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15 특별사면을 했고, 언론은 ‘절제된 사면’ ‘재벌을 최소화한 생계형 사면’ ‘고심의 흔적이 보이는 사면’이라는 등 사면의 정당성을 홍보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번 사면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위한 사면이고 나머지는 들러리로 보인다. 객관적이고 합리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2008년 광복절에 이미 한 차례 사면을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특별사면을 두 번 받은 것이 이례적이라면서 사면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정부·여당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사면에서 제외한 이유가 특별사면을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나왔다. 김 회장은 1995년 8·15, 2008년 8·15 등 두 번에 걸쳐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러나 두 번의 특별사면이나 세 번의 특별사면은 모두 이례적인 것이고, 일반 국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특혜이며 은전이다.

그동안 재벌 총수들은 재판 과정에서도 국민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양형의 배려를 받았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거나 앞으로 국민경제에 기여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유로 특별사면의 혜택을 누려왔다. 도대체 경제살리기용 사면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나왔으며, 세계 각국의 사면 역사에서 그런 예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면이 경제를 살린다는 천박한 발상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가당키나 한 말인가?

재계(그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만든 이익단체)에서는 기업인의 사면을 외치면서 경제살리기라는 명분을 들이댄다. 그런 천박스러운 단어를 정부가 언론플레이를 통해 슬며시 받아들인다. 사전에 기업과 정부가 교감을 이루었다는 방증이다.

이쯤에서 그동안 재벌 총수들이 받은 사면의 은전을 더듬어보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997년 10·3, 2009년 12·29 등 두 차례 사면을 받았고, 두 번째 사면은 이 회장만을 위한 원포인트 사면이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2008년 8·15 한 차례, 최태원 회장과 김승연 회장이 각각 두 차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2002년 12·31 한 차례, 포스코 유상부 전 회장이 2010년 8·15 한 차례, 현대중공업 정몽준 전 회장이 1995년 8·15 한 차례 사면을 받았다.

더 경이로운 것은 재벌 총수들이 형사재판이 확정되고 1년 이내 또는 2년 내에 특별사면을 받은 경우가 자주 있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특별사면에 의해 국가의 재판권이 농락을 당한 것이고, 삼권분립의 원칙이 정면으로 짓밟힌 것이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제약 없이 행사되어서는 안되는 국가적 공권이다. 기업인에 대한 무분별한 사면(형사재판 후 곧바로 또는 한 사람에게 자주 사면을 하는 경우), 권력자의 측근들에 대한 보은 사면은 국가의 근본질서를 흔드는 헌법 파괴적 권력행사다. 사면권은 사법부의 재판권이 갖는 경직성을 완화하고, 형집행에 있어서 국민적 화합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권리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김정범 | 변호사·한양대 법학전문 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