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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은 변했어도 인걸은 남아 있었지” 신춘몽
중랑방송  |  webmaster@cnbc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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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6.27  08: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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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는데 나의 생각의 날개가 미래가 아니고 과거를 잡고

늘어지게 되였다.

내일은 어떤 일을 할까? 어떤 일이 기다릴까? 고민하고 갈등하였는데 지금 나는 내일을 궁금해 하지도 설계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과거 뒤지기에 몰두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돈이 많았으면,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합격했으면, 좋은 직장, 좋은 남편, 좋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였으면 하는 바람도 이제는 시간의 순리에 맡기게 되였다.

돈 이란 배고플 때 허기를 채울 수 있으면 되고, 추울 때 몸을 덮어 줄 게 있고,

아플 때 약 값이 있으면 되다는 생각을 하고부터는 잠자리가 많이 편해졌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손톱이 빠져라 악다구니를 하였던 수많은 날들도

어느 날, 보도 불럭 사이를 비집고 나와 꽃을 피워 낸 민들레를 보며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의 이런 변변찮은 고백에 배부르고 등 뜨시니까 복에 겨워 깨 춤춘다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허릿병이 있으니 깨 춤은 추지 못할 것 같고, 내 이름으로 집 한 칸은 물론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고, 부잣집 멍멍이도 들고 다닌다는 명품 가방 하나 없으니

가진 자의 배부른 넋두리는 아닌 것 같아서 혼나지는 않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이가 인간을 숙성시켜 주는지 마음 가득 평화를 담게 되어

추억 여행을 자주 하게 되였다.

경기도 양평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티브이 드라마에 나왔던 기차역이 등장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살아있는 기차역이지만 사실은 오래전에 “폐역이 된 그곳이

내가 태어난 마을이다.

내 아버지 외가의 집성촌 이었기에 , 아버지는'6.25전쟁 동안 그곳에 숨어 사셨고

' 죽고 죽이는 참혹함 속에서 내가 태어났다고 하였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것이 내 나이 9살 되던 겨울이었는데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하늘의 별들이 총총 빛났던 서울의 밤 하늘을 오래도록 기억하였다.

서울로 오고서는 여고 때 어떤 사람의 결혼식에 한번 가서 아무 꾸미도 없는

잔치국수를 꿀맛으로 먹고 왔던 일 말고는 그곳을 잊고 지냈었다.

아버지의 외가 친척들이 모여 살기에 아직도 4촌 5촌,,, 10촌 이상들이 있겠지만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도 6.25 전쟁을 피해 친척들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에

찾아가셨다가 설음과 배고픔을 당하고 오셨다고 아버지도 찾지 않으셨다.

나 역시 많은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잊고 지냈는데 나이가 망령인지

새록새록 그리워지게 되여, 그곳 지리를 잘 알고 있다는 친구와 함께 길을 떠났다.

9살에 떠난 그곳을 60년 만에 찾아보니 너무도 생소했다.

저~어~기, 저곳이었을 곳에 상엿집이? 저기 뒤 동산이 있었는데 ?,

아닌가? 여기가 저긴가?,,, 아무리 머릿속을 비집고 후벼 파 도

9살짜리 기억 속에는 없었다.

동행해 준 친구에게 미안해서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은 마을회관 앞에서

쉬고 있으라고 하고 혼자서 찾아 나섰다.

오래된 집 사이로는 익숙한 골목이 보이는 듯도 했는데 여기저기 신식 집들 마당에

매어있는 큰 개들의 반격이 대단해서 60년 전의 추억이 히미 해지기도 하였다.

더구나 사람들의 그림자조차도 볼 수 없으니 망막하고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포기하고 돌아 오려는 그때, 어느 오래된 집 나무 대문 앞 마늘 밭에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마을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에 뛰다시피 가까이 갔다.

“ 안녕하세요? 어르신, 여기 오래 사셨어요?

“으~응, 예? 나는 시집와서 아직까지 살고 있는데 누구슈?

할머니 연세가 “90은 넘어 보이기에 혹시 60년 전 일을 기억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저~어 어르신, 이곳으로 피난 와서 사셨던 “신현만 씨를 기억하세요?

나는 아버지의 성함을 말하고 나와의 관계 설명도 말하지 않았는데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할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를 급하게 펴시더니,

“신현만? 그럼 네가 춘몽이냐? 하시는 거였다.

나는 내가 누구라는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6년 전 이 아니고 60년 전의 내 이름을

불러주는 모르는 할머니 때문에 기절할 뻔했다.

내 아버지를 기억하신 것만 해도 놀랄 일인데 60년이 지나버린 9살짜리 내 이름까지

불러 주시다니 놀랍고 감격스럽고 가슴은 방망이 질을 했다.

“네? 저를 아세요?

“ 아이고, 춘몽이가 왔구나 왔어 ,,, 하시며 할머니는 밭에서 나와 내 손을 잡으셨다

90살도 훨씬 넘으신 것 같아 보인 할머니가 어찌나 힘껏 잡으셨는지

나의 두 손은 한동안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엄마하고 바가지에 밥 비벼 드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셨고 우리 아버지가 엄청 짓궂으셨다며 웃기도 하셨다.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 외가 쪽 친척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지만

너무 먼 촌수여서 인지, 나와 내 부모를 기억하는 귀한 인연을 만나서

흥분된 마음에서인지 촌수가 어떻게 된다는 말은 들었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 가슴은 60년 전의 나와 내 엄마와 아버지 이야기로 시간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는 감격스러움에 하늘을 날고 있었을 뿐 이였다.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깊게 주름진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찍어내는

할머니의 모습에 내 두 눈도 젖었다.

친구와 같이 갔던 것이 아니었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였을 텐데

마을회관에서 기다릴 친구에게 미안 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할머니 연세가 또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처음이자 마지막 같은 마음으로,

용돈 하시라며 주머니에 넣어드리니 허둥지둥 따라 나오시며 사양을 하셨다.

“밥 도 못 먹고 그냥 가서 어쩌 누 ?. 다음에 또 올 거 지?

“들깨 농사가 잘 됐어, 기름 짜 놀 테니까 꼭 와야 혀?

“네, 할머니 오래오래 안녕히 계세요.

할머니의 따뜻한 배웅을 온몸으로 받으며, 걱정과 지루함으로 기다릴 친구를 향해

바삐 걸었다.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 한편에 매어진 덩치 큰 흰둥이가 목이 터져라

짖어대고 있었다

“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나는 흰둥이 너의 몇 대 조상님 보다 더 먼저

이 마을의 주인이었다고,,, 까불고 있어,,,

어이없어하는 흰둥이에게 으름장을 남기고 걷는데

땅에 발이 닫지 않고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았다

여고 국어시간에 배웠던 옛 시가 생각이 났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몰아드니, 산천은 의구 한데 인걸은 간 곳 없네.”

제대로 기억해 냈는지, 자신은 없지만 나는 오늘 그 옛 시를 이렇게 바꾸고 말았다.

“60년 고향 땅을 타임머신을 타고 오니, 산천은 변했어도 인걸은 그곳에 남아 있었네.

아마도 이런 억지도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오늘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멈추고 싶지 않다.

할머니가 들기름 짜 놓으신다고 했는데 들기름 가지러 간다는 핑계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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