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종 호 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북미의 비핵화 협상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표면상으로 나타난 원인은 미국의 핵 신고, 핵 폐기 요구와 북한의 체제보장, 제재완화의 상응조치 주장이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북한은 미국을 믿지 못하고 미국은 북한을 압박해  항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엿보인다. 상생의 논리가 아니라 승패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북미협상의 교착상태가 길어지자 일각에서는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마저 나오고 있다. 순조롭게 성사될 것 같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시점조차 불투명하고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회담마저 난항을 겪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북‧미가 자초한 결과다. 초심을 잃고 원칙을 외면해 생긴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말은 서로 신뢰하고 있으며 잘 될 것이라고 하면서 실행에는 인색하니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6.12 당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가뜩이나 풀기 어려운 북 핵 방정식이다. 이 난제를 풀려면 흔들림 없는 원칙과 신뢰가 중요하다. 북‧미가 가장 중요한 원칙과 신뢰를 외면하면서 어려운 국면이 되고 말았다. 미국 중간선거 이전과 이후에 보여준 북미의 태도변화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앞으로 있을 비핵화 협상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증좌다. 미국 중간선거 이전에는 북한의 목소리가 컸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패가 불투명한 선거전을 틈타 김정은 위원장이 한껏 여유를 부리며 ‘종전선언’과 ‘제재완화’라는 양손에 떡을 한꺼번에 얻으려 욕심을 부렸다. 그러나 지금은 중간선거에서 선방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반격중이다. 북한의 요구를 거절하고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를 답습하고 있다. 비핵화 이전에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며 강경노선으로 맞서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외교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노려 자기의 이익만을 극대화 하려는 도박은 성공한 예가 드물다. 더 큰 화를 키우게 되고 결국엔 파국을 맞게 된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북미의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이후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매우 아쉬운 대목이 보인다. 북한이 과거와 달리 선뜻 핵, 미사일 동결과 핵 실험장 폭파 등, 선제조치를 취하며 종전선언에 집착했을 때가 비핵화의 골든타임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비핵 시간표가 미국이 호언장담하던 종전선언 약속을 거두면서 행동대 행동 원칙이 깨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비핵 방정식은 꼬이기 시작했고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완성”이라는 북미협상의 대원칙은 실종되고 말았다. 그 후 북미관계는 시간 끌기 놀음으로 변질되었다. 단순한 숨고르기가 아니라 서로 끝없는 의심 속에 선행조치와 상응조치만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요구대로 미국이 종전선언 약속을 지켰다면 현 상황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양국의 신뢰는 돈독해졌을 것이고 북한은 훨씬 더 진전된 핵 보따리를 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두 정상이 세계를 향해 보여준 언사들이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초심으로 돌아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완성” 이라는 대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미국이 대국답게 먼저 신뢰를 보여주는 방법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상응조치를 취함으로서 북한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북한 비핵화의 가장 상책(上策)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안심하고 핵(核)을 버리고 경제(經濟)를 택하게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을 버리면 북한이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해주겠다는 말 대신 북한이 공감할 수 있는 종전선언이나 대북제재 완화와 같은 실질적 조치를 먼저 해야 된다는 말이다.
 
둘째, 북한이 미국의 선행조치 요구대로 대담하고 파격적 양보를 하는 방법이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믿지 못하는 국제사회를 향해 완전한 속살까지 드러냄으로서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행만 된다면 중책(中策)은 되지만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도 강경한 군부의 설득도 어렵지만 전철을 밟았던 나라들의 트라우마 (Trauma)극복도 쉽지 않을 것이다,
 
셋째,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철저하게 행동대 행동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완성”이라는 명제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원칙만 지켜진다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가 유지된다면 상책(上策)이 되지만 신뢰가 손상되면 시간만 끌다가 파국에 이르는 하책(下策)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