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 증인으로 불려나와 자신에게 쏟아진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그는 박근혜 정권 전반기 내내 “왕실장”이라고 불릴만큼 국정 전반에 대한 장악력이 컸다. 잡아떼고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위치였다.
그는 세월호 7시간, 수백명의 아이들이 물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던 그 시간에 태연하게 머리를 올렸던 대통령 행적에 대해 “관저 내 사사로운 생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밝혀진 청와대 출입기록에 따르면 머리 손질은 오후 3시가 넘어 시작됐다. 비상체제가 아니었어도 대통령의 집무시간이고 그 시간 대통령이 숙소인 관저에서 머물며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아야하는 사람이 비서실장이다. 비서실장이라는 자리는 그것을 임무로 하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사람이다. 그것을 여성 대통령의 “사사로운 생활”이라고 가볍게 대하며 위기를 모면하려는 행태는 사악하다는 말 외에 달리 쓸 말이 없다.
고 김영한 비망록(청와대 업무일지)에 대해서도 “실장이 하나하나 지시했다고 볼 수 없다. 회의에 참여한 각 수석들의 의견이나, 작성한 분의 생각이 혼재돼있다고 생각한다”며 교묘히 빠져나갔다. 업무일지는 공문서 다음으로 증거능력이 높다. 특히 김영한 비망록은 기록방식의 일관성을 유지하여 증거가치가 매우 높다. 김기춘 비서실장 지시사항, 대통령 말씀, 개인의 메모를 구분하여 기록했다. 혼동을 피해 잘 모르는 사람도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 명백한 증거를 들고 물어보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철면피도 이런 철면피가 없다.
하루 종일 최순실을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야당 의원들이 증거를 내밀자 “모른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둘러댔다. “나도 늙어서” 그렇다는 말도 했다. 다른 일에서는 구체적인 날짜까지도 모두 기억하던 그가 유독 최순실과 정윤회에 대해서만큼은 그 존재도 몰랐다고 하는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같이 청문회에 출석했던 고영태가 “TV를 보고 있는 국민들이 다 알 것”이라고 했을까?
김기춘 같은 자는 선악구분이 안되는 사람이다. 악을 행해도 가책을 느끼지 않고 선을 가장해도 눈빛이 떨리지 않는다. 그러니 최순실, 이재만 등이 없는 청문회에 홀로 나와 모두를 상대하며 모두를 기만하는 노련함을 보여준 것이다. 말로 안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철면피를 벗겨줘야하지 않겠는가. 검찰이 피의자로 입건해놓고 손도 못대고 벌벌 떨고 있으니 특별검사가 해야한다. 김기춘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특검의 제1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