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녹두 죽 다 끓었는데”

성당 가는 길모퉁이에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집 하나가 있습니다.

정리 정돈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폐가를 닮은 큰 개 집과, 자동차를 쉬게 하였을 지붕 있는 넓은 공간도 있기는 합니다.

나는 성당에 오고 갈 때면 그 집의 주인이 항상 궁금하고 또는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강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서울 땅인데, 저 집주인은 돈이 얼마나 많으면 10년도 더 되는 세월을 집을 버려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친정처럼 절손되다시피 하여 집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하며, 1도 상관없는 일에 오지랖을 펄렁 거립니다.

나의 오지랖 펄렁 거림 병은 이미 말기가 되여 어쩌지 못할 단계가 되긴 하지만 특히 그 집에 대한 관심은 개나리꽃 때문입니다.

집 건물은 이미 쓰러져 주저앉고 있었지만, 넓은 마당을 감싸고 있는 철책 담장을 휘감은 개나리꽃은 온 하늘 볕을 독식이라도 한 듯

우리 동내에서 제일 먼저 꽃 망울을 피워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일날의 약속이 있어 대신, 토요 특전 미사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그 집 앞을 지나는데 철책 담장이 온통 노란 꽃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 개나리가? 그렇구나 ,, 봄이 되였구나,,

꽃의 등장에 늙은 소녀가 되여 꽃 가까이 다가가, 가슴으로 인사를 나누다

갑자기 잊으면 되지 않을 중요한 알림이 생각났습니다.

맞아, 맞아 저 애들이 필 무렵이면 ,온 나라 국민을 울고 웃기는 사건 하나가 있었지?. 하는 생각이 모아지자 마음이 급해져, 신부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조급해졌습니다.

요즘 일이 있어서 라디오에 집중하지 못한 관계로 봄소식, 꽃 소식, 라디오 소식에 무관심하였는데 이런 결과가 되였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 들어가 보니 ,,, 역시나 올 2019년도 신춘편지 쇼" 잔치가 공고되었습니다.

“글 제” 가 “기억”이라고? “기억? 무슨 기억?, 어떻게, 무엇을? 나는 “기억이라는 글제에 오랫동안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며 생겨난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지난날을 되색임 질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때 그 사람, 그날 그 사건, 학창시절 선생님께 벌 섰던 아픈 사건의 기억도 눈물 나게 그리워져서 울다가 웃다가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양하고 수많은 기억을 뒤져 보라는 2019년의 미션을 향해 머리끈 질끈 동여매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때, 기억 저 편에서 46살의 내 엄마가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향해 손짓 하였습니다.

“아! 우리 엄마, 가엾은 내 엄마가 있었구나,,

내 엄마를 기억의 공간으로 끌어 내놓은 것만으로도 나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내 엄마는 46년 동안 세상에 존재하였고, 25년은 내 엄마였습니다.

지주 집안의 고명 딸로 자라 천애 고아셨던 아버지와 사랑에 도피를 하셨다는 강단 있고 자신의 생각이 확실한 여성이었는데 심장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유명 약사님이셨던 아버지도 엄마의 심장 판막은 고쳐 주지 못하셨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수술이 가능하였겠지만 그때는 여의치 않아서 그때그때 위급 한 상황이 되면 병원으로 실려 갈 뿐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집안 분위기가 엄마 때문에 우울해진다며 나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엄마는 숨쉬기가 힘들다며 언제나 안방 아래 목 벽에 눈을 감고 기대앉아있었습니다.

식사는 전혀 하지 못하고 복숭아 통조림이나 집에서 만든 식혜 몇 모금으로 몇 년을 버텨내 셨는데, 부잣집 안방마님 모습은 점점 미라처럼 변해 갔습니다.

불행은 떼를 지어 온다는 말이 있듯 아내를 끔찍하게도 사랑하셨던 아버지는 아내의 병이 마지막을 향해 가는 것 같은 현실에 실망과 좌절에 굴복하시고 말아, 어느 날 아무런 징조 없이 쓰러지시더니 49살의 젊은 생을 끝내셨습니다.

남겨진 병든 아내와 25살의 철없는 딸은 그 상황을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조차 없이 그냥 그렇게 있어야 했습니다. .

