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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명하게 사는가. 지혜롭게 사는가. 만족하며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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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2.21  10: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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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명하게 사는가. 지혜롭게 사는가. 만족하며 사는가.

- 현명(賢明)은 무엇을 올바르게 깨닫고 판단함, 어질고 슬기로워 사리에 밝음을 뜻하고 지혜(智慧·知慧)는 지식과 이해, 경험, 상식 및 통찰력을 사용하여 올바른(신중한) 결정과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며 만족(滿足)은 마음에 흡족함, 심만의족(心滿意足)을 이르는 말이다.

- 오경(五經)의 하나인 <주역(周易)> 49 택화(澤火) 혁괘(革卦)의 상육효(上六爻)의 효사(爻辭)에는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 소인혁면(小人革面)’이란 말이 있다. 큰 사람은 변화의 추진력이 있어야 하고, 작은 사람은 마음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고, 군자는 양심을 지켜야 한다. 이는 현명한 지도자는 좋은 판단력, 상식, 겸손, 자기 인식 및 목적을 가진다는 말일 게다.

  ●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이자 수필가, 대학 교수였던 이당 안병욱이 쓴 서예 글에서 “이 세상(世上)에서 가장 현명(賢明)한 사람이 누구냐. 모든 사람한데서 배우는 사람이다. / 이 세상에서 가장 강(強)한 사람이 누구냐. 자기(自己)가 자기와 싸워 이기는 사람이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富裕)한 사람이 누구냐.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滿足)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 세상(世上)에서 가장 현명(賢明)한 사람이 누구냐. 모든 사람한테서 배우는 사람(시편 119:99) 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에게나 지혜를 구한다는 말이다.

△ 철학자 이당 안병욱이 쓴 서예 글은 미국에 사는 나의 지우(知友) 박찬옥(심 헬레나)의 단톡에서 따옴

탈무드 시대의 현자들이 쓴 고전적인 윤리 지침서인 피르케이 아보트(Perkei Avot, 교부의 장)의 미슈나「Mishnah, 탈무드(Talmud)의 제1부를 구성하는 유대교의 불성문율집(不成文律集)」의 네 번째 장에서 유대인 성경의 해석자로 유명한 랍비 교사 벤 조마(Rabbinic teacher Ben Zoma)는 자문자답(自問自答)한다. 미슈나는 지식이나 논리나 지성보다는 지혜를 먼저 말한다

그는 “나는 나를 가르친 모든 사람에게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현명하게 자랐다. 명철(名哲)을 얻었다.”라는 말처럼 다양한 공동체인 동료, 친구, 가족, 이웃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각 사람은 창조주가 그에게 부여한 어떤 영역에서 특별한 재능이나 뛰어난 지각력의 은사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비록 이 사람이 다른 문제가 무지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이 사람에게서 배우고 그를 완전한 무식자로 배척하지 않는다면 현명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각 사람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 어떤 사람도 가르칠 것이 없다고 버려져서는 안 된다.”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서 子曰, 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자왈, 삼인행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공자는 말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그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기 잘못을 고쳐야 한다.”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말. 세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 三人(삼인)은 나보다 나은 사람, 나보다 못한 사람 그리고 나 자신

성경 잠언 12장 15절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길은 자기 눈에는 옳지만, 현명한 사람은 조언을 듣는다.” 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우문우답(愚問愚答)이라 하여 보기에 우문(愚問) 같아도 현명하게 대답하면 현문(賢問)이 되나니, 말에 걸려들지 말 것이라 한다. 또, 택멸무위(擇滅無爲)라 하여 간택(簡擇, 현명한 판단, 곧 선택)하고 판정하는 지혜의 힘으로 얻은 변화(爲)를 끊어서 없앤(無) 진리이다. 이는 잃고 얻음과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미혹(迷惑)을 쓸어서 없애고 지혜를 성취한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살아 있는 사람 중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한 가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I am the wisest man alive, for I know one thing, and that is that I know nothing.). 이는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고, 평범한 사람은 자기 경험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을 더 잘 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배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말한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은 줄 안다”는 말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했을까.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분명히 똑똑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배우거나, 조언을 구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가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여 점점 더 현명해진다.

지혜는 겸손을 통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사람의 것이다.

