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종 호  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유명한 책사 제갈공명(諸葛孔明)의 후 출사표 마지막에 국궁진력(鞠躬盡力)이란 말이 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몸을 굽히고 최선을 다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차례 북‧미를 오가며 중재자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고 떠올린 말이다. 그는 이번에도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미국으로 날아가 북‧미의 중재자 역할을 확실하게 마무리 했다. 3차 평양남북정상회담과 뉴욕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서 북‧미대화의 불씨를 다시 살려냈다. 폼페이오의 방북무산으로 야기된 북미 교착국면을 풀기 위해 나선지 불과 2주 만에 거둔 성과다.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해 한발 더 나아간 비핵화 조치를 얻어냈고 이를 토대로 뉴욕으로 가서 트럼프 대통령을 이해시키는데도 성공했다. 그 성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확연히 나타났다. 북한의 비핵화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2차 북미회담을 기정사실화 했다. 폼페이오의 재방북도 성사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상응조치를 강도 높게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양보한 만큼 이번엔 미국도 종전선언이나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등 무엇이든지 내놓아야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이유로 북한이 이미 실행한 조치나 앞으로 실행할 것들은 되돌리기 힘든 불가역적인 것들이지만 북한이 미국에게 상응조치로 요구하고 있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다. 대북제재 완화 역시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취소할 수 있다며 미국의 성의 있는 실행을 촉구했다. 또 한발 더 나아가 종전선언 이후는 물론 한반도 통일 후에도 동북아의 안정과 균형을 위해 주한미군이나 유엔사 주둔이 필요하며 미국의 세계 전략에도 전혀 이상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절절한 호소다. 물론 이 같은 발언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사전교감이 있었음을 전제로 한다. 9월 27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북한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국제사회가 화답할 차례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공개되지 않은 김 위원장의 친서가 큰 힘이 됐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중재자에서 조정자로 변신한 것이다. 전보다 훨씬 강해진 자신감이자 존재감이다. 신념으로 가득 찬 고군분투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제 공은 북‧미 정상에게 넘어갔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궁진력(鞠躬盡力)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온전히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재는 두 번이면 족하다. 만일 또 중재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파국을 의미하거나 중재를 한다 해도 몇 갑절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중재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어느 한쪽은 이미 실행할 의사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미국의 태도가 어떻게 나올지가 초미의 관건이다. 문대통령의 말처럼 북한으로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답이 회담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벌써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거래의 기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비핵화 속도가 더디다고 연일 다그쳤었다. 그러자 북에서 2021년 이전까지 비핵을 완료하겠다고 시간표를 제시했다. 그런데 북‧미 2차 회담이 결정되자 이번엔 북한과 비핵화에 대한 시간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속도조절에 나서며 발을 빼고 있다.

당장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고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을 때를 대비한 포석일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답을 기대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준비가 덜 됐으니 좀 기다려 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종전선언을 선뜻 내주었을 경우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발을 우려해 시간 끌기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트럼프답지 않은 처사다. 그동안 해왔던 트럼프 방식이 아니다. 그는 승부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상식을 무너뜨리는 돌파력으로 미국의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기에 한반도 문제도 정면 돌파가 답이다. 이번에도 싱가포르 1차 회담 때처럼 변죽만 울리고 만다면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만날 수 있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번 북‧미 회담에서 특유의 역량을 발휘해 세계사에 기록될만한 업적을 남기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중재자나 조정자로 나서지 않고도 한반도 평화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