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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33주년, 독일 통일의 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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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23  11: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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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태생 미국의 철학자, 시인, 평론가인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가 1905년에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는 유명한 인용문을 썼을 때, 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냉전이 불과 몇 년 앞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했다. 사람들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조지 산타야나, 이성의 삶(The Life of Reason), 1905년. 서양인의 위대한 아이디어 시리즈에서(From the series Great Ideas of Western Man.).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중랑구협의회(회장 차천문) 자문위원 임원들이 국가수호 현충 시설 쥴·장 루이 소령 상이 있는 쥴·장 루이 공원(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과 자문위원, 통일위원(지역주민), 북한이탈주민 등과 함께 제5군단 사령부(군단장 중장 김성민) 예하 부대가 있는 경기도 포천 타일랜드 참전 기념비, 적멸보궁(寂滅寶宮) 호국 금강사 및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백마고지, 평화 전망대 등 전적지(戰跡地), 안보 현장 견학 그리고 중랑구 국공립 어린이집 연합회(회장 박용기) 원장들이 미국 컬럼비아 특별구 워싱턴 DC의 중심부에 위치한 한국 전쟁 참전 용사 기념관(Korean War Veterans Memorial /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 미국독립의 산실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관, 자유의 종 등 현충 기념(추모) 시설물을 방문하면서 현대 사회가 기억을 문화 도구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공부할 기회를 얻은 것도 통일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그런 의미이다.

홍순철「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중랑구 협의회 고문, 서울 중랑교육발전협의회 회장, 중랑구 교육발전위원회 교육여건개선 분과장, 대한교육신문 논설 주간, 한국문예연수원 교수, (前)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현 이사), 신현고등학교 교장」

 

■ 1990년 10월 3일은 “독일 통일의 날(Tag der Deutschen Einheit, The Day of German Unity/ German Unification Day)”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경의를 표하고 이 기쁨을 전 세계 파트너와 공유하기 위한 독일 국경일이다.

 

1990년 10월 3일, 동독은 서독에서 공식적으로 독일연방공화국에 합류하면서 45년간의 분단을 끝내고 공산주의 독일민주공화국을 해체했다. 독일 통일은 유럽 냉전의 마지막 사건 중 하나로, 동서 분단을 종식하고 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다.

 

1990년 10월 3일 자정, 독일 통일의 깃발이 독일 의회 건물(라이히슈타그 건물) 앞 광장(Platz der Republik)에 처음으로 게양되었다. 이 깃대는 1990년 12월에 도이치 아인헤이트 3(Deutsche Einheit 3.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합(“German Unity 1990”)이라고 쓰인 철판이 달린 금속 기둥으로 대체되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지나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3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1990년까지의 독일 분단(分斷)은 제2차 세계 대전 끝나자, 불확실성의 시기가 지나고 동서 간의 냉전이 임박하자 구 제3제국과 베를린은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소련이 통제하는 4개의 군사 구역으로 나뉘었다. 1949년 5월 23일, 프랑스, 영국, 미국이 통제하던 구역은 입헌 복지 국가라는 서구적 이상을 지향한 독일 연방 공화국(FRG,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서독)이 되었고 1949년 10월 7일, 소련이 통제하던 구역은 소련 모델에 기초한 정치적 적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으로 특징지어지는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의 두 개의 독일 국가가 만들어졌다.  동독에 위치한 수도 베를린도 마찬가지로 분할되었으며, 1961년 소련군은 도시의 서부 점령 지역을 둘러싸는 장벽을 건설하여 동독에서 서베를린으로의 자유로운 여행을 막았다. 냉전 기간 독일의 분단과 베를린 장벽의 존재는 공산주의 세력과 자본주의 세력 사이의 경쟁을 가시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 1961년 8월 13일,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의 베를린 국경이 폐쇄”되었다.

베를린 장벽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유 서방으로 탈출한 후, 동독(GDR)은 1961년 베를린을 통과하는 장벽을 세웠고 독일 국경을 따라 요새화된 “죽음의 거리(death strip)”를 건설했다.

