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신임 경찰청장ⓒ정의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숱한 자질논란으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다.
이 신임청장은 지난 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도 경찰관 신분을 숨겨 징계를 면한 사실이 드러났다.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의원들의 추궁에도 “사법적인 판단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야당은 이 청장에 대해 부적격 판단을 내리고 청문보고서 채택을 반대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회에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하면서 기한을 23일 자정까지, 단 하루로 정해 놓았다. 야당에서는 거듭 이 청장의 자질을 문제 삼으며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으나 박 대통령은 이 청장의 임명을 밀어붙였다. 경찰청장은 국회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임명될 수 있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이철성 경찰청장 내정자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 백남기 농민 대책위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병혁 기자
음주운전 사고 후 ‘부끄러워’ 신분 못 밝힌 이철성, 결국 신임 경찰청장으로
이 청장은 지난 1993년 음주운전 교통사고 당시 경찰관 신분을 숨겨 징계를 면했다는 사실을 청문회를 통해 털어놨다. 그는 신분 은폐 의혹에 대해 “사고 당시 조사를 받는데 너무 정신도 없고 부끄러워서 (조사하는) 직원에게 (저의) 신분을 밝히지 못했다”며 “그로 인해 징계기록은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계속되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는 “정신이 없고 부끄러웠다”는 해명을 반복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이 청장은 지난해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이 직사로 쏜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과정에서 농민 한 분이 위해를 당해 쓰러진 데 대해 다시 한 번 몹시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과 관련된 입장을 밝히라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는 “사법적 판단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며 답변을 유보했다.
이 청장은 백남기 농민 사건 당시 청와대 치안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제 기억으로는 아마 (민중총궐기는) 청와대의 공식 근무에서 민감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경찰청장 취임 이후에도 백남기 농민에게 위로 병문안을 갈 수 없다는 뜻도 에둘러 밝혔다.

과거 음주사고 가해자 당시 경찰 신분을 속인채 수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난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가 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야당 “이철성 경찰청장 임명 강행한 박 대통령 사과하라”
박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이 청장 임명강행에 대해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소속 국회 안전행정위원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경찰청장을 대통령의 입맛에 따라 임명을 강행한 것을 두고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며 “의혹투성이 경찰청장에 대한 임명을 강행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경찰청장은 이제라도 자진 사퇴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더민주 이재정 원내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의 경찰청장 임명은 국회 모욕이자 국민 모욕”이라고 질타했다.
이 대변인은 “청와대가 국회와 국민을 무시했다. 이 청장은 1993년 교통사고를 낸 후 경찰신분을 속이고 징계를 모면한 기가 막힌 상황이 드러나 전 국민이 경악했다”며 “이는 범죄 행위다. 심각한 범죄행위다. 이런 사람을 의도적으로 허투루 검증해 천거하고 경찰 조직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행위 역시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 앞에 공정한 법 집행을 약속해야 할 경찰청의 수장이다. 사과와 반성으로 면죄할 수 있을 만큼의 가벼운 죄책도 자리도 아니다”라며 “제발 폭주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국민의당 김경록 대변인은 “이 청장은 음주 사고 후 징계를 피하기 위해 경찰 신분을 숨긴 있을 수 없는 행위로 국민의 지탄을 받은 것은 물론 국회 청문회통과라는 정식 절차도 밟지 않았다”며 “경찰청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이 청장의 임명은 청와대 공직자 인사검증 실패의 화룡점정”이라며 “어떻게 문제 인사들만 꼭 골라서 임명하는지,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책임자인 우병우 민정수석의 즉각 경질이 필요한 이유를 청와대 스스로 증명했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추혜선 대변인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한 박 대통령의 결정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청와대의 한심한 인사검증 시스템과 막무가내 독불장군식 임명이라는 두 개의 난국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태”라고 촌평했다.
추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겠다고 작심한 것이 아니라면 당장 이 청장의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