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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 받은 상처는 모래에 기록하고 받은 은혜는 대리석에 새겨라(Write injuries in dust, benefits in marble.).” 유엔 참전용사들의 은혜 깊이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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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06  10: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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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더 이상 잊힌 전쟁이 아니다. “진정으로 승리한 전쟁”으로 기념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우리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위대한 헌신으로 우리가 이룬 대한민국의 “놀라움(Amazing)”의 발전의 성과도, 남북 분단의 아픔도 그날에서 비롯되었다.

-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의 비문에는 노산 이은상이 지은 헌시(현충 시)가 새겨져 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마음 깊이 울림을 주는 글귀다.

 홍순철「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중랑구 협의회 고문, 서울 중랑교육발전협의회 회장, 대한교육신문 논설 주간, 한국문예연수원 교수(수필가·시인·칼럼니스트 귀연 貴緣), (前)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현 이사), 신현고등학교 교장」

■ 11월 11일은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이다. 유엔 참전용사의 명예 선양 등에 관한 법률(약칭: 유엔참전용사법) 제5조(유엔군 참전의 날 및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 ① 6ㆍ25 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유엔 참전국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한다. ② 6ㆍ25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념하고 이들을 유엔 참전국과 함께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11월 11일을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로 한다.

유엔참전용사법 제2조(정의) 1. “6ㆍ25전쟁”이란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약칭: 참전유공자법) 제2조 제1호(“6ㆍ25전쟁”이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사이에 발생한 전투 및 1948년 8월 15일부터 1955년 6월 30일 사이에 발생한 전투 중 별표의 전투를 말한다.)에 따른 전쟁을 말한다. 2. “유엔참전용사”란 6ㆍ25전쟁에 참전한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군 소속의 군인을 말한다. 3. “유엔참전국”이란 6ㆍ25전쟁에 참전한 국제연합 회원국으로서 별표의 국가를 말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1950년 6월 27일 제2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의 이름으로 연합군을 파병할 것을 결의하였다.

6.25전쟁 기간(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UN 22개 참전국<16개 전투지원국(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룩셈부르크), 6개 의료지원국(덴마크, 독일,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41개 물자지원국)>, 1,957,733명의 유엔 참전용사의 위대한 헌신(전사 / 사망 37,902명, 부상 103,460명, 실종 3,950명, 포로 5,817명 계151,129명)의 토대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함께 노력하여 만든 대한민국의 놀라운(Amazing) 70년, 성공의 역사에 대하여 우리 국민들과 22개 참전국이 함께 자부심을 느끼도록 6·25 참전유공자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우리의 감사 마음을 담는다「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2014.6.), UN평화기념관 방문을 환영합니다. 전투·의료지원 페이지 입니다. (unpm.or.kr), 6.25 전쟁 참전 국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전쟁 기간 이들 다국적군으로 참전한 UN군 참전용사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전장이나 후방지원에 목숨을 바쳐 명예롭게 싸웠다.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소중함을 기억하고자 그 의미의 되새기는 국내외 현충 기념(추모)시설에서 그날을 돌아본다.

▶ 현충 기념(추모) 시설물은 나라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지만, 희생 장병을 기리는 뜻은 같다.

국가보훈부는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 등을 계기로 국내외의 다양한 행사를 통해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참전국과의 우호 협력을 확대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 대한민국 현충 기념(추모)시설

□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국가유공자법) 제74조의 2(현충 시설의 지정) ①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가유공자 또는 이들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ㆍ조형물ㆍ사적지(史跡地) 또는 국가유공자의 공헌이나 희생이 있었던 일정한 구역 등(“시설 등”)으로서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는 데에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현충시설(顯忠施設)로 지정할 수 있다. ② 현충시설은 1. 독립운동 관련 시설 2. 국가수호 관련 시설과 같이 구분하여 지정한다.

