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2016. 4. 13. 치러질 예정이다. 공직선거법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자치선거의 선거일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고, 국회의원의 경우에는 ‘그 임기만료일전 5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에 치르도록 하고 있다(공직선거법 제34조 제1항 제2호). 이와 같이 선거일을 미리 법률의 규정에 의해서 특정하는 것은 각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선거일이 결정되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를 갖는다. 선거제도의 안정성과 형평성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 2015. 4. 13. 치러질 국회의원 총선거의 연기론이 제기되면서 갑론을박이 거듭되고 있다. 그 배경과 타당성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시작은 선거구획정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90여일 남겨둔 상황에서도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선거구 획정은 선거에 출마하려는 자가 어느 선거구에 출마할 것인지, 당해 선거구에서 어떠한 공약을 개발하여 주민들에게 다가갈 것인지, 법에서 정해진 선거운동을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은 선거구 획정의 공정성과 신속성, 그리고 예측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다. 즉, 공직선거법 제24조에서는 국회의원선거구 획정위원회에 관하여, 같은법 제24조의 2에서는 국회의원지역선거구 확정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공직선거법 제24조에서는, 국회의원지역선거구의 공정한 획정을 위하여 임기만료에 따른 국회의원선거의 선거일 전 18개월부터 해당 국회의원선거에 적용되는 국회의원지역선거구의 명칭과 그 구역이 확정되어 효력을 발생하는 날까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를 설치·운영하여야 하며(제1항),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두되, 직무에 관하여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제2항).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 선거구획정안과 그 이유 및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보고서를 임기만료에 따른 국회의원선거의 선거일 전 13개월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제11항). 다음으로 공직선거법 제제24조의2에서는, 국회는 국회의원지역선거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하고(제1항), 국회의장은 제24조제11항에 따라 제출된 선거구획정안을 위원회에 회부하여야 하며(제2항), 제2항에 따라 선거구획정안을 회부받은 위원회는 이를 지체 없이 심사하여 국회의원지역선거구의 명칭과 그 구역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는 법률안을 제안하여야 하고, 이 경우 위원회는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출한 선거구획정안을 그대로 반영하되, 선거구획정안이 제25조제1항의 기준에 명백하게 위반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그 이유를 붙여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에 선거구획정안을 다시 제출하여 줄 것을 한 차례만 요구할 수 있으며(제3항), 제3항에 따른 요구를 받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그 요구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새로이 선거구획정안을 마련하여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하고, 이 경우 선거구획정안의 위원회 회부에 관하여는 제2항을 준용하며(제4항), 국회의장은 선거구법률안 또는 선거구법률안이 포함된 법률안이 제안된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이를 부의하여야 한다. 또한 본회의는 선거구법률안 또는 선거구법률안이 포함된 법률안을 수정 없이 바로 표결한다(제6항)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위 법규정에 따를 경우 선거구 획정위원회는 2014. 11. 13.부터 설치, 운영하여야 하며,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015. 3. 13.까지 선거구획정안과 그 이유 및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보고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위 일정을 지키지 못하자 급하게 법률 제2015. 6. 19. 법률 제13334호로 개정된 공직선거법을 마련하였고, 개정법 부칙 제2조에서는 2016년 4월 13일 실시하는 국회의원선거와 관련해서는 위 공직선거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 개정법 시행일부터 30일 이내에 설치하면 되도록 하고 있으며,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선거구획정안을 선거일 전 6개월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여도 되고, 국회는 선거일 전 5개월까지 국회의원지역선거구를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 위 부칙규정에 따라서 선거관리위원회는 2015. 7. 여야 각 4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인을 추천받아 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하여 활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위 부칙규정에 의하더라도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015. 10. 13.까지 선거구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하며, 국회는 2015. 11. 13.까지 국회의원지역선거구를 확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역구수와 획정기준 등을 자체적으로 정하여 수십차례 회의를 통하여 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해서 노력하였지만 획정위원의 구성에 있어서 여야 동수로 추천되어 그 대립이 팽팽하게 맞섰고, 또한 재적위원 2/3 이상을 의결요건으로 하는 의사결정구조의 한계까지 더해져 한발자욱도 나서지 못하면서 획정이위원회가 획정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그 이후 국회의장이 선거구획정안을 직권으로 상정하고 논의를 하였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구획정위원장과 일부 획정위원이 사퇴를 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도 선거일 90일을 남겨둔 상태에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회는 공직선거법에 위반하지 않기 위하여 꼼수를 부려 법률개정을 통해서 부칙을 마련하였지만 그 개정 법률마저 지키지 못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적 제도인 선거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선거제도에서 선거구 획정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세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공직선거법은 정치신인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가능하면 기존에 활동해 왔던 정치인들과 차별받지 않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제도를 개선해 왔다. 이런 취지에서 예비후보 제도를 마련하여 선거운동기간이 아니라도 예비후보의 지위를 인정하여 일정한 범위 내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비후보 제도는 획정된 선거구를 전제로 하여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만일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면 어느 지역으로 출마할 것인지, 누구를 상대로 선거운동을 할 것인지, 해당지역에 대한 선거공약은 어떤 것을 내세울 것인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선거구가 늦게 획정될 경우 정치신인에게는 그만큼 불리하게 작용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출마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정치신인을 중심으로 2016. 4. 13. 치러질 예정인 국회의원 총선거를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선거를 90일 앞둔 지금까지도 선구가 획정되지 않아 출마지역을 확정하지 못한 것은 물론 선거운동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선거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다. 최소한 헌법적 가치를 부여해서 만들어진 예비후보의 선거운동이 보장되어야 할 터인데 그러한 기회마저 박탈되어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이유다. 급기야 일부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일부 정치세력이 공개적으로 선거연기론을 들고 나오자 거대정당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벌떼처럼 합세해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들 정당이 반대론으로 내세우는 근거는 분명하다. 선거일은 정파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도록 이미 법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위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법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선거구획정에 대하여는 법에 따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답할 차례다. 또한 대외 신인도를 하락시키는 무책임한 주장으로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을 하면서 선거연기를 반대한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선거구획정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세력들이 대외 신인도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자신들 정파의 이익 때문에 지나친 대립을 가져오고,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할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구성을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내세워 정파의 이익을 반영하려다보니까 결국은 독립성이 훼손되어 교착상태에 빠졌는데도 말이다. 대화와 타협과, 그리고 상호 양보를 통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정당의 역할인데 그러한 기본적 역할마저 하지 못하는 정당들 때문에 오히려 대한민국의 대외 신인도가 하락한 것 아닌가?

결국 거대정당들이 선거연기론을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선거연기를 반대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새로이 창당될 정당에게 시간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속셈이 깔려있는 것이다. 선거연기론을 반대하는 거대 정당들이 어떠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모두 자신들에게 칼날이 되어서 돌아오는 이야기들뿐이다. 대한민국이 선거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국가라면, 국회가 여러 정파들이 모여서 토론의 장을 만들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 장이라면, 국민 누구나 선거에 참여할 수 있고 공정하게 선거를 치르도록 하려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공고히 하면서 새로이 진입하는 사람들에게 차단벽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선거는 연기되어야 한다. 이미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여야의 거대정당들이 선거를 연기하는 것이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너무 궁색하다. 거대정당들이 선거연기를 반대한다면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에서 고의적으로 선거구획정을 미루고 있다는 국민적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