 

 동독에 위치한 수도 베를린도 마찬가지로 분할되었으며, 1961년 소련군은 도시의 서부 점령 지역을 둘러싸는 장벽을 건설하여 동독에서 서베를린으로의 자유로운 여행을 막았다. 냉전 기간 독일의 분단(分斷)과 베를린 장벽의 존재는 공산주의 세력과 자본주의 세력 사이의 경쟁을 가시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1961년 8월 13일부터 시작된 국경 봉쇄는 특히 베를린 베딩(Wedding) 지구와 미테(Mitte) 지구(예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었던 구이다. 미테구는 베를린의 역사적 중심 지역) 경계에 있는 베르나우어 슈트라세(Bernauer Straße)에 사는 사람들 일상생활의 극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하루가 멀다고 그들은 더 이상 자기 동네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고, 이웃과 친구, 친척들은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길 건너편에 있는 집은 갑자기 또 다른 정치 체제의 일부가 되었다. 동독 사람들은 자유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었고,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서독으로 여행할 수도 없었다. 많은 가족이 독일의 “다른 독일”에 친척과 친구들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분단된 나라에서 심각한 제한으로 느껴졌다.

 

자기 잘못이 아니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베르나우어 슈트라세(Bernauer Strasse) 시민들은 베를린에서 전후 독일 역사의 한 에피소드를 목격하고 배우가 되었다. 필사적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서베를린 접경 아파트의 창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베르나우어 슈트라세의 탈출 시도 중 일부는 성공했다「베를린 장벽 재단 베르나우어 슈트라세 (stiftung-berliner-mauer.de), 베를린 주 Bernauer Strasse의 베를린 장벽 기념관 – Berlin.de」.

 

1989년, 개혁의 원동력이 동유럽 전역을 휩쓸었고 독일 내에서 분단된 국가를 종식하려는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수년간의 갈등과 독일 국가 간의 접근 시도 끝에 1989년 9월 4일에 동독의 도시 라이프치히(Leipzig) 시민들은 DDR 정부에 정치 개혁과 국경 개방을 요구하며 월요시위(the Monday Demonstrations)를 시작으로 GDR과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평화혁명(peaceful revolution)”은 독일 민족 통일 회복의 토대를 마련했다.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자신의 정부가 동유럽 위성 국가의 공산주의 정부 붕괴를 막기 위해 개입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후 헝가리와 폴란드 전역에 개혁이 휩쓸렸다. 소련의 개혁「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 “새로운 사상” 정책(Mikhail Gorbachev’s policy of glasnost, perestroika and “new thinking”)」을 배경으로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지도부의 거부를 배경으로, 동독인의 탈출, 대규모 시위가 격화됐다. 미 국무부에서 밝힌 짧은 역사(A SHORT HISTORY OF THE DEPARTMENT OF STATE)에 따르면, 독일민주공화국(GDR) 지도부의 변화와 동유럽에 대한 불개입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격려 연설이 통일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 부다페스트 출생 역사가, 저널리스트 빅터 세베스티엔(Victor Sebestyen)가 써서 2009년에 발행한 1989 혁명(Revolution 1989), 그의 두 번째 작품으로 소비에트 제국의 몰락에 대한 극찬을 받은 작품에도 이 내용을 담고 있다「미국외교협회 혁명 1989 : 빅터 Sebestyen : 무료 다운로드, 대여 및 스트리밍 : 인터넷 아카이브 (archive.org), 베를린 주의 베를린 장벽 - Berlin.de」.

 

□ 자유는 독일의 두 지역 모두에게 현실이 되었다. 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독일 통일의 길이 열렸다. 11개월 후인 1990년 10월 3일을 국경일로 선포한 통일조약은 독일의 분단을 종식했다.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the Berlin Wall)의 붕괴(fall)는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였으며,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해체와 13개월 후인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는 사임했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해체(the dissolution of the Warsaw Pact and the breakup of the Soviet Union)로 이어졌다. 이는 독일 연방 공화국의 번영과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상징적 절정에 이른 독일 통일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의미했다「독일 통일의 날 | 독일의 국경일 (deutschland.de),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해체 - 짧은 역사 - 학과 연혁 - 역사학자 사무실 (state.gov)」.

 

국제적 차원에서 통일은 독일의 동맹국들, 무엇보다도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0년 9월 12일, 두 독일 정부와 프랑스, 영국, 미국, 미국의 외무장관들은 베를린과 독일 전체에 대한 4강의 권리와 책임을 종료하는 독일에 대한 최종 해결에 관한 조약「“2+4 조약”(Treaty on the Final Settlement with Respect to Germany(“Two Plus Four Treaty”」을 서명함으로써 통일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 안에서 소련이 통제하던 구역으로 소련 모델에 기초한 정치적 적들에 대한 주민들이 악명 높은 동독 비밀경찰인 슈타지(Staatssicherheit)의 철저한 감시를 받은 가혹한 탄압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주의 독재 체제를 갖는 구독일 민주공화국(GDR, 동독,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 DDR,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은 국가 주권을 포기하고  공식적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이 통제하던 구역으로 입헌 복지 국가라는 서구적 이상을 지향한 독일 연방공화국(FRG, 서독,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에 통합(가입)했다.