□ 현충시설의 지정ㆍ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3조(현충시설의 범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제74조의 2에 따른 현충시설의 범위는 1. 독립운동 관련 시설 2. 국가수호 관련 시설 가. 국가수호활동에 관한 사실 또는 참전(參戰)한 국가유공자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설치하는 기념비ㆍ전공비ㆍ추모비ㆍ현충탑ㆍ위령탑과 그 밖의 비석 및 탑 나. 참전한 국가유공자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설치한 조형물ㆍ상징물 다. 국가수호활동에 관한 조형물ㆍ상징물 라. 국가수호활동을 한 장소 마. 국가수호활동과 직접 관련된 기념관ㆍ전시관 바. 그 밖에 국가보훈부장관이 국가유공자의 호국정신(護國精神)을 계승하기 위하여 현충시설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시설이다.

□ 국내에 건립된 UN군 참전비들은 ① 희생자의 영령보호 및 안치, ②국가의 대표적 이미지 형상화, ③ 국가이미지와 참전의미 혼합, ④ 전쟁과 관련된 이미지 형상화, ⑤ 자연석 기념 등 다양한 추상적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수호를 위한 거룩한 희생”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차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런 UN군 참전비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대한민국이 목숨을 바친 UN참전용사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추모와 전쟁의 상흔을 재구성하고 있다「UN평화기념관 방문을 환영합니다. 국내 페이지 입니다. (unpm.or.kr), 」.

▶ 국가수호 현충 시설 쥴·장 루이 소령 상(SITE DU MONUMENT DU MEDECIN-COMMANDANT JULES JEAN-LOUIS)은 쥴·장 루이 공원(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55)에 있다. 쥘 장 루이는 한국 전쟁(1950-1953) 당시 UN 프랑스 대대의 군의관으로 홍천의 지뢰밭에서 두 명의 한국 군인을 구출하다가 전사했다. 이 희생은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만들었다. 홍천에는 그를 기리기 위해 1986년 10월 25일 동상이 세워졌는데, “자유를 위한 그의 영웅적인 희생, 그가 임무를 수행하면서 구현한 인도주의적 이상, 특히 대대의 진격 과정에서 만난 민간인들을 위해 구현한 인도주의적 이상은 이 나라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쥘 장 루이(Jules Jean-Louis), 한국의 사나리안과 영웅 - Sanary-sur-Mer Town Hall (sanarysurmer.com), 장 루이 박사 - 주한 프랑스 - 주한 프랑스 대사관 (ambafrance.org)」.

쥴·쟝 루이 공원의 쥴·쟝 루이 상(像)으로 올라가는 계단 하나하나에 적힌 글이 깊은 울림을 준다. 『“프랑스 청년의 뜨겁고 숭고한 삶의 궤적 / 진정한 군인이 되고 싶었던 34년의 짧은 삶을 마감한 쥴·쟝 루이의 생애 / 우리들은 그를 살아 있는 성인이라 불렀다. / 삶과 죽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교차하는 이 험난한 전쟁터에서 / 쥴·쟝 루이는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 11년간 총 대신 의약 가방을 메고 전쟁터를 전전하며 살아온 시간 / “전우들을 두고 나만 갈 수는 없다. 그들을 치료해 주어야 한다.” / “돌봐야 할 부상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 혼자 어떻게 철수할 수 있는가?” / 그리고 이제 그는 안식처를 찾아 떠난다. 70여 년 전 그가 짧은 생을 불태우고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중랑구 협의회(회장 차천문)는 협의회 임원 워크숍의 중요 일정 중의 하나로 오는 13일에 11월 11일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을 맞아 쥴·쟝 루이 공원을 들러 추모(追慕)한다.

유엔 참전국인 프랑스는 전투지원 육․해군 연인원 3,421명이 참전(1,289명, 전사 / 사망 262명, 부상 1,008명, 실종 7명, 포로 12명)이다.

줄 장-루이(JULES JEAN-LOUIS, 1917∼1951) 소령은 누구인가.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2018년 6월 한국 전쟁 참전 유엔군 프랑스 대대의 기록을 담아 「한국전쟁 참전 유엔 프랑스 대대 전적지(Lieux de mémoire du Bataillon français de l’ONU en Corée」를 소개하는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를 중심으로 필자는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이 글을 썼음을 밝힌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한국 전쟁 참전 유엔군 프랑스 대대 전적지 책자 발간 - La France en Corée - Ambassade de France à Séoul (ambafrance.org), Untitled (ambafrance.org)」.

