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검찰이 어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 대해 일괄기소하면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이 밝히 공소사실의 요지는, 최순실, 안종범 전 수석, 박근혜 대통령이 공모하여, 재단법인 미르, 재단법인 케이스포츠 설립, 모금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를 하였고, 현대자동차그룹, 롯데그룹, 주식회사 포스코, 주식회사 케이티 등과 관련하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를 하였으며, 정호성 전 비서관과 박 대통령이 공모하여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고, 최순실, 안종범이 단독으로 사기를 미수하거나 증거인멸을 교사하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및 박근혜 대통령의 범죄행위를 소상히 밝혔는데,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관계의 메신저는 정호성 전 비서관이며, 안종범 전 수석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모한 범죄의 구체적 실행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일례로 박근혜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에게 ‘전경련 산하 기업체들로부터 금원을 갹출하여 각 300억 규모의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을 설립하라’고 지시하는 등 범죄행위에 깊숙히 개입해 있었다. 통치행위 차원에서 ‘문화융성'이라는 정부정책에 기업의 협조를 구한 것에 불과하다는 청와대의 기존 주장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에 기재된 박 대통령의 공모관계는 99% 이상 입증가능한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종범 전 수석의 빼곡한 ‘대통령 지시사항’ 메모와 정호성 전 비서관의 핸드폰에 저장된 최순실, 박 대통령 등과의 통화 및 문자메시지 내역을 통해 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범죄자들의 공모관계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헌정 사상 최초로 공소장에 현직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한 것은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늦장수사로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못하고, 최순실에게도 증거를 인멸할 충분한 시간을 벌게 하는 등의 이유로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구체적인 공모관계를 밝혀내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나아가 이번 공소 제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름 아닌 재벌봐주기와 양형을 고려해 박 대통령 및 그 공범들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뇌물죄(제3자뇌물제공죄 포함) 성립 여부는 전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뇌물죄는 그 수수액이 1억 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대범죄이다. 이런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 및 공범들의 범죄행위를 애써 직권남용의 틀에 가두려 한 흔적마저 엿보인다. 검찰이 추후 보강 수사를 통해 뇌물죄 성립 여부도 밝히겠다고 하였지만, 삼성, 현대, 롯데 등 재벌기업들을 피해자로 둔갑시킨 이번 공소 제기는 아무리 보아도 이해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2015년 7월 대기업 총수들과 독대한 자리에서 각 기업들로부터 기업총수 부재, 합병, 손쉬운 해고 등 현안 민원사항을 청취하였고, 이런 민원사항은 상당수 정부정책으로 집행되었다. 이 과정에 미르 및 케이스포츠 재단에 수백 억원의 출연금이 제공되었다. 제3자 뇌물제공죄는 뇌물죄와 달리 ‘부정한 청탁'을 요건으로 하지만, 재벌기업들이 출연금을 갹출하기 전에 대통령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현안 민원사항을 건넸다는 사실은 사전에 부정한 청탁이 있었음을 웅변한다. 특히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졸업한 초등학교 학부형으로서 친분이 있던 이 모씨가 운영하는 케이디코퍼레이션과 현대자동차그룹 사이의 부정한 거래는 이번 공소사실 그 자체로 뇌물죄 또는 제3자뇌물제공죄가 성립한다. 최순실과 박 대통령이 공모하였고, 최순실은 대통령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케이디코퍼레이션으로부터 샤넬 핸드백과 4천만 원의 돈을 수수하였고, 이들은 공범관계에 있으므로 뇌물죄로 의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정농단의 중심에는 기업으로부터의 부정한 ‘뇌물'이 있고, 뇌물을 취득하거나 제3자가 취득하게 하는 행위에 ‘직권남용'이라는 수단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에 검찰이 뇌물죄를 빼고 직권남용 및 강요죄로만 기소한 것은 한 마디로 껍데기 기소에 불과하다. 검찰은 스스로 약속한 대로 향후 뇌물죄 수사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동원 가능한 모든 강제수사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헌법은 대통령에 대해 내란,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강제수사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