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松園의 밤
                京山  太 宗 鎬

맑게 개인 초가을 밤
예송원 정자위에 오르니
구름 속에 숨어있던 보름달이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다.

달빛에 젖은 북한강 물결은
고기비늘처럼 은빛으로 반짝이고

짙은 여운을 남긴 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경춘선 열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릴 적 옛 친구 생각하는데

오래전에 바다로 떠나버린
가족을 찾아 나선 물줄기가
나를 보며 애타게 손짓한다.
 
오호라
뒤돌아보니
하얀 조명등 불빛아래
저마다 고고한 자태를 지닌
소나무들이 반색하며
나를 부르고 있구나.

그렇다.
저 소나무들은
그냥 그런 나무가 아니다.
이 땅의 전설을 만들어 온
우리 민족의 혼이다.

조상들의 한을 오롯이 간직한 채
흥에 겨운 멋과 가락
수천 년 먹음은 향기를 내뿜으며
누구도 범하지 못할
군자의 풍모까지 갖추었으니

나무마다 가지마다 자유롭고
조화로운 저 질서를 보라
 
미동도 하지 않고
한 자리를 지키고 서서
천금 같은 침묵으로 말한다.

강물이 가야할 길 
우리가 가야할 길
우리 조국이 가야할 길 가리키며

아름다운 예송원의 가을밤을
수놓고 있다.

乙未年 2015년 초가을 대성리 예송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