“... 1951년 4월 말, 중공군은 재정비하고 공격을 재개한다. 중공군은 수적으로 우세했다. 그리고 산악지대 침투를 통해 유엔군에게 큰 패배를 안겨주려 했다. 프랑스 대대의 군의관이었던 줄 장-루이 소령은 2명의 한국인 병사를 구하려다 지뢰를 밟아 1951년 5월 8일 산화한다. (p.49)“

줄 장-루이 소령은 1916년 10월 28일 프랑스 남부 Sanary-sur-Mer(Alpes-Maritimes)에서 출생하여 1933년 프랑스 Lyon에 있는 군 보건대학(l’École de santé militaire)에 입학했고 1939년 6월에 뇌척수막염과 수술적 치료에 대한 연구에 기여한 논문을 가지고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39 ~1940년 전투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1946~1947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복무한 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6·25전쟁 발발 후 자유 수호를 위해 그해 11월 26일 유엔군 프랑스 대대에 합류하였다.

그는 프랑스군이 중공군 및 북한군을 무찌르고 뛰어난 전공을 세운 남성리와 지평리 전투, 1037고지 전투를 포함한 5개 전투에 프랑스 대대 초반 전투부터 현장에서 프랑스군 이동병원 의무대장으로서 숱한 부상병 치료는 물론 1951년 두촌면 자은3리 속칭 외후동길에 주둔하면서 활발한 대민 진료 활동에 앞장서 숭고한 인도주의 희생정신의 정신을 보였다「홍천에 있는 장루이 군의관 기념비 (editions-spm.fr)」.

특히 1037고지는 프랑스 대대가 4번째 군단 표창을 받은 전투이기도 하다. 2010년 5월 27일, 치악산 국립공원의 북동쪽, 원주로부터 약 20km 떨어진 곳에 1037 고지 참전 기념비가 세워졌다. 수풀이 우거진 등산로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며, 42번 국도의 문제 터널 동쪽 출구 위에 위치한 고속도로 출구로부터 2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는 지점에 있다. 접근이 어려운 이 기념비는 프랑스 대대가 참전했던 1037고지 전투가 얼마나 열악한 여건에서 펼쳐졌는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는 1951년 5월 8일, 인근 마을 환자를 치료하고 프랑스대대로 돌아오던 길에 지뢰를 밟은 한국군 5사단 소속 장병 2명을 발견하고 심각한 출혈로 생사가 오가는 한국군 부상병을 본인이 직접 지뢰밭의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구출하고 나오던 중 자신은 중공군이 매설한 지뢰를 밟아 다리 한쪽을 잃고 얼굴에 상처를 입은 후에도 장-루이 소령은 “한국인 2명을 잘 치료해 주시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34세의 꽃다운 한창 젊은 나이에 이국땅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줄 장-루이 소령 추모비「장-루이 소령 전신 동상(像)」건립과 추모 공원 조성은 낯선 이국땅에서 자유 수호를 위해 일신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줄 장-루이 소령의 숭고한 희생과 넋을 기리고 그 박애 정신을 후세에 전함은 물론 양국 간의 우호 증진을 위하여 한국·프랑스 수교 100주년이자 고인의 전사 35주기였던 지난 1986년 10월 25일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지뢰가 폭발했던 곳에서 가까운 전사지(戰死地), 홍천으로부터 북동쪽으로 20km 떨어진 지점인 꽃부리 모양을 한 받침돌 위에 거룩한 희생정신을 본받고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온전히 대한민국 정부의 자금으로 건립했다. 쥴·장루이 소령 동상은 국가수호 관련 현충시설물(16-2-35)로 지정되어 있다.

2m 높이 기단 위에 세워진 줄 장-루이 소령의 동상(높이 2.2m)은 베레모를 쓰고 수통과 탄띠를 착용한 채 어깨에는 구급용 배낭을 멘 늠름한 모습이다.