 

독일 통일 수립에 관한 독일 연방 공화국과 독일 민주 공화국 간의 조약 (gesetze-im-internet.de) (통일조약)」에 따라 동독은 1990년 10월 3일 발효되는 기본법 적용 영토에 가입하기로 합의했다. 동시에 통일조약 제1장 2조 2항에 따라 10월 3일은 독일 통일의 날로 알려진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통일조약 전문(前文)에는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 법치주의, 민주적, 사회적 연방국에서 평화와 자유 속에서 함께 살고자 하는 독일 양국 국민의 열망에 기초하여, 자유로운 자결권에 있어서 국제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평화와 자유에 대한 독일의 통일을 완성할 것을 결의한다. 자유의 돌파구를 평화적으로 도운 이들, 독일의 통일 수립이라는 과업을 굳건히 견지하고 완성하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독일 역사의 연속성을 의식하고, 인권과 평화의 존중을 위해 헌신하는 독일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 과거로부터 비롯된 특별한 책임을 명심하며, 독일의 단결을 통해 유럽의 통일과 국경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모든 유럽 국민이 신뢰의 정신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럽 평화 질서의 수립에 기여하기를 열망하며, 국경의 불가침성과 국경 내 유럽의 모든 국가의 영토 보전과 주권이 평화의 기본 조건임을 인식하고, 독일 통일 수립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하되 다음과 같은 조항을 포함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독일 연방 법무부(Bundesministerium der Justiz)」.

 

이 조치는 1989년 9월 4일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월요일 시위로 시작되어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상징적인 절정에 달했던 독일 통일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의미했다.

 

□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의 평화로운 통일은 위대한 비전과 이를 실천하려는 용기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빛나는 예이다. 이는 또한 민주적 과정의 힘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해체 - 짧은 역사 - 학과 연혁 - 역사학자 사무실 (state.gov)」.

 

독일 통일의 날에는 1990년 역사적인 독일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공화국 광장(Platz der Republik)과 6월 17일의 거리(Straße des 17. Juni, 1953년 6월 17일 동독에서 일어난 봉기를 가리킨다.) 및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동독이나 서독 사람들이 방문할 수 없는 제한 구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벽이 무너진 후 문은 독일 통합의 상징이 되었다.) 주변에서 축제가 열린다. 이 지역에서는 다양한 무대에서 라이브 밴드가 공연하고 가판대에서는 음식, 음료 및 과자를 판매한다. 음악가, 코미디언, 시 낭송가, 배우들이 축제에서 자신의 예술을 선보인다.

 

이에는 스판다우 시타델(Spandau Citadel)의 중세 곡예사 축제(Medieval Juggler Festival), 클럽 문화의 날(Tag der Clubkultur), 베를린 가을 카니발(Berlin Autumn Carnival) 등을 연다 「베를린 공식 홈페이지 독일 통일의 날 기념 행사 – Berlin.de,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통일의 날 – Berlin.de Berlin.de, 독일 통일의 날 | 함부르크 02.-03.10.2023 (tag-der-deutschen-einheit.de)」.

 

베를린 장벽은 통일 베를린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전 국경 시설의 유적과 흔적은 후세를 위해 보존되고 있으며, 기념관이 세워졌으며, 베를린 장벽 트레일을 통해 베를린 장벽의 옛 코스를 도보나 자전거로 탐험할 수 있다 「베를린 장벽 - Berlin.de, Bernauer Strasse의 베를린 장벽 기념관 – Berlin.de」.

 

독일 통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의 기념비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다.

 

1989년 11월 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이 통일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23년 10월 3일은 독일 통일 33주년을 맞았다. 공식적인 통일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통일에는 몇 세대가 걸렸다. 그러나 그들은 해 내었다.

 

독일 통일 후 33년이 지난 지금, 독일 분단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지만, 동독과 서독은 한 나라 되어 많은 면에서 함께 성장해 왔다. 통일된 독일은 평화와 안보, 유럽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인권과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국제사회에서 헌신하고 있다.

 

통일은 가장 불리한 조건에서도 희망을 상징한다. 미래는 본질적으로 열려 있다. 분단과 자유민주 통일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한 안보현장 체험은 6.25 한국전쟁 이전에 태어난 필자로서는 감회가 깊다.

 

통일의 그날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중랑구협의회의 역할은 너무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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