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대법원의 현안과제는 상고법원 설치다. 최근 몇 년 동안 상고법원의 설치에 모든 역량을 강화해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대법원과 대한변협, 그리고 각 지방변호사회 사이에 의견이 충돌되어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현재의 상고심 구조로는 사법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없다는 논리를 든다. 사건의 폭증으로 인해서 대법원의 업무가 과중되어 제대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고 결국은 국민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고심 재판을 이원화 하여 상고법원은 개인 간의 권리구제에 필요한 사건을 집중해서 신속하게 해결하고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법령해석의 통일'이나 '공적 이익'과 관련된 사건들만 처리함으로써 상고심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논거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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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법원의 설치를 반대하는 입장은 헌법 제27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을 받을 권리’에는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헌법에 위반되고, 대법원의 사건폭주는 대법관 수를 늘림으로써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외국의 입법례도 상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경우가 있고, 우리 헌법재판소도 ‘상소심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헌법상 명문화한 규정이 없고 상소문제가 일반 법률에 맡겨진 것이 우리 법제라면 헌법 제27조에서 규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모든 사건에 대해 상소법원의 구성법관에 의한, 상소심 절차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까지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고, 모든 사건에 대해 획일적으로 상소할 수 있게 하느냐 않느냐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입법정책의 문제(헌법재판소 1993. 11. 25. 선고 91헌바8 결정)’라는 점을 들어서 상고법원의 설치가 헌법상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또한 대법관 수가 늘어나면 전원합의체 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을 받을 권리는 당연히 최종심을 맡고 있는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포함한다고 봐야 한다. 헌법 제101조는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하면서 심급제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법원조직법에서는 3심제(三審制)를 취하고 있다. 심급제는 재판을 신중하게 처리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확보하고, 당사자의 이익을 충실히 보호하려는데 있다. 재판은 오판이 있을 수 있으므로, 상급심에서 시정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급제의 핵심은 법원의 모든 재판을 궁극적으로는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심리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재판의 통일을 기하고 당사자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써 법질서를 확립하려는 것이다. 결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을 받을 권리는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말하고, 오판의 방지와 당사자의 보호를 위하여 최고법원의 재판권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대법원이 임의적 기준에 의해서 사건의 중요성을 판단해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평등의 원칙에 반하게 된다. 또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법관의 수가 증가하더라도 그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효율적 운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법부가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서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서 선출되는데 반해서 사법부의 구성은 국민이 직접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부의 권한이 다른 국가기관에 비해서 사법적 판단이라는 수동적은 권한에 그치는 것이며, 또한 대법원의 구성에 대하여 헌법에서 비교적 상세한 규정을 두면서 자격요건, 신분상의 독립, 심급제의 도입 등을 규정하여 재판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헌법은 대법원의 구성에 대해서만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고 나머지 법원의 경우에는 법률에 의해서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대법원의 구성을 중요시하고 있는 이유는 국민들로 하여금 최소한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확보하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상고법원의 설치가 지금의 상태에서 유효적절하고 상고심 개혁의 필요한 방안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최근 대법원의 구성이나 재판태도, 법관의 인사 등을 살펴보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모습이어서 과연 균형잡힌 사법부 구성과 객관적인 재판작용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대법관의 구성이 획일적으로 특정 대학과 특정 직역 종사자에 치우쳐 있고, 노동사건 등에서 보여준 대법원의 판결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며, 법관 인사에 국가정보원이 개입하도록 허용하고 있어 사법부 구성과 재판업무의 독립성을 지켜나가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런 상태에서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균형 잡힌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법률을 형식적으로 적용하는데 그침으로써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를 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헌법에서 사법부에 주어진 권리는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해 달라는 것, 그럼으로써 국민들의 권리를 지켜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소수자라 할지라도, 경제적인 약자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이를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는 대법원이다. 그만큼 대법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법원이 보여준 최근의 태도는 다수의 이념적 성향에 편승하고, 경제적으로 강자의 입장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판결을 자주 보여서 헌법적 가치를 충실히 실행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대법원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민주적 정당성을 믿고 국가권력을 남용하려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바른길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도 대법원의 역할이다. 경제적 우위의 힘을 믿고 약자를, 이념적으로 다수파의 의견으로 소수를 억압하려는 것에 제동을 거는 것도 역시 사법부다. 그럼으로써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경우에는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사법부 구성의 다양성, 특히 소수자를 배려하는 구성, 이념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극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역할, 상대방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도 대법원의 고유 권한이다. 지금은 대법원이 상고심 설치를 논할 때가 아니라 우선 자신의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다. 대법원이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만을 들어 상고법원 설치를 강행하려는 것은 국민을 위해 적정한 사법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적보다는 법원의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서 고위직 법관자리를 늘리려는 것으로 오해받기 쉽다. 또한 상고심에 사건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실심의 심리를 강화하는 등의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