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전문기자
발행 2016-08-25 15:18:09
수정 2016-08-25 1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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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국 최대 이슈는 11조원 추경편성이다. 야당은 조선, 해운산업 청문회 없이는 추경 통과가 어렵다고 버틴다. 반면, 정부는 추경통과가 지연되는 것에 대해 “성장과 고용이 위축 되는 엄중한 기로”에 놓여 있다며 “비통한 심정”이라고 비장미 섞인 발언을 한다.
추경이 통과되지 않으면 GDP가 하락하고 노동자와 청년은 곧 실업자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11조원이나 되는 정부지출이 늘어나지 않으면 ‘엄중한 기로’에 놓인 내수가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예전에는 운전면허 시험장 앞에 브로커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브로커 사칭 사기꾼이다. 사기꾼은 응시생에 접근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내가 감독관과 친분 있는 브로커다. 나한테 돈을 주면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겠다.”
사기는 불안한 마음을 먹고 자란다. 합격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브로커에게 돈을 주곤 했다. 물론 사기꾼과 감독관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래도 돈을 준 사람이 만약 합격하면 브로커는 자기 덕이라고 한다. 그러나 돈을 준 사람이 떨어지면? 그냥 ‘먹튀’일 뿐이다.
이번 ‘추경 사기’도 불안한 마음을 먹고 자란다. 11조원의 추경은 11조원의 지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이번 추경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도 11조원의 재정지출이 감소되지 않는다.
11조원의 추경은 11조원의 지출이 아니다
11조원의 추경 구성 내역을 보면 이번 추경이 왜 대국민 사기극인지 알 수 있다.
이번 추경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일단 11조원이나 추가로 예산을 편성한다면서도 국채발행은 없다고 한다. 그럼 11조원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을까? 첫째는 작년에 쓰고 남은 돈(세계잉여금) 1.2조원이다. 실제로는 2.8조원이 남았지만 국가재정법상의 세계잉여금 처리 규정에 따라 공적자금이랑 국채를 상환하고도 남은 돈이 1.2조원이다. 둘째는 올해 세수가 많이 걷히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왜 돈이 남았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재미있다. 박근혜 정부는 매년 세수결손에 시달렸다. (참조:세수결손 11조원, 이게 다 MB 잘못이라고?) 그런데 작년에는 처음으로 세수흑자가 났다. 작년엔 왜 예상(본예산 세입금액)보다 세금이 많이 걷혔을까? 작년에도 경기는 안 좋았는데?
작년의 세수흑자는 세금이 많이 걷혔기 때문이 아니다. 중간에(작년 이맘때의 추경) 세입 예상치를 낮추고 세수결손에 대비해 미리 국채를 당겨서 발행했기 때문이다. 이를 ‘세입감액’ 추경이라고 한다. 작년 본예산의 국세세입금액은 221조원이었다. 그런데 추경 때 예측치를 216조원으로 낮추고 그 차액을 국채발행으로 메웠다. 그런데 실제는 218조원이 걷혔다. 즉, 추경보다는 많이 걷혔지만, 본예산 기준으로는 여전히 세수결손이다. 그래도 작년 추경 때 미리 국채를 발행해서 세수결손을 메웠기 때문에 잉여금은 작년에서 넘어오게 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더! 감액추경한 국세는 실제로는 더 걷혔고, 증액추경한 세외수입은 본예산보다도 덜 걷혔다. 작년 추경예측이 얼마나 엉터리임을 보여준다.)
이번 추경이 사기극인 이유 첫 번째:1.2조원의 국채상환?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11조원의 구성내역을 보면 일단 국가채무 상환이 1.2조원이다. 공교롭게도 작년에 넘어온 1.2조원이랑 금액이 같다. 그런데 앞서 이 1.2조원은 실제 세계잉여금 2.8조원에서 이미 공적자금이랑 국채를 상환하고 남은 돈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국채를 상환하고 남은 1.2조원을 가지고 또 1.2조원의 국채를 상환한다? 어딘가 좀 이상하다.
