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지난달 30일에 발생한 화재로 점포 679곳이 전소된 현장이었다. 지난 9월27일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 참석을 위해 부산을 방문한 이후 35일만의 외부 활동이었다.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은 1일 오전 급작스럽게 결정됐다고 전해졌다. 화재 진압과 현장 정리가 완전히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방문을 결정한 것이다. 평소 재난 상황을 대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세월호에서 아이들이 죽어갈 때도 7시간동안 공식석상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대통령이 이렇게도 발빠르게 현장에 달려갈 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렇게 급하게 달려간 현장에서 대통령의 모습은 마치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분향소를 찾았을 때를 연상케 했다. 사고로 고통 받는 국민들은 통제돼 있고 허락된 단 한 명의 국민만 대통령을 만났다. 대통령은 멍한 표정으로 현장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대통령이 현장에 왔었다는 것을 인증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가게가 불타버린 상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 심정은 어떤지 대통령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10분만에 시장을 떠났다. 그나마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문에 기대했던 상인들에게 상처만을 안겨줬을 뿐이다.
대구 서문시장은 박 대통령에게 각별한 곳이다. 자신의 고향이기도 하거니와 정치적 고비를 맞을 때마다 재기와 전진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곳이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방문할 때는 사람들이 너무 몰려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으며 지난해 9월에도 시장을 메운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지지기반을 확인했었다.
이날 서문시장의 공기는 차가웠다. 시장에 들어서는 입구에서 대통령은 ‘박근혜 퇴진’ 구호가 적힌 피켓을 마주해야 했다. 시장 상인들의 반응도 냉담했다. 자신을 지지하는 인파에 둘러싸여 손을 흔들고 악수를 하던 그 곳이 아니었다. 이미 대구에서 지난 주말 5만명의 시민이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국정지지율이 3%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이제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 아니라 여타 지역과 전혀 다르지 않은 대한민국의 한 대도시 일뿐이다.
대통령이 왜 서문시장에 갔는지는 분명하다. 그 어떤 ‘재기’를 노렸을지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이날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당회장 목사를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임명한 것과 연결지으며 국정에 나서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런 흐름이 청와대의 본심이라면 도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준 상인들이 화재로 고통 받는 현장을 발판삼아 위기를 탈출해보겠다는 심산이라면 대통령이기 이전에 사람이 아니다. 이날 서문시장 방문은 오히려 대통령을 왜 하루빨리 끌어내려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