그런 지경에서도 시간은 가고, 아버지 없는 모녀 만의 공간에서 숨만 쉬고 있던 그날은, 아버지의 49재 날이었는데,. 또한 그날은 엄마의 마흔여섯 번째 생일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49재 날, 엄마의 생일을 준비하는데, 우리 집 부엌에서는 생일 미역국을 끓이는 것이 아니고 “녹두 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생일날에 녹두죽을 끓이게 된 사연은,엄마 생일 전 날 옆집 아줌마가 심장병에 좋다며 녹두죽을 끓여 왔었는데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0여 년을 곡식이라고는 식혜에 들어있는 밥알 몇 개가 전부였는데 엄마는 그릇 가득 들어있는 “녹두죽을 단번에 다 드셨습니다.

죽 그릇을 비운 엄마의 얼굴이 발그스레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드디어 밥을 먹게 된 엄마가 병을 이겨내고 내 곁에 계시리라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오랜만에 나도 단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 나보니 엄마는 여전히 아랫목 벽에 기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두 눈을 감고 계시기에 눈 맞춤 없이, 나는 부엌으로 나가 녹두 죽을 끓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작은 녹두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 지 한 시간을 끓여도 무르지 않아서 속이 상한대 엄마는 빨리 달라고 재촉을 하셨습니다.

어제 맛본 녹두죽이 입에 맞았나 보다 하는 기쁨에 연탄불 화력을 최고로 하여 서둘렀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엄마의 재촉이 길어졌을 때쯤 정말 하지는 않지만 거의 됐다 싶을 때 그릇 가득 떠서 식혜와 함께 엄마 앞에 놓았습니다.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는 엄마에게, “엄마,,,, 아~ 녹두 죽이야

46살의 내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입을 벌려 받아 드셨습니다.

그러기를 서 너 번이나 하였을까 할 때, 고개를 가로저으셨습니다.

어제는 그리도 맛나게 드시더니 그날은 어찌 된 일 인지 “녹두죽은 엄마의 입속에 오래도록 머물다 힘겹게 넘기는 것 같았습니다.

“왜 엄마? 죽이 뜨거워? 맛이 없어?, 싱거워? 왜 안 먹는 거야?

어제는 잘 드셨잖아?

이런저런 이유를 따져 묻는 내 물음에는 애초부터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도리질마저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밥도 거른 채 녹두죽 쑤기에 올인 했던 공이 없어졌다는 짜증이 폭발해,

“아이 먹기 싫으면 그만둬, 누군 시간이 남아나서 죽을 쒔겠어? 오늘 아버지 49재라서 그 준비하기도 죽을 지경이라고?

“맘대로 하라고, 먹든지 말든지,

신경질을 부리며 방문이 부서져라 소리 내서 닫고 방을 나왔습니다.

49재로 탈상을 하라고 하여 “절에 제사 준비를 맡겼기에 집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었지만 그냥 짜증이 나서 엄마에게 하지 말아야 할 짓거리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내 생각에는 멀건 죽인데 그냥 삼키면 될걸 어째서 삼키지 않을까 하는 원망이 깊었습니다.

죽이던 물이던 목으로 넘어가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내가 파상풍 걸려서 사경을 헤맸을 때 그때 알았습니다.

죽은커녕 물 한 모금도 넘어가지 않았을 때, 엄마가 그때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박차고 나왔던 엄마의 방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들어갔는데 항상 벽에 기대앉아있던 엄마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엄마는 가슴으로 쉬던 숨을 얼굴로 몰아쉬는지 얼굴이 검붉게 변했습니다.

“엄마,,, 왜 그래? 병원 갈까? 엄마 엄마, 엄마는 아무 대답도 없이 길고 긴 숨을 내 뱄더니, 온몸이 내려앉는 것처럼 편안해졌습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질 딸에게 잘 있으라는 말 한마디 없이, 당신의 46번째 생일날 삶의 끈을 놓고 영영 가셨습니다.

나는 그날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울지는 못하는데도 눈물은 쏟아지더군요.

녹두죽 한 그릇을 비우지 못하고 떠나버린 엄마가 참으로 야속하고 가여워서

남겨진 딸은 오늘도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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