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발행 2016-08-16 07:18:00
수정 2016-08-16 0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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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타박했다. ‘비하하는 신조어’가 무엇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언론은 일제히 ‘헬조선’을 지목했다. “한국산 철강, 자동차, 선박, 스마트폰, K-POP” 등 외국에서는 한국을 다 알아주는데 우리 내부에서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는 것이 박 대통령의 화를 북돋운 모양이다.
‘헬조선’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느낀 청년들이 만든 세태풍자어다. 청년들은 개인의 좌절이 사회구조적 모순에 따른 것임을 깨닫는 데에 별도의 학습이 필요치 않았다. 입시, 알바, 취업, 결혼, 출산, 주거 등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재력 있는 부모 밑이 아니라면 겪어야할 고통이 ‘이 나라는 지옥 같다’는 강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희망의 사다리는 금수저들에게 걷어차이고, 계층상승의 기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헬조선’을 지난 몇 년 간 이 나라 최고의 유행어로 키운 것이다.
이 말이 박 대통령에게는 몹시 거북하게 들렸나보다. 아버지 박정희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은 물론, 자신의 집권 기간 지표 상에서 드러난 “대한민국의 위대한 현대사”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통스런 현실을 극복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으면 못해낼 게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은, 여전히 삶 자체가 고단한 청년들에겐 절벽 같은 소통불능으로, 기득권체제를 함부로 넘보지 말라는 강박으로 들릴 뿐이다.
며칠 전 청와대의 한 끼 메뉴가 국민들의 입길에 오른 적이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당대표를 맞이하는 오찬회동이었다지만 식단이 지나치게 화려해서다. 송로버섯과 캐비어샐러드, 샥스핀찜, 바닷가재, 한우갈비, 능성어 요리 등이 차례로 올랐다고 한다. 비난이 쇄도했지만 청와대는 “풍미를 돋우기 위해 식재료로 쓰였을 뿐”이라는 무성의한 답변으로 응수했다. 얼마나 가증스런 모습인가. 금수저들이 모여서 궁궐의 식단을 즐기며 헬조선을 타박하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