결론부터 말해서 국채를 상환하는 데는 추경편성이 필요 없다. 추경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든 말든 상관없이 정부는 마음대로 국채를 상환할 수 있다. 정부가 국회가 정한 한도액 이상으로 국채를 발행하려면 국회의 추가 동의가 필요하다. 추경이 통과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국채를 상환하는 데는 국회동의가 필요 없다. 유일호 부총리가 추경지연에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지만 추경과 전혀 상관없이 국채상환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왜 국채상환 계획을 추경안에 포함했을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국회동의가 필요 없는 부분까지도 국회의 양해를 얻고자 하는 ‘협치’의 정신을 보인 것이라고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물론 그럴리가 없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좀 이상하다. 작년말에 예산안을 통과시켰을 때, 국회는 올해 발행할 수 있는 국채의 한도액만을 정해줬다. 정부는 국회가 동의한 한도액까지 국채를 발행할 수도 있고, 또는 한도액에 밑돌게 발행할 수 있다. (올해는 한도액까지 국채를 발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세수결손시에는 한도액을 채우게 된다.)
늘어나는 국채가 걱정된다면 국채를 상환하기보다는 국채를 덜 발행하는 것이 더 편하다.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국채 1.2조원을 상환한다는 의미는 실제로는 올해 발행하지 않아도 될 1.2조원의 국채를 더 발행하게 된다는 의미다. 더하고 빼고나면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국채상환 계획을 추경안에 포함한 것을 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국가재정의 ‘시그널 효과’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국가재정 운용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을 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재정안정을 위해 긴축재정을 편성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추경을 편성한다는 의미는 국가가 경기부양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는 의미다.
그런데 국채 상환은 이와 반대다. 정부가 돈을 갚는 것이니 그만큼 지출이 줄어들게 되어 내수 경제에는 좋지 않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돈을 쓰고 경기를 부양한다는 추경의 시그널은 그만큼 약해진다.
굳이 이 정부가 국채 상환을 통해 얻을 것이 있다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칭찬’이다. 보통 빚을 갚으면 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빚을 갚아야 할 타이밍도 아니고, 더 급한 데 쓸 일이 많다고 해도 어찌되건 빚을 갚으면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렇게 생색을 내가면서 국채상환 계획을 추경안에 포함시킨 것 아닐까?

2016 추경예산안 개요를 설명하는 기획재정부의 이미지 자료ⓒ민중의소리
이번 추경이 사기극인 이유 두 번째:3.7조원의 지방 ‘재정’ 보강
이번 추경안의 이름은 ‘구조조정과 일자리 지원’ 추경이다. 크게 네 개 분야로 이뤄져 있는데 첫째 분야는 구조조정, 둘째 분야는 일자리 지원이다. 그러나 그 금액은 각각 1.9조원에 불과하다. 마지막 네 번째 분야는 지방재정 보강이다. 마지막 분야지만 금액은 제일 많은 3.7조원이다. 지방재정 보강은 세 번째 분야인 지역경제 활성화(2.3조원)와는 다르다. 말 그대로 지역‘경제’를 위한 예산이 아니라 지방‘재정’을 위한 예산이라는 의미다.
지방재정을 위한 예산이 무슨 뜻일까? 구체적으로 말해서 지방교부세 계정에 1.8조원을 지급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계정에 1.9조원을 지급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올해 추경은 국채발행을 통한 추경이 아니라 작년에 쓰고 남은 돈과 올해 더 걷힌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추경이다. 그런데 올해 세금이 더 걷혔다는 의미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자동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지방교부세와 지방재정교부금은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도 금액을 변동시킬 수 없다. 법적으로 그 비율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내국세의 19.24%는 무조건 지방교부세로 지급된다. 그리고 내국세의 20.27%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편성된다.
결국, 지방재정 보강 3.7조원은 올해 예상보다 더 걷힌 세금 9.8조원을 법적으로 정해진 비율만큼 내려주는 금액이다. 이 금액은 추경에 편성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자동으로 편성될 금액이다.
물론 시차는 존재한다. 만약 추경이 편성되지 않으면 동일한 금액이 내년에 지급된다. 그런데 추경을 편성하면 올해 지급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장부기록 상의 시간일 뿐 현실과는 큰 상관이 없다.
