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사망한 국민총궐기 집회 등 이른바 진보단체 집회들에 수사가 속전속결로 진행됐고, 주모자로 몰린 민노총 위원장은 징역 5년 중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인 사례와는 대조적이어서 경찰이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현 국민저항본부)가 박근혜 탄핵 선고일인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일대에서 박사모 회장 정광용 주도로 연 박사모 집회는 누가 봐도 극심한 폭력으로 얼룩졌다.  박근혜 파면 소식이 전해지자 주최측의 선동에 의해 참가자들은 헌법재판소 쪽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사회자들은 "돌격하라"고 외치며 이를 독려했다. 

박사모들은 경찰 버스에 밧줄을 매 흔들고 유리창을 깨는 등의 과격 행위를 보였고 경찰 버스 수십대가 파손됐다. 경찰관과 의경 3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취재 및 카메라 기자 상당수도 폭력을 당해 부상을 입었다.

한 박사모는 경찰버스를 탈취한 뒤 소음측정차를 수차례 들이받아 차량 위에 있던 스피커를 떨어트려 이에 맞은 70대 참가자가 사망에 이르도록 했다. 이날 시위 참가자 중 사망자만 무려 4명을 기록했다.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은 주최측 박사모에 대해 사법 조처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사건 사흘 뒤 기자간담회를 통해 당시 주최측의 발언, 채증자료, 현장 경찰 진술 등을 종합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당시 이 청장은 "집회에서 있었던 무대 위 선동 발언 등도 수사대상"이라며 "지금까지 발언 중 지나치게 과격했던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 모욕 등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경찰은 이 청장 간담회 다음날인 지난달 15일 박사모 중앙회장 정광용과 집회 사회자 꼴보구 성향 인터넷 신문 뉴스타운 대표 손상대에 대한 내사에 착수, 같은 달 28일 피혐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당시 집회 질서를 관리하지 않아 폭력 행위를 유발해 인명 피해 등을 발생시킨 혐의다.

손상대는는 경찰에 출석해 "난 집행부가 아니었다. 단지 사회를 봤을 뿐이다"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정광용은 경찰의 소환 통보에 3차례 불응하다 경찰이 체포영장을 신청하자 결국 지난 12일 경찰에 출석했다. 사건 발생 33일 만이다.

정광용은 "시위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건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이라며 혐의를 일체 부인했다. 손상대에 대해서도 "사회자도 흥분한 부분은 있었지만 손상대 책임은 아니다"라고 두둔했다.

정광용 출석 다음날인 13일 경찰은 서울 서초구 소재 국민저항본부 사무실과 관계자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압수물 분석 후 정과 손에 대한 신병처리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처리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3월10일 폭력시위 발생 이후 40일이 넘도록 수사가 이례적으로 굼뜬 데 대해 과거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던 진보단체 측에선 경찰이 "너무나도 대조적인 봐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집시법을 위반한 과거 진보단체 집회에 대한 수사는 신속하게 진행됐다"며 "이번 탄기국 집회처럼 끌었던 적이 결코 없다. 4주도 안 걸렸다"고 설명했다.

안 처장은 "경찰이 명백히 봐주고 있는 것이다. 탄기국 회원들은 경찰과 기자들까지 폭행했다. 심지어 참가자들까지 죽었다"라며 "이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된 집회는 책임자들을 바로 소환해서 수사해야 하는데 경찰이 봐주기로 작정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11월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은 사건 '바로 다음날' 관계자들을 입건했고 이어 16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일주일 뒤인 21일엔 집회 주최측인 민주노총과 산하 노조 사무실 11곳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봐주기 수사를 하고있는 건 아니다"라며 "정광용이 소환에 3차례나 불응하면서 조사 기간이 길어진 것 뿐이다. 제때 출석했으면 이렇게 지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 하고 있지만 봐주기 수사라는 의심을 받을 늦장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