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춘몽님의 사진

내가 드라마에 빠져 살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만화책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시작의 조짐이 보였던 것이 아닌가 하다.
5.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살림살이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많은 상처와 가난을 쓸어안고 살아야 했다.
어른들은 먹거리를 위해 집을 비웠고 아이들은 고무줄놀이와 땅 따먹기 소꿉놀이, 줄넘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라 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티비나 게임기는 물론 없었고, 어찌해서 손에 쥔 동화책은 특수 계층만의 누릴 수 있던 행복 이였다.
운이 좋은 날 어쩌다 동전 하나가 생기면 나는 골목 어귀에 있던 만화방으로 달려갔었다.
통장 아저씨 내 집 만화방에는 새로 나온 책을 유리창에 검은 고무줄을 묶어 세워 놨었는데, 그것들이 내 발목을 잡아끌어 참새 방앗간이 따로 없었다.
나는 화려한 장식을 하고 층층이 넓은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공주님 만화를 병적으로 좋아했는데, 그 만화를 얼마나 좋아 했으면 “만화가인 “이범기님을 아직까지 기억하는걸 보면 증명 될 것도 같다.
아쉽게도 그 만화책 제목은 잊었는데, 공주님 만화책 “상권은 이미 봤고, 그 날 만화방 유리창에 “중 권이 보여진 것 이였다.
무늪이 사정없이 튀여 나온 코르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무리 뒤져 봐도 먼지 하나 잡히지 않고 가슴은 온통 공주님 모습만 보였다.
무거운 발을 돌려 집에 돌아 와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워있을 때, 고무줄 놀이하자며 옆집 길순이가 불렀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아~라,,,”
내가 뛰어 나오기를 유혹하는 고무줄놀이의 주제가를 평소 때보다 더 큰 소리로 불러 댔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되여, 씩씩거리며 가장 슬픈 표정으로 누워있던 내 눈에  3단 서랍장위의 빨강 돼지가 보였다.
장사를 하셨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시면 제일먼저 하시는 일은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찾아 빨강돼지 밥을 주시는 거였다.
내 머리통만한 빨강 돼지는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오래 지나지 않아  비만 돼지가 되여 버렸는데, 아버지는 엄마 생신 달이 되면 돼지를 잡아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하셨다.
엄마는,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한다는 “최영장군님과는 너무나 다르게 황금을 좋아 하셨기에, 금반지, 금 팔지, 금 비녀, 금 장식, 금 돼지까지 작지 않은 보석함을 시간과 함께 채워져 갔다.
매우 검소 하셨기에 밥반찬도 서너 가지로 명령 하셨던 아버지였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던 아버지의
사랑 표현 방법 이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아버지는 외동딸도 사랑하셨지만, “지주집안의 고명딸 이였던 엄마가 가난한 총각을 만나, 고생하게 만들었다며 안쓰러운 마음에 사랑 표현을 많이 하셨다.
그런 사랑과 사명을 품고 있는 “빨강 돼지에 상처를 내게 된 것은 오로지 공주님 만화책 때문 이였다.
웅크리고 누워, 길순이가 돼지 멱따는 듯 한 고무줄 주제곡을 목청껏 불러대도 무시 할 수 있었지만, 만화책 속 공주님의 생글거리는 어여쁜 얼굴은 눈을 감아도 보였다.
나는 무슨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칼을 찾아 들고 돼지 앞에 서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돼지 등판 외과 수술을 시작했다.
흉터를 남기면 안 되겠기에 숨을 멈추고 손가락에 “기를 모았다.
살짝 ,아주 조금만 베어내고 거꾸로 들고 흔들었더니 동전 두 개를 토해 냈다.
동전 두 개면 공주님 “중 권은 물론 몇 권을 더 볼 수 있는 거액 이였기에 돼지는 안전하게 제 자리에 돌려놓고 만화방으로 뛰여 갔다
돼지에 상처가 남겨지지 않은 것 같아서 나는 완전 범죄를 만끽하며 배고픈 것도 잊고. 만화책과 행복했다.
어둑해지는 골목을 지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왠지 모를 불길함이 작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 “예나 지금이나 어째서 좋지 않은 예감은 적중하는지 모를 일이다.
내 아버지는 지독한 딸 바보라서 성적표에 “수 우 는 보이지 않고 미, 양, 가 만 있어도 길게 한숨 한번 들여 마시고는 “수고 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안될까” 하셨는데, 나는 그 당시만 아주 많이 뉘우치고 죄송해 하는 척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면 됐었다.
그랬는데, 그 날 돼지 척추 수술 사건으로, 나는 꼬지지하고 보기 흉한 내 복만 입은 체 대문 밖으로 쫓겨나는 벌을 받아야 했다.
완전 범죄라고 자신했었는데 어떻게 탄로가 났는가 하면, 아주 어이없고 사소한 작은 실수로 범행 꼬리가 잡혔던 것이다.
돼지 등짝에서 긁어낸 작은 조각들을 치우지 않고 커버 밑으로 밀어 놨는데 그것을 발견한 엄마가, 아버지에게 “내부 고발자가 되여 들통이 난 것 이였다.
확실한 증거에 변명도 하지 못한 체, 장대같이 큰 키의 나는 내복 바람으로 대문밖에 서 있어야 했는데 부끄러워서 추운 것도 몰랐었다.
그런 슬픈 상황 이였는데, 동회장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고 있던, 몸가짐이 자유로웠던 언니는, 내가 내복 바람에 벌을 왜 서고 있는 지는 궁금해 하지 않고 음흉한 눈빛을 보이며” 애 야,,, 네가 남자로 태여 났으면 신성일 만큼 잘 났을 탠데”,,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 언니는 그 때 20살도 되지 않았다는데 남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언니의 아버지가 가위로 머리를 몽땅 잘라버렸다는 소문과 함께 동내 아줌마들의 수다 “1순위 안주 꺼리 였다.
그래서 이었는지, 그 날도 나일론 보자기를 둘러 쓰고 있었기에 잘린 머리를 확인 할 수는 없었다.
60여 년 가까이 지났는 대도 “만화책과 “빨강 돼지와 함께 그 언니가 기억 되여달콤한 추억이 되여 보고 싶다.
지금은 그 언니도 잘려나간 머리카락대신 흰 머리카락이 자리하고 있을 것 같아내 입술이 자꾸만 씰룩 거린다.
추억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 벌섰던 것도 .일곱 가지 무지게 빛으로 찾아 와 주니 추억 뒤지기를 하는 오늘이 참으로 맛있다.
지금은 만화책이나 모든 책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돼지를 잡지 않아도 되겠지만, 풍요 속에 빈곤인지 나는 오늘,
“공주 만화책, 빨강돼지, 엄마 아버지, 그리고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는 언니와, 고무줄놀이를 하자고 불러 댔던 “ 길순이가 아주 많이 보고 싶다.
훗날 다른 친구로부터 “ 길순이가 독일에 간호사가 되여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난히 키가 작은 길순이가, 몸이 큰 독일 환자들을 어떻게 보살피려나. 안쓰러웠다
언젠가 파독”간호사들을 나라 차원에서 초청했다는 뉴스를 듣고는 혹시나 길순이가 보여 질까 하는 마음에 티비 앞을 떠나지 못했지만 길순이를 보지 못하였다.
하긴 너무도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서로 얼굴을 마주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고무줄놀이, 땅 따먹기 ,소꿉놀이, 술래잡기 놀이와 머리카락이 잘린 언니, 길순이도 없는 앞으로의 나의 추억에 허기가 몰려들어 가슴이 시려온다.
내일의 내 추억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 질 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