만약 추경이 야당의 반대 없이 9월 초에 통과되어서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3.7조원이 늘어나면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은 이 돈을 언제 쓸 수 있을까. 지방정부는 지자체별로 각각 추경을 해야 한다. 지자체가 늘어난 지방교부세만큼 추경을 할 지 여부도 알 수 없다. 지자체가 추경을 하더라도 집행을 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작년 ‘메르스 추경’은 7월에 통과되었다. 작년에는 지방교부세를 늘리는 ‘지방재정’ 추경이 아니어서 지자체는 추경 없이 바로 집행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자체 집행 시기는 8월 한 곳, 9월 10 곳, 11월 1곳, 12월 5곳이라고 한다. 수개월의 시차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올해 9월 초에 정부 추경이 통과되어도 지자체 추경을 거쳐 실제 집행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내년 본예산 집행보다 한두 달 정도 빠르면 다행이다.
한두 달이라도 빠르다면 나름 실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지출이 늘어나는 건 거의 없다. 지방정부는 불용액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예산안조차 다 쓰지 못하고 불용하는 금액이 많다. 지난 2014년 기준으로 지방정부 최종예산은 244조원이었다. 그러나 결산금액은 225조원에 불과하다. 18조원이나 쓰지 못했다는 의미다. 약 8%다. 현재 예산도 다 쓰지 못하고 18조원을 남기는데 3.7조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하더라도 얼마나 더 지출할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정말 추가로 지출할 사업이 있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쓰지 못하는 지자체는 정부추경과 관계없이 해당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추경하여 예산을 집행하면 된다. 예비비를 쓰거나 지방채로 내년에 추가로 보충될 지방교부세를 미리 당겨쓸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사실 실무에서는 그냥 일부 대금지급을 몇 달 미루는 식으로 올해 집행을 한다.
작년 ‘메르스 추경’에도 최종 지출 금액은 본예산보다도 적어
11조원의 추경 중 1.2조원은 추경이 없어도 얼마든지 정부가 갚을 수 있는 국채상환에 쓰인다. 또 3.7조원은 용처를 정해주지 않고 지방정부가 알아서 쓰도록 한, 그리고 어차피 주게 되어 있는 돈이다. 결국 약 5조원은 실제 지출 증대와 상관이 없다.
그래도 추경으로 나머지 6조원의 재정을 확대하는 것은 내수에 기여하지 않을까?
작년에는 10조원 규모의 메르스 추경을 편성했다. 하지만 최종 지출 금액은 작년 본예산보다도 적었다. 2015년의 본예산은 375조원이었고 메르스 추경으로 385조원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실제 결산액은 본예산보다도 적은 372조원에 불과했다. 불용액이 16조원이나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추경을 편성하느니 본예산을 충실히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올해 재정은 잘 집행되고 있을까? 재정집행률(전체 예산 대비 실 집행 비율)은 6월까지를 기준으로 작년(54.7%)과 비교해 보면 1%p 증가한 55.7%다. 그러나 일반회계만 보면 작년과 동일하다. 물론 불용액을 0원으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졸고 ‘나라살림브리핑 제2호- 본예산보다 적은 결산지출, 하나 마나 한 10조원 추경’에서 지적한 것처럼 추경이 있는 해는 불용이 증대하는 경향이 있다. 졸속적으로 편성되는 추경이 불용액만 늘리는 결과를 빚는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국가 재정운용 방향에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7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2016 추가경정예산 당정협의’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경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유 부총리, 김 정책위의장, 김세연 미래특위 위원장.ⓒ정의철 기자
창조경제도 없고, 전진인지 후진인지도 불분명하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예산’이라는 명확한 방향이 있었다.(물론 잘못된 방향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의 ‘창조경제 예산’은 사라졌다. (참조:‘창조경제’가 사라진 예산안 - 2016년도 예산안의 다섯가지 포인트) 더 나아가 재정지출 확대인지, 건전재정 유지인지 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갈지, 뒤로 갈지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다보니 추경 예산안에 ‘국가채무 상환’이라는 극히 이례적인 항목을 포함시키고, 정해진 지출항목 없이 지방정부의 장부(지방교부세)에 숫자만 넘겨놓는 추경이 생긴다.
그나마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돈을 쓰면서도 조선업 문제를 규명하는 청문회에는 미온적이다. 남는 건 정치공세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야당 내 특정강경세력이 협상 근간을 흔든다”며 추경논의를 특정 정파(친노?)를 비판하는 것으로 활용하는데만 신경을 쓴다.
원론적으로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정부가 지출을 확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정부지출 확대와 관련이 없는 추경안을 만들고 이것이 통과되지 않으면 내수경기가 무너진다는 협박은 진실이 아니다. 운전면허 시험장의 브로커는 ‘브로커’가 아니라 ‘사기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