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태 종 호

남과 북이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바람직하지 못한 역사의 퇴행을 의미한다. 대화 단절과 상호 불신으로 치닫는 것은 남북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시대착오적인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을 맞은 한반도의 모습은 어둡고 무겁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남과 북 모두가 겪고 있는 수많은 분단갈등의 아픔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남과 북은 관계개선의 징후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경색되어 가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골든타임이라는 6.15 남북 공동행사도 8.15 남북 공동행사도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북이 이희호여사 방북 초청이나 금강산 관광지구내 소나무 숲에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 남측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유화적 신호를 보낼 때만 해도 북의 태도변화가 감지되기도 해 기대감이 있었다. 북은 당연히 그러한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한반도의 모든 난제를 풀기 위한 대화의 우선순위도 같은 민족인 남쪽이어야 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원요청도 당연히 남한과 먼저 상의하는 게 맞다. 이산가족의 아픔도 하루빨리 치유하고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통일을 위한 디딤돌도 함께 놓아야 한다.
그런데 북은 이와 같은 상생의 길을 버리고 DMZ 지뢰도발을 자행함으로서 갈 길 바쁜 한반도의 미래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북의 DMZ 도발은 북의 폭력적 본성이 증명된 만행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의도적으로 우리 군 작전지역에 북의 지뢰를 매설해 인명살상을 목적으로 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는 1976년 8.18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는 미군장교 2명이 살해됐고 이번엔 우리 군의 젊은 병사 2명의 발목을 앗아갔다. 이 실망스러운 비보에 국민들은 울분과 충격에 빠졌다. 이는 명백한 정전협정의 위반이고 테러행위다.
북한이 이처럼 고의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속셈은 북의 대남전술의 변화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겉으론 대화를 내세우며 속으로 도발을 일삼았다면 지금은 남측의 대화제의를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서 남남갈등을 증폭시키고 아직도 불안하고 석연치 않은 김정은 체제의 내부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보인다. 남한과의 대화는 철저히 외면하고 내부단속용 공포정치로 숙청을 일삼는 등 조급하고 정교하지 못한 면모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분보다는 실리에 매달리는 절박함도 변화된 모습이다.
이희호여사 방북 시 겉치레라도 초청자의 예의를 갖추는 보편적 상식보다는 얄팍한 실익을 따져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 무례까지 감수하는 태도를 보였다. 과거에 비해 안정되지 못한 어설프고 허술한 대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교적 의전까지도 전략 전술로 일관하고 있는 북한의 행태는 안타깝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북의 이와 같은 선택은 국제사회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고난을 가중시키고 명분도 실리도 다 잃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이다. 북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핵이 아니라 개방이고 도발이 아니라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지금 북이 저지르고 있는 상식을 벗어난 비이성적인 행태들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민족을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는 길이다.
우리 한반도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소중한 평화는 지켜져야 한다, 그러기에 남북은 대화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조건 없이 마주 앉아야 한다. 대화에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대화의 의지에 대한 순수성이 훼손되기에 그렇다. 남과 북은 지금과 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이성을 되찾아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서로를 자극하며 치킨게임을 벌이는 것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길이 아니다.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로 비난의 수위를 높이기보다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주변 환경을 탓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북핵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난제들도 결국에는 실마리가 풀리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해결이 안 되는 일은 없다. 진통의 시간이 길어 질수는 있으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나누다 보면 결국 좋은 결실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북은 백해무익한 테러행위나 핵 놀음을 그만 두고 이란과 쿠바, 중국과 베트남의 결단을 본받아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성사여부는 이제 북한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그 공간은 그리 넓지도 않고 시간도 없다. 상식과 금도를 벗어난 불장난을 용서할 나라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북한은 더 늦기 전에 과감한 개혁 개방의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국제사회와 교류를 통한 신뢰회복에 나서야 한다. 통일은 그 다음의 문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회담이든 북미회담이든 6자회담이든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길밖에 없다. 그것만이 세계 속의 외톨이가 되지 않는 길이다. 위험천만한 남북관계의 파국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