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종 호 한민족통합연구소 회장

판문점 남북미 회동 이후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을 수정했다. 일관성에서 유연성으로 바꾸었다. 심지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까지도 관대하게 넘기고 있다. 미국은 북한 핵동결에 관한 문제를 제기해 놓고 북한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완전 폐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핵 프로그램의 전면 동결에 나설 경우 상응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과 인적 교류 확대, 연락사무소 설치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전에는 아무것도 내줄 수 없다던 종전의 선 비핵화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대북제재 일부를 유예할 수도 있다는 점을 언급한 대목이다. 특히 개성공단 재개와 석탄과 섬유 등 일부 품목에 대한 수출금지를 풀어 줄 수 있다는 구체적 사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는 실무회담 의제의 핵심사항이 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단계적 해법을 수용했다는 면에서 파격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수용여부가 변수지만 결국 받아들일 것이다. 거부할 명분이 없다. 미국이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핵동결 문제는 미국 조야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언론과 정가를 중심으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워싱턴의 주류세력들은 핵 동결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차기 대선과도 맞물려 집중적 공세를 펴고 있다. 이유는 불신 때문이다. 첫째, 트럼프에 대한 불신이다. 북핵을 대선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비핵화가 아닌 핵동결을 출구로 북한과 협의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두 차례의 미사일 발사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미사일 발사까지 언짢치 않다고 북한을 두둔하는 트럼프 발언까지 문제 삼고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총동원돼 핵동결은 비핵화의 입구지 출구가 아니다. 북미협상의 최종목표는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제거다. 핵동결이 결코 최종상태가 될 수 없다고 강변해도 믿지 않는다. 둘째, 북한에 대한 불신이다. 핵동결 이후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시간이 가면 북핵 협상이 핵동결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리 된다면 30년을 끌어 온 북한 비핵화는 물거품이 되고 북한은 핵보유국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뿐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 등이 전력 불균형을 이유로 핵개발에 나서면 동북아에서 핵개발 도미노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비약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데서 기인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더 이상 추가하지 않고 핵무기 성능을 개선하지 않으며 핵무기와 기술을 이전하지 않는다.”는 북핵 동결은 비핵화의 우선순위에 속한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이슈들에 가려 있었지만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이 핵동결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것을 놓치는 우를 범했다. 완전한 핵 폐기라는 공허한 주장만을 고집하다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했다. 소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방치한 대가는 혹독했다. 북한에게 핵개발의 호기를 가져다주었다. 북한은 그 기간에 거침없는 비약적 핵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 미국과 마주앉아 담판까지 하게 된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만이 대외 협상력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체제의 안전을 담보할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기에 지금도 다양한 방법으로 핵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북미협상 중에 북한이 핵 생산 활동을 계속한다 해도 미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가 이를 막을 마땅한 방법도 없다. 대북제재 강화 외에는 저지할 제도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의 핵동결은 시급하고 중요하며 비핵화로 가는 입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모두가 원하는 일이지만 단 한 번에 비핵과 평화체제를 맞바꿀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이미 경험한 일이다. 하노이 회담이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도 지금까지 “선 비핵화와 빅딜”이라는 강경책을 고수해 왔지만 결국 궤도수정을 꾀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능한 것부터 풀어가는 것이 순리다. 모든 여건이 지금처럼 한반도문제 해결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때도 없었다. 북핵문제 또한 예외가 아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과거핵, 현재핵, 미래핵 중 가장 시급한 것이 현재핵과 미래핵이다. 당연히 핵동결이 흥정의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일찍이 미국의 페리가 주장한 것처럼 북한의 확실한 핵동결과 미국의 파격적 상응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신뢰가 쌓이고 다음단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어 종착역에 도달할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이 대선만을 생각하거나 대북제재 해제만을 고집한다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모두 요원한 일이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세계 역사를 바꿀 기회는 흔치 않다. 남북미 정상들은 판문점에서 쏟아냈던 말들을 복기해 보고 소탐대실(小貪大失)하거나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