홍천군은 2004년부터 줄 장-루이 소령이 사망한 전날인 5월 7일, 줄 장-루이 소령의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추념식을 지역 대표와 프랑스 대표들이 참석하여 매년 개최(2023년 5월 7일은 한불수교 137주년, “쥴·장루이 소령 72주년 추념식” 홍천문화원 주최 주관으로 개최)하고 있다. 홍천군은 1986년 10월 30일 줄 장-루이 소령의 고향이자 그가 묻힌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사나리-쉬르-메르 지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지역(Sanary-sur-Mer Commune, Provence-Alpes-Cote d'Azur Region)”과 자매결연을 맺어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강원서부보훈지청 - 강원서부보훈지청 - 서울지방청(서울,경기,강원) - 지(방)청소개 - 국가보훈부 (mpva.go.kr), 줄·장루이소령 상 현충시설정보서비스 (mpva.go.kr), Sanary-sur-mer 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sanarysurmer.com), 자매(상세) | 지자체별 | 국제교류현황 | 지방외교 |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gaok.or.kr). 쥴장루이 공원 상세페이지 - 관광명소 - 홍천관광 - 홍천군 문화관광포털 (hongcheon.go.kr)」.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지난 4월 16일 새로 지은 고층 타워 동(棟)과 갤러리 동에 각각 6·25전쟁 당시 중장에서 중령으로 계급을 낮춰 유엔군 프랑스 대대를 지휘한 한국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랄프 몽클라르(1892∼1964) 장군의 ‘몽클라르 관’과 6·25전쟁 참전용사로 한국에서 전사한 줄 장-루이(1917∼1951) 소령의 ‘장루이 관’이란 이름을 붙이고 두 건물을 6·25전쟁 프랑스군 참전용사들에 헌정했다.

프랑스 정부는 줄 장-루이 소령에게 십자 훈장을 추서했으며 프랑스 내 프레주스의 식민지 군 병원(L'hôpital militaire colonial de Fréjus)을 ‘장루이 군사 병원(Hôpital militaire Jean Louis)’으로 개명하는 등 고국 프랑스에서도 그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프랑스대대 부상자뿐 아니라 한국 주민들의 진료에도 성심을 다한 장-루이 소령의 헌신은 깊은 감명을 남겼다. 자유를 위한 그의 영웅적인 희생과 그가 임무 수행, 특히 대대의 진격 중에 마주친 민간인을 위해 구현한 인도주의적 이상은 한국 국민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이미지데팡스(Défense) - 프레쥐(Fréjus)의 식민지 시대 군 병원. (imagesdefense.gouv.fr), Jules Jean-Louis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쥴 장 루이 소령상<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지역N문화 테마 (nculture.org) 」.

▶ 재한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 묘지로서,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 묘지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유엔군과 그 이후 작고한 참전 유엔군이 안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였으며,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하였다.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하였다. 1955년 12월 15일, 한국 정부로부터 국회의 결의 사항을 전달받은 유엔은 이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문 제977(X)호를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1959년 11월, 유엔과 대한민국 간에 “재한 국제연합 기념묘지 설치 및 유지를 위한 유엔과 대한민국간의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의 희생을 기리고 '평화와 자유'라는 대의를 높이고자, '유엔 기념 묘지'이자 성지로서 출발하게 되었다.

그 후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 언커크)에 의해 관리되었으나, 1974년 UNCURK가 해체됨에 따라, 관리업무가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 관리위원회(Commission for the UNMCK)에 위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난 2001년 유엔기념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한 본 공원에는 참전국이 설치한 기념비와 기념관, 추모관, 추모명비, 위령탑 등이 소재하고 있다.

평화와 자유의 수호, 유엔의 이상 실현을 위해 머나먼 이국에서 헌신하고 봉사한 고인들의 숭고한 희생 정신을 기리고 그분들의 명예를 존중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께서는 항상 경건한 마음가짐과 태도로 임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UNMCK 재한유엔기념공원」.

▶ 호국의 전당, 전쟁기념관은 전쟁기념사업회법 제5조(사업) ①에 따라 같은 법 제1조(목적)의 전쟁에 관한 자료를 수집ㆍ보존하고, 전쟁의 교훈을 통하여 전쟁 예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한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한다. 전쟁기념사업회는 전쟁의 교훈을 제대로 알도록 하여,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우리 대한민국이 전쟁을 예방하고 통일을 성공적으로 준비하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소임을 다하고 있다「전쟁기념사업회 전쟁기념관 (warmemo.or.kr), 전쟁기념사업회 전쟁기념관 > 전시> 상설전시> 호국추모실 (warmemo.or.kr), 전쟁기념사업회 전쟁기념관 > 전시> 상설전시> 6·25전쟁실Ⅰ (warmemo.or.kr), 전쟁기념사업회 전쟁기념관 > 전시> 상설전시> 6·25전쟁실Ⅱ (warmemo.or.kr), 전쟁기념사업회 전쟁기념관 > 전시> 상설전시> 6·25전쟁실Ⅲ(유엔실) (warmemo.or.kr)」.

