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태 종 호

한반도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예고한데 이어 핵실험카드까지 한꺼번에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북은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는 모처럼 조성된 남북대화를 신뢰 구축보다는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당연히 북한에 대한 미국과 중•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남과 북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경색의 터널을 겨우 빠져나왔다. 최근에는 이른바 지뢰 도발에 따른 일촉즉발의 위기를 극복하고 어렵게 8.25 합의를 이끌어 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 면회소에서 갖기로 했다. 상봉행사를 앞두고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이산가족들은 피붙이를 만날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국제사회도 이를 주목하고 있는 시점에 북은 또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저해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동북아와 유라시아를 넘어 인류공영의 미래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정착이야말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오랜 힘겨루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우선 북의 비핵화가 전제되어야한다. 이는 우리가 다 아는 상식이다. 핵 있는 북한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의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통일의 조건을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북이 핵을 포기하고 스스로 변화를 택하는 것이다. 북의 수뇌부가 체제붕괴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외부세계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핵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고 쉬운 방법이지만 현재로서는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선택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제재나 협상을 통한 해결책인데 이 방법도 이미 시도한바가 있다. 대북제재를 통한 경제적 압박을 가해보기도 했고 소위 북핵 6자회담을 통한 주고받기 식 해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대북불가침. 대북 에너지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9.19 공동성명이 그것이다. 채찍과 당근을 통한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는 못했다. 3차례의 핵실험을 통한 핵탄두의 소형화와 탑재능력만 제고되어 왔다. 만일 9.19 공동성명이 그대로 지켜졌다면 북핵문제의 해결과 함께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평화를 향한 마지막 퍼즐은 이미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진통 끝에 마련된 이처럼 훌륭한 결과물도 북한의 일방적인 약속파기로 사문화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북한은 남북합의의 서명 잉크도 마르기전에 벌써 찬물을 끼얹고 있다. 민간교류 활성화로 합의했던 개천절 공동행사를 비롯한 남북이 합의한 행사를 무산시키고 남북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상봉마저 정략적 카드로 위협하고 있다. 북한의 이 같은 행태 때문에 국제사회가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통일의 핵심은 북한의 신뢰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방안도 신뢰가 없이는 물거품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북핵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와의 신뢰구축에 진정성을 보여야만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제재, 경색, 대화의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북이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면 북이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대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강력한 국제공조로 외부여건을 조성해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정부나 국제사회는 북한이 왜 그렇게 핵개발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고 반발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해보아야 한다. 과거보다 훨씬 강도 높은 제재방법을 포함한 새로운 패턴의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북한이 첨예한 대결국면에서도 개성공단만은 흔들림 없이 가동시키고 있는 데서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북한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과 같은 자극적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핵이 체제를 지켜준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이제 수명이 다한 벼랑 끝 전술을 버리고 대화를 통한 신뢰구축에 나서야 한다. 로켓발사와 핵실험은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이고 국제사회와 남북화해의 신뢰를 져버리는 행위다. 또한 점차 고립되어 가는 북한의 생존을 위협하는 길이고 한반도의 펑화를 파괴하는 행위다. 북한은 급변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회복되고 교황과 카스트로가 만나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 반대의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핵과 경제를 함께 취할 수는 없다. 핵을 버리고 작은 약속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를 향해 더 큰 협력사업을 키워나가야 한다. 북한의 신뢰, 그 것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