현자들은 지혜의 열쇠는 겸손이며, 지혜에 대한 우리의 잠재력을 가로막는 한 가지는 오만이라고 가르친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도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항상 겸손을 유지하고 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한다. 모든 것을 아는 태도는 많은 사람의 성공을 방해할 수 있는 태도이지만, 사람은 자신이 충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전문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괜찮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라이프스타일(Life Style)’에 적응해야 할 것인가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생활 방식에 빠질 수 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강(強)한 사람이 누구냐. 자기(自己)가 자기와 싸워 이기는 사람(잠언 16:32)이다.

※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사전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에서는 이기는 자는 무언가를 극복하는 사람, 어떤 문제나 어려움을 다루거나 통제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기는 자는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가 마음을 주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충동을 가라앉히는 사람, 노여움을 더디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의 악한 성향을 억제하는 사람,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진정한 힘은 내적인 현상이다. 이는 분노, 질투, 자부심, 욕정, 옹졸함에 대한 내면의 싸움이다. 진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에너지를 하나의 파괴적인 폭발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고, 건설하고, 절약할 수 있는 통제력과 방향성을 가지고 그들의 내면 힘을 방출할 수 있다. 

자기 생각을 통제하고, 목표에 집중하고, 자신을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더 높은 목표를 향한 승리를 위한 더 넓은 길을 만들 수 있는 작은 것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음을 안다.

자신다운 생활 방식을 되찾으면 자유, 해방감, 충실감, 성취감, 책임감, 자타의 존중, 공헌의 정신 등을 얻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상은 우리 행위의 가치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인식이다.

이는 본래의 자신다운 삶을 발견해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성장하란 말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우리가 한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나의 업적이 진정으로 위대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때 더 커지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근시안적이어서 자신의 위대함을 볼 수 없다면 줄어들지 않는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자기의 부정적인 성향을 정복하는 사람이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을 파악한 다음 도전해야 한다.

우리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일반적인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의 기복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의 자존감이 낮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또한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富裕)한 사람이 누구냐.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滿足)하는 사람(시편 128:2)이다.

행복은 자신이 가진 것을 기뻐하는 기술이다. 불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집중하는 기술이다.

교부의 장(피르케이 아보트, Perkei Avot)은 “부자는 누구인가.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사람들이 물질적 부로부터 기대하는 주된 유익, 즉 부족함이 전혀 없다는 느낌,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인식, 안정감과 독립심에서 오는 평온한 느낌을 누리는 것을 참으로 얻게 된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정말 부자이다.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최고의 교양인, 사상가, 철학자, 정치인인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인생의 가치는 날의 길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는 데 있다. 인생에서 만족을 찾느냐는 당신의 세월이 아니라 당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프랑스 고전 문학 시대 작가, 모럴리스트인 프랑수아 라 로슈푸코(François de La Rochefoucauld)는 “우리 자신 안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을 때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 행복은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쏟는 노력의 함수이다.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상은 우리 행위의 가치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인식이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결국 만족한 삶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달려 있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상황에 맞는 결정을 내리고 행동 방침을 결정하고 어떤 선택을 할 때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한다. 우리 중 누구도 진공 상태에 살지 않기 때문에 커뮤니티, 연결 및 주변의 다리를 고려하는 이 능력이 중요하다.

불교 용어로 흔들림이 없는 지혜와 깨달음의 경지인 반야삼매(般若三昧)의 혜안으로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 이 경지에서 바른 지혜를 얻고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게 된다는 말이다.

철학자 이당(怡堂) 안병욱이 말했던 삶은 산다는 건 길을 가는 것으로 ‘생즉도(生卽道)’였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참되고 성실한 마음과 뜻을 다하여 열심히 가야 하는 것이 인생을 사는 대원칙이라는 교훈은 그 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글 : 홍순철 「서울 중랑교육발전협의회 회장, 중랑구 교육발전위원회 교육여건개선 분과장, 대한교육신문 논설 주간, 한국문예연수원 교수, 칼럼니스트, 국민비전 수석부의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중랑구 협의회 고문, (前) 학교법인 송곡학원 이사장(현 이사), 청소년단체 세계도덕재무장 한국본부(MRA/IC) 서울 총회장, 신현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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