● 미국 등 국외 현충 기념(추모)시설

미국 워싱턴 디시(D.C.)를 포함한 영국 런던, 캐나다 오타와 등 참전 22개국 주요 도시에서도 UN 참전국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 등 기념시설물들은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으며, 대체로 ① 추모의 비문, ② 자국의 상징 마크와 한국의 상징물(태극기·무궁화·다보탑·거북선 등), ③ UN의 이상과 평화 사도로서의 신성한 임무 , ④ 조국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 ⑤ 신성한 인류애와 “잊지 않도록 기억하라” 등의 상징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상징적 의미는 UN군으로서 한국전쟁에 참여한 사실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사심 없는 희생으로 기억한다.”는 것으로 압축되어 있다. 

미국은 전투지원 육․해․공군 연인원 1,789,000명이 참전(133,996명, 전사/사망 33,686명, 부상 92,134 명, 실종 3,737명, 포로 4,439명)이다「UN평화기념관 방문을 환영합니다. 국외 페이지 입니다. (unpm.or.kr)」.

▶ 한국 전쟁 참전 용사 기념관(Korean War Veterans Memorial /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은 미국 컬럼비아 특별구 워싱턴 DC의 중심부에 위치한 내셔널 몰 & 추모 공원(National Mall & Memorial Parks)에서 가장 감동적인 광경 중 하나이다「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미국 국립공원관리공단) (nps.gov),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 – 명예, 교육, 영감 (koreanwarvetsmemorial.org),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 – 명예, 교육, 영감 (koreanwarvetsmemorial.org)」.

한국 전쟁 참전 용사 기념관에 들어서면 자유의 대가 “여러분 앞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이 서 있다. 178만 9천 명의 미국인 남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들은 한국과 다른 유엔군과 함께 싸웠다. 이들은 함께 격렬한 전투와 가혹한 환경, 그리고 고향을 떠나 여러 달을 견뎌냈다.

그 안에 곡선 추모의 벽이 자리 잡고 있다. 전쟁의 인명 피해를 목격한 36,000명 이상의 미국인과 7,100명 이상의 미국인 중에서 주미한국증원회원, 전투 중에 전사한 카투사(KATUSA)·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간 한국전쟁 동안 한국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36,634명의 미군(미군 29,857명, 미 해병대 4,522명, 미 해군 668명, 공군 1,587명), 주한 미군 증강 장병(KATUSA) 7,174명 등 총 43,80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한국 전쟁 참전 용사 기념관 (미국 국립 공원 관리청) (nps.gov),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 – 명예, 교육, 영감 (koreanwarvetsmemorial.org)」.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수백만 명의 미국인과 동맹국의 희생을 추모한 추모의 벽과 19개의 군인 스테인리스 스틸 군인 동상(조각품)은 1950년에 북한의 남침에 대항하여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낯선 나라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광활한 바다를 건너 용감하게 싸웠던 미군, 특히 전사했거나 여전히 실종 상태이거나 전쟁 포로로 억류된 한국 전쟁 당시 참전한 수백만 명의 미국인과 동맹국의 희생을 기리고 현재와 미래의 세대들이 계속 자유를 지키도록 영감을 줌으로써 그들을 기린다.

1995년 7월 27일에 처음 헌정되었고 2022년 7월 27일에 새로운 기능으로 재 헌정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관의 미국 국기인 성조기(星條旗)로 이어지는 삼각형 형태(모양)의 꼭짓점에는 19명의 군인 스테인리스 스틸 동상(stainless steel statues)이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군인 19명의 순찰대가 바람에 펄럭이는 것처럼 보이는 레인 판초(Rain Poncho)를 입고 총, 배낭, 무전기 등 야전 무장 장비를 휴대한 채 관목이 우거진 돌진 숲 주니퍼 덤불(juniper bush, 향나무. 노간주나무) 사이에 화강암 지대로 나누어져 다양한 경계 자세로 순찰 중인 분대를 묘사하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프랭크 게이 로드(Frank Gaylord)가 제작한 실물보다 더 큰 높이가 약 7피트(2m)에 달한다.

