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 제기3동은 나의 고향이다. 1951년 생이니까 엄마에게 잉태된 채로 피난길의 산골마을 어느 집 행낭 채에서 태어났던 날을 빼고는. 60년 넘는 시간을 서울 살이를 한  것 같다.  한 많은 피난 살이를 접고 서울로 돌아온 후 제기동 136번지에서 뿌리를 뻗었으니, 아마 누군가는 서울깍쟁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때 60~70년대에만 해도 제기동은 서울의 외곽이었기에, 엄마는 동대문 시장에 갈 때마다"문안에 다녀올게"라고 했다.

제기 3동은 고려대학교라는 명문대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지방에서도 수재들이 유학 와 학생들의 물결들이 싱싱한 바다를 연상케 했다. "라고 고연전, 연고전이 열리면 제기동 사람들의 귀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으니, 연대가 이기면 졌다고 술 마시고 골목을 누볐고, 고대가 이기면 이겼다고 좋아라 난리를 쳤으니 3~4일은 작은 전쟁터로 변하곤 했었다.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때가 명절 대목이라며 음식점과 술집, 구멍가게들까지 대성황을 이뤘다. 맹자 엄마가 이사를 세 번씩 한 이유가 맹자를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려 함이었듯이, 제기동에서 살았던 어린이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보고 자라서인지 반듯하게 자라난 사람들이 많다. 공부하고 엄청나게 사이가 나빴던 나 한명만 빼고 말이다. 제기동은 남편 없이도 집 한 칸만 있으면 하숙을 쳐서 살 수 있다는 곳이었다.

나는 숭례 국민학교, 지금 말로 하자면 숭례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4학년 때까지 고려대 후문 앞 홍릉 쪽 사거리쯤에는 논과 밭이 있었다. 가을이 되면 학교 갈 때는 황금빛 논둑 길을 거쳐가는데 메뚜기도 잡으며 놀면서 등하교를 했다. 지금 넓은 길을 달리는 차들은 그때의 황금들판을 짐작이나 할는지 모르겠다. 숭례 초등학교 옆에는 그 당시 최신식의 오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은 거드름을 피우지 않아도 선망의 눈총을 받았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아파트 엄마들은 집 앞 학교에 올 때에도 치렁치렁 늘어지는 홈드레스나 반짝반짝 빛나던 본견 한복을 빼입고 왔다. 우리들은 공기놀이를 하다가도 멋쟁이 엄마들을 구경하고, 집에 있는 우리네 엄마들과 비교하곤 했다. 그때 우리 엄마가 새로 해 입었던 한복은 분홍색 나일론 저고리에 파란 치마였는데, 그것도 문안에 갈 때만 입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5월 5일 단옷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동묘에서 행사가 있어 엄마 손잡고 구경 가는데 청포 물에 머리를 감고 한복 입은 사람들이 창을 부르고, 널뛰기, 화살 쏘기 등등을 구경 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볼거리를 구경하고 골목길로 조금 내려오다 엄마가 어느 기와집을 가리키며,

“저 집이 단종임금의 왕비 송씨가 살았던 집이다”라고 알려 주었다. 어린 남편이 귀양가서 죽고, 친정집 역시 몰락했기에 왕비 송씨는 그 집에 버려져 살았다고 한다. 나라에서 도와주지도 않고 일을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기에 굶는 지경까지 갔더랬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웃 사람들이 왕비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집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들을 담 안쪽으로 슬쩍 슬쩍 던져주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왕비는 80을 넘겨까지 살 수 있게 되었단다. 그때 왕비를 도와주려고 좌판을 펼쳤던 것이 그 후 내가 클 때까지도 골목시장으로 남아 있었다. 수 십 년 동안은 동묘 쪽에 가 본일이 없어서 지금까지 골목시장이 이어지고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그 시절의 백성들의 마음은 지금 우리들보다 대단했던 것 같다. 우리들은 무엇을 하더라도 대가를 바라는데, 그때 사람들은 들키면 혼이 날 것을 감수하면서도 베풀었으니, 나는 지금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진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동묘 앞을 지나면서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오늘 지하철 안에서 서울사랑 공모를 한다는 것이 눈에 들어와서 응모하고픈 마음에 종이 위에 추억을 펼치고 앉게 되었다. 숨겨져 있던 추억을 들쳐내고 보니, 뜻 모를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바쁘게 살고 있다는 핑계로 제기동을 잊고 수십 년을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메뚜기 잡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던 나 하고 통장 집 아들이 서로 눈이 맞아 모래주머니는 내 팽기 치고, 내방 창가 아래서 시간을 보냈다. 하필이면 그날 드라큐라 영화 이야기를 해 주는 통에 그날 이후 며칠을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지금은 그 오빠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제기동의 추억을 헤집어 보니 그가 생각난다는 것은 여중생과 고등학생의 풋사랑 비슷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승만 대통령 사가인 이화정 근처에 살고 있던 이모 집에 심부름을 갈 때, 엄마가 차비하라고 준 돈을 알사탕 사 먹고 제기동에서 이화정까지 걸어갔다 온 기억은 달콤한 알사탕처럼 가슴속을 달달하게 한다. 동대문 앞에 뚜껑 없는 놀이 기차가 있었는데, 그 기차에 오르면 굴속 같은 곳을 한 바퀴 돌아오는 기차다. 그때는 그런 것을 타고 즐거워했는데, 지금 그 아래로 거대한 진짜 기차가 오고 가니 그 당시의 우리로서는 짐작도 못할 일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의 고향인 제기동은 주위에 많은 행복을 간직한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에 분홍 꽃이 핀다.

다음 금요일에는 동묘에서 내려 왕비님 집과 청포 물에 머리 감던 옛 님들을 만나봐야겠다. 그곳에는 착하고 예쁜 우리 선조들이 웃으며 반겨줄 것만 같아 벌써부터 설레인다. 입을 열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사랑이 아니겠는가. 마음을 열어 그리웁다고 하지 않았다고 그리움이 없겠는가. 나도 모르게 내 가슴에 사랑하고 그리운 내 고향 서울이 있다. 하늘과 땅에 감사하지 않듯이 아름다운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60년을 등 비비고 볼 맞대고 살면서 한 번도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글에 이끌려 떠나고 보니, 나는 제기동을, 서울의 한 부분인 제기동 내 고향을 아주 많이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메뚜기 잡던 동무들과 왕비님께 먹을 것을 던져주던 착한 이들도 서울에 있었다. 그리고 추억과 함께 그곳에서 나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