠 꿈에서라도 엄마가 보고 싶은데, 먼 곳으로 영영 떠나셨나 봅니다. 파란 고무신을 신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