19명의 군인 철제 조각상(stainless steel statues)의 순찰대는 육군 14명, 해병 3명, 해군 1명, 공군 1명 등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다양한 군대와 민족적 배경을 대표하는 백인 12명, 아프리카계 미국인 3명, 히스패닉 2명, 동양인 1명, 아메리카 원주민 1명이다.

마치 한국의 논을 혹독한 날씨를 헤쳐 바람 속으로 행군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19명의 군인 조형물은 광택이 나는 화강암 기억의 벽(Wall of Remembrance)에 비치면 모두 38명으로 보이는데 이는 남북한을 가르는 38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19개 군인 조형물 앞의 헌정석(Dedication Stone)에는 “우리나라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국가의 부름에 응답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기린다. 1950-53년 한국("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1950 ▽ KOREA ▽ 1953)”라는 추모의 문구가 새겨진 석판이 놓여 있다.

2022년 7월 27일 헌정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억의 벽(Wall of Remembrance)은 깊이는 얕지만 지름은 9m에 이르며 주위에는 자유의 나무로 불리는 린든나무(보리수 나무, linden tree) 숲으로 둘러싸고 있는 기억의 연못(Pool of Remembrance)을 중심으로 설치된 높이 1m, 둘레 50m의 윤이 나는 검은색 화강암 벽이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재단과 미국과 한국 정부의 공동 노력으로, 이름들은 서비스별로 분류된다. 미군들과 한국 증원군들(KATUSA)의 이름이 기념비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 이름들은 미 육군, 해병대, 해군, 공군 부대의 병과 유형별, 계급별 알파벳 순으로 정렬된 이름은 전쟁의 인명 피해를 시각적으로 강력하게 보여준다「재헌납된 한국 전쟁 기념관, 전몰자 명단 미국 국방부 >> 국방부 뉴스 (defense.gov)」.

기억의 벽과 연못 맞은편에는 또 다른 화강암 벽이 은으로 상감(象嵌)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관용적 표현은 위기의 시기에 희생을 묘사하는 데 수사학적 장치로 사용되며, 자유를 수호한 군대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미국에서 널리 사용된다「재헌납된 한국 전쟁 기념관, 전몰자 명단 미국 국방부 >> 국방부 뉴스 (defense.gov),한국전쟁 기념관 (defense.gov),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미국 국립공원관리공단) (nps.gov)」.

▶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우리의 감사 마음이 담겨 있는 국내외 기념(추모)시설을 검색할 수 있다「유엔 참전국의 국내외 기념시설물, 국가기록원>기록물열람>통합검색>국정분야주제별검색>분야별주제검색 (archives.go.kr) , 국가보훈처, 6·25전쟁 60주년 UN 참전 기념시설물 도감, 2010, 참전기념행사 - 보훈기념행사 - 국가보훈부 (mpva.go.kr), 국가보훈부 현충시설정보서비스 (mpva.go.kr) , 대한민국상이군경회 (kdvo.or.kr), UN평화기념관 (unpm.or.kr), DMZ박물관 네이버 플레이스 (naver.com), 6·25전쟁 소장 자료 https://archives.warmemo.or.kr:8443/pss/media/pssMediaList.do?MID=UM00014&ctgryClfcCd=10&sortOption=&srchKwrd=&listViewTp=&searchOption=&pageIndex=1」.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상처는 모래에 새기고, 은혜는 대리석에 새기라’고 말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서우(瑞雨), 자우(慈雨, 滋雨)라는 말이 있다. 곡물의 생장을 돕는 고마운 비, 오래 가물다가 내리는 단비를 이르는 말이다.

11월 11일, 정전 70주년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맞아 죽은 뒤에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을 이르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기억과 감사의 보훈을 새기며 민주 평화통일을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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