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태 종 호

우리나라의 역사서를 읽어 본 국민이라면 서희와 한명회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서희는 담대하고 논리적인 외교술과 불타는 애국심으로 어려움에 처한 나라와 백성을 구했다. 또한 강동6주를 되찾아 영토를 넓혔다. 한명회는 타고난 불세출의 경륜과 지혜를 오직 정권창출과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 썼기 때문에 사후 주검까지 욕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미 양국에서는 북핵 해법에 대해 백가쟁명식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안은 없다. 남북관계는 파탄난지 오래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준 전시상황에 가까운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6차 핵실험의 불씨가 꺼진 것도 아니다. 여전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의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북의 김정은 정권은 체제불안정과 강도 높은 대북제재의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감속에 오직 핵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다. 핵•경제 병진노선이 아니라 핵 우선주의가 되어 점점 더 폐쇄적이고 반항적으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막가파식 도발에 대해 미국의 일각에서는 대북 선제타격, 예방타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북 선제타격은 한반도의 전면전은 물론 자칫 세계 핵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사안으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냉정한 이성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외교가 막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군사전략에 몰두하게 된다는 키신저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핵문제는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정부가 당근과 채찍 두 가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제재도 협상도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이젠 제재도 협상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더구나 지금 대북제재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고 대북협상 카드는 미국이 쥐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에 따른 우리만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것은 외교의 힘이다. 외교력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파격적인 외교전략과 전술로 전환해야 한다. 강대국의 힘에 굴복하거나 의존에서 벗어나 그들을 설득하고 협조를 요구해야 한다. 남북관계도 우리가 견인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급박하다. 북핵뿐 아니라 경제도 위기다. 세계의 주요 연구기관들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올해 4분기와 내년 초까지 1%대 성장을 경고하며 이미 구조적 위기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형재난까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우외환에 처해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위중한 시기임에도 노사갈등은 심화되고 여야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협치에 협치를 거듭해도 모자랄 판에 폭로전으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위기극복을 위한 대안 제시나 발전적 토론보다는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하며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북핵불용의 원칙’에는 미국과 의견이 일치하지만 한반도의 사드배치는 미국의 무기체게이고 MD체계라며 결연히 반대하고 있고 대북제재에 동참은 하면서도 정작 결정적 압박에는 발을 빼는 행보를 보임으로서 북의 퇴로를 열어주고 있다. 일본은 아베의 오만과 독선이 도를 넘고 있다. 과거 침략근성 또한 버리지 않았다. 푼돈 10억엔으로 일본군 피해 할머니 문제는 끝났고 사과는 털끝만큼도 생각지 않는다는 발언만으로도 그 진정성은 알 수가 있다. 평화헌법 개정이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조속한 체결을 서둘러 또다시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이율배반적 속성을 내보이고 있다. 11월 8일,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한반도에 대한 정책변화는 불가피 할 전망이다. 북핵문제에 관한한 실패로 평가받는 오바마정부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며 방위비 증액은 물론 최악의 경우 주한미군 철수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안보지형을 뒤흔드는 메가톤급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아시아재균형전략을 강하게 주도하고 있는 클린턴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은을 가학적독재자가 이끄는 억압적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당분간 북핵문제는 해결이 난망하고 중국과의 패권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한국에게도 과거와는 다른 적극적 역할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주변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국면에 처할 것은 자명하다. 우리에겐 지금 냉철한 판단력과 탁월한 외교력을 갖춘 서희가 필요한데 정작 정파에 매몰된